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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날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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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아버지의 날을 보내면서, 새삼스러울 일도 아닌데 새삼스러웠다. 한국에선 한때 ‘어머니의 날’이었다가 ‘어버이날’로 바뀌었고, 지금은 최소한 그날만큼은 어머니 아버지를 동시에 섬기는 것으로 굳어졌다.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따로따로 있는 캐나다에서는 유치원 꼬마들이나 어린 학생들은 학교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린 그림이나 공작품들을 들고 와서 자랑스럽게 건네며 뽀뽀를 한다. 그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그 하찮아 보이는 선물에도 세상을 다 얻은 냥 즐거워하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다. 

 

 “야! 이놈들아~ 어버이날인데 뭐 없냐?”

라고 쓴, 도시 근교의 어디에 걸려 있는 것을 찍은 현수막에 쓴 글귀가 정겹지만 아렸다. ‘뭐 꼭 해달라는 건 아니다!’하고 쑥스럽게 말하는 옆에서 세워둔 지게가 쓰러지던 오래 전의 보청기 선전광고가 떠오른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도 피도 다 주신 부모님들이지만 이젠 자식으로부터 뭔가를 받고 싶으신 것이다.
왜 몰랐을까. 은근슬쩍, 부모님께서 운을 띄울 때까지 우리는 왜 바람구멍 솔솔 난 부모님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그분들이 바라는 것은 크고 값 나가는 것이 아니다. ‘Mother`s Day에 고사리 손으로 그리고 만든 카드가 마냥 좋았듯, 다 자라서 새 둥지를 만들어 나간 자식들로부터 ’보고 싶습니다.‘ 라는 짤막한 안부의 문장 한 줄에도, ‘감사합니다.’ 하는 말 한 마디에도, 좋아하시는 부모님, 좋아하시는 물건이나 음식 한 가지 만들어드려도, 잠시 찾아가 절하고, 어깨를 주물러 드리는 작은 행동 하나에서도 마냥 감동하고 마냥 행복해 하신다. 

 

 얼마 전에 읽은 ‘어느 아버지의 유언’이라는 토막글이 생생하다. 아버지가 남긴 허름한 궤짝 하나, 유리조각과 사기조각들이 가득한 밑바닥에 들어있는 편지 한 장.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그때부터 삼십여 년 동안,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그들은 나를 울게 하였고, 또 웃게 하였다./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자식은 달라졌다./나를 기뻐서 울게 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 하지도 않는다./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처음엔 진주 같았던 기억이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 기억으로 지금은 사금파리, 깨진 유리처럼 조각난 기억만 남아있구나!/아아, 내 아들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그들의 늘그막이 나 같지 않기를……

 

 우리 모두는 아버지가 있다. 비록 고아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 어디엔가 아버지가 있어 태어났다. 태어난 이후 늘 아버지의 그늘을 보호막으로 자라고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도 또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되었다. 모성애란 말에 비해서 비중이 약하게 느껴지는 부성애, 때로는 부모의 자식사랑이 어머니의 사랑뿐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가를, 그리고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서 아버지가 치러내는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파란만장한지를 우리는 잘 모른다. 겨우 알게 될 무렵이면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에 안계시거나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당신의 끄트머리 삶을 근근이 영위하고 있다. 


 
 왜 아버지는 그럴까? 그 크고 깊고 융숭한 사랑을 나타내지 않았을까? 자식과 가족을 보호하고 지켜내느라 치르는 고통이 너무나 커서 미처 사랑을 표현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들었던 ‘나만 믿어!’ 누구나 기억하는 그 한 마디의 책임 때문에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막노동꾼들이 되어서도 티내지 않았고, 자고새면 그저 노동판으로, 세상의 정글 속으로 몸을 던져야 했던 아버지.

 

 이민자들의 아버지는 더욱 그렇다. 낯선 나라로 삶의 터전을 바꾼 것도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서다. 훗날 자식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구가할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의 인생을 몽땅 걸고 소모해가며 생면부지의 나라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 이뤄낸 성과가 비록 크거나 멋져 보이지 않아도 어느 아버지들의 삶도 결코 초라하지 않다. 초라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자식들의 의무다. 

 

 아버지의 삶은 알을 부화할 때까지 알을 입에 담고 태평양을 떠도는 천축잉어와 같다. 자식이 태어날 무렵,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기력을 잃고 죽고 마는 아비고기. 알을 낳고 떠나버린 엄마고기 대신, 부화해서 독립할 때까지 곁에서 보살피는 민물의 ‘가시고기’도 마찬가지다. 가시마저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아버지의 지독한 사랑을 그린 소설 ‘가시고기’를 읽으며 눈물을 한없이 쏟아내었었다. 
 


 늙어 가시마저 허물렁해진 아버지, 굽은 등뼈에 주름 투성이의 얼굴, 고목의 그루터기 같은 피부의 아버지,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진 아버지, 그러나 그 아버지를 누가 무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는 결코 무능하지 않다. 비록 자식에게 고대광실 근사한 자리를 물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비록 자식에게 드러나게 편안하고 높은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무능한 아버지일 수는 없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이미 훌륭하시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기도가 구구절절 통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아무것도 해주신 것이 없다고 생각될 지라도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많다. 

 

 늘 마음으로만 불효자라고 곱씹었다면 어디 꼭 이런 날만인가. 정해진 날이 지났더라도 시간나는대로, 시간을 내어서라도 한번쯤 찾아뵙고, 거칠어진 손안에 우리의 손을 밀어 넣어 따뜻한 체온을 나눠드려야 한다. 뻣뻣해진 무릎이며 허리를 만져드려야 한다. 놀라게 될 것이다. 어느 사이에 아버지의 손이 이렇게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졌을까. 어느 사이 꼿꼿하던 등이 활처럼 굽으셨을까. 어느 사이 든든하시기만 하던 아버지가 왜소해지셨을까. 후회가 가슴을 칠 것이다. 


 
 더 큰 죄인이 되지 않도록, 때를 놓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당장 수화기를 들자. 엄마! 아빠! 하고 어릴 때처럼 불러보자. 마음을조금 더 내어 차에 키를 꽂자. 달리자 빈 둥지 지킴이가 된 부모님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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