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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나(6)-한반도의 안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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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한반도의 요즘 상황을 유엔사무총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쿠바 사태 이후, 핵전쟁에 가장 접근해 있다”. 전쟁은 일어날 것인가? 언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현 상황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과거 예는 없는가? 등을 개관해 보자.


본론


(과거)
강화도 조약(1876)으로 일에 문호를 개방한 고종은, “왜구를 견제하기 위해 왜구를 이용하자”는 청의 제안에 따라 한반도에 영국, 미국을 불러(수교), 일본을 견제해 보려 한다.


당시 영은 자타가 공인하는 강국이었고, 미는 영토에 야심이 없다고 공언하던 참이어서 고종이 보기에 협조를 구할 만 했다.


당시 구미 제국이 조선에 갖고 있는 관심은 사실 전무에 가까웠다. 그들은 청을 분할 지배하고 거기서 경제이득을 탐하는 것으로도 바빴다. 이에 비해 조선은 보잘것없었다.


영은 이미 일, 청이 지배하고 있는 조선에 들어올 일이 없었으나, 단지 부동항을 찾는 러시아가 조선에 항구를 선점할 것이 우려돼 수교는 한다(1882). 그러나 앞서 말 한대로 조선에는 주청공사가 주한공사를 겸임하는 등 조선에 별 관심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일의 기득권도 인정한다.


이와 달리, 미는 푸트 장군을 조선에 초대 주한전권공사로 임명(1883)해 부임하니 고종은 기뻤다. 기대에 대한 응답인 듯 생각됐다. 그러나 미 또한 몇 곳의 금광채굴권을 획득한 이상의 관심이 없어서 공사를 외교경험도 없는 현역 해군중위로 격하 대치한다.


이에 고종은 실망했다. 미는 매사에 중립을 표명하고, 도움은커녕 3명의 군사훈련관을 보내달라는 요청에 응답하는데 5년이 걸렸다.


이러한 배경에 러시아만이 부동항에 관심이 있어 꾸준히 접근하니, 대동아공영권을 꿈꾸고 있는 일은 불원간 러와 충돌하리라 상정하고 있었다.


고종은 강대국에 도움을 청해보고 신식 군대도 만들어보려 하였으나, 외교력도 국방력도 허약하여 민비는 살해되고, 아관파천에 한일합방까지, 이것이 과거 어느 시점의 한반도 안보상황이었다(1896-1910).


(현재)


현 한반도의 안보는? (1)우선 외교 옵션이 별효과 없이 소진되고, 북의 위협이 상존한다면, 미 유엔대사 말대로 이후 조치는 유엔 안보리에서 미 국방부로 넘어가게 된다.


이미 위협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가해지고 있고(봉남통미), 이는 미의 전쟁이 되어 주체할 수 없다. 더욱 큰 고민은 행동을 포기할 시, 세계 최강인 미가 면목을 잃게 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버티기는 벼랑 끝까지 갈 터이고, 거기서 협상테이블에 앉던지, 방아쇠를 당기던지 할 텐데, 그 벼랑 끝이 어디일까(?). 답은 북이 미에 도달할 수 있는 유효 핵폭탄을 확보하고, 위협을 멈추지 않을 때이다. 


그럼, 전쟁을 할까?. 무릇 세상사의 모든 일과 같이 전쟁 또한 이를 통해 얻는 이득이 있어야 하는데, 북으로서는 전쟁을 감행하여 득이 없고, 더욱이 이를 지속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북은 비정규전으로 끌고가 이러 저러한 위협으로 자기목적(적화통일)을 달성하려 하고, 그간 준비도 많이 했다. 전쟁을 피하려 결국 협상에 임하리라는 예측이다. 


(2)이런 시점에 요즘 “한미동맹을 파기해서라도, 전쟁은 안 된다”라는 평화애호(?) 발언이 있다. 한국이 세계최강의 나라와 동맹관계로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은 큰 행운이다.


이전 어느 시기, 예를 들어 60년대 혹은 70년대에 한미동맹이 파기됐다면 지금 한국 안보가 온전 했을까?


북이 벼랑을 넘어 군사행동으로 가는 순간에 한미동맹을 파기하고, 전쟁을 막자는 주장은 참으로 교묘한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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