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한인문인협회 2021 신춘문예?꽁트 부분 가작 '시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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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원

 

약력:

2005년에 아내와 이민을 와 온타리오 주 런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런던의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고요. 오랫동안 프리랜서로써 한국 회사들과 거래해왔고, 현재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늘 버릇처럼 습작을 해왔고, 덕분에 컴퓨터에 잠자는 원고가 꽤 쌓이게 됐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순진하고 어리석게도) 헐리우드 진출을 꿈꾸며 틈틈이 영어로 시나리오를 써서 메이저 에이전시에 보내곤 했답니다.

 앞으로 이력에 신춘문예 입상을 더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시스터즈

 

“지금까지 네가 보고 싶은 걸 봤잖아. 이젠 연속극 틀어.”

재선의 언성이 높아졌다. 열 시 이십팔 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월화 드라마는 이미 절반이나 흘러가버린 후였다.

“영화 채널에서 《타이타닉》 한단 말이야. 넌 주말에 재방송으로 보면 되잖아. 내일 컴퓨터로 보던지.”

재림은 순순히 리모컨을 넘길 마음이 없는 듯 했다.

“《타이타닉》이야말로 케이블에서 지겹도록 틀어주는 거잖아. 빨리 리모컨 내놔.”

재선의 볼멘소리에도 재림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재림이 채널을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조각 같은 얼굴이 화면을 꽉 채웠다.

“지금부터가 하이라이트야. 이것만 마저 보고 넘길게.”

“패션쇼 끝나면 연속극 보기로 했었잖아. 약속대로 해야지. 내가 아까 좋아서 그걸 같이 봐줬는지 알아?”

“짜증나게 이러지 마. 금방 끝날 거야.”

“《타이타닉》이 금방 끝날 거라고? 세 시간이 넘는 영화가 금방 끝나? 지금 장난해?”

재림은 듣는 둥 마는 둥 화면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재선이 리모컨을 향해 손을 뻗었고, 재림은 잽싸게 피했다. 재선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TV가 네꺼야? 왜 항상 네 마음대로만 하려고 들어? 보고 싶은 걸 차례로 보기로 합의했잖아.”

“시끄럽다니까. 저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잖아.”

뚝.

재선의 안 어딘가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인내심이 부러지는 소리였다.

“좋은 말 할 때 채널 바꿔.”

재선이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며 나지막이 경고했다.

“영화 끝나면 리모컨 넘길게.”

“지금 당장 바꿔. 몇 분 있으면 드라마도 끝날 거야.”

“내일 다시보기로 보라니까.”

“셋 셀 때까지 돌려.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세든지 말든지.”

폭발 직전의 재선이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재림은 태연하게 디카프리오의 얼굴만 감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둘.”

재림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재선의 관자놀이에서 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셋.”

무반응. 재림은 콧노래의 볼륨을 한층 높였다.

“야!”

재선이 빽 소리쳤다. 재림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셋 다 셌어? 이젠 어떨 건데? 폭력이라도 쓰게? 내 머리채 잡고 싶어?”

어떻게 된 게 재림은 점점 더 기고만장해져 갈 뿐이었다. 재선은 결국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냅다 휘두른 손이 재림의 가슴에 떨어졌다.

“이게 어디서 폭력을 써?”

재림도 지지 않고 반격했다. 그녀가 재선의 머리채를 잡고 홱 잡아당겼다.

“아!”

재선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힘겨루기를 펼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이를 악물고 상대의 항복을 기다렸다. 필요하다면 상대의 머리가죽까지 벗겨낼 각오였다.

“더 이상은 정말 못 참아.”

재선이 이를 갈았다.

“못 참으면 어쩔 건데?”

재림도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애써 참고 있었다.

“너만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난 뭐야? 이 TV 네가 전세 냈어?”

“재방송으로 보면 되는 걸 가지고 고집을 부리니까 그렇지. 이 영환 너도 좋아하잖아.”

“누가 좋아한대?”

“너도 할 때마다 보잖아.”

“좋아하든 말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왜 약속을 안 지키는 거냐고!”

재선이 먼저 재림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재림도 재선의 머리를 놓아주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씩씩대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TV 화면에선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뜨거운 키스를 서로에게 퍼붓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자매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아무리 심호흡을 해봐도 재선은 화가 풀리지 않았다.

“또 한 번 그 손 함부로 놀렸단 봐. 그땐 정말 자매고 뭐고 없어.”

재림이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말했다.

“웃기고 있네. 그런다고 내가 쫄 것 같아? 누군 손이 없는 줄 아냐고!”

“분명히 경고했어. 두 번 다시 나한테 대들지 마. 오늘처럼 순순히 받아주진 않을 거니까.”

그 말에 재선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음 같아서는 주먹으로 재림의 코를 짓이겨버리고 싶었다.

“그야 두고 보면 알게 될 거고.”

“나중에 후회하지 마.”

“개폼 그만 좀 잡지 그래?”

“뭐?”

이번엔 재림이 발끈했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잘하면 귀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볼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내 인내력을 시험하지 마. 이미 한계를 넘어섰으니까.”

“누가 할 소리. 너야 말로 똑바로 해. 나 막 가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두 사람의 치열한 눈싸움은 계속 됐다. TV에선 중간 광고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죽여 버리고 싶어.”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재선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 말에 재림이 실실 미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말이야 누가 못 해?”

“더 이상 자극하지 마. 정말 무슨 일 벌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말로만 그러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재림은 다시 여유를 되찾은 모습이었고, 그게 못마땅한 재선은 점점 더 약이 올랐다. 그때였다. 침대 옆 탁자에서 뭔가가 번뜩이는 게 재선의 눈에 들어왔다. 가위였다. 아까 두 자매가 바느질을 하며 썼던 무식하게 생긴 낡은 가위. 시장 원단 가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끝이 날카로운 가위. 재림은 재선이 탁자 위 가위에 흘끔 눈길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걸로 찌르게?”

재림이 피식 웃었다.

“됐어. 그만해.”

“되긴 뭐가 돼? 용기 있으면 어디 한 번 잡아봐. 어서.”

재선의 시선이 다시 가위로 돌아갔다. 재림의 입가에 머금어진 미소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냥 입 닥치고 영화나 봐. 이번엔 쿨한 내가 양보할 테니까 신나게 감상이나 하시라고.”

“어이구, 갑자기 천사가 되셨어. 왜? 차마 못 찌르겠어? 그 정도 배짱도 없이 대든 거였어?”

“마지막 기회야. 마음 바꾸기 전에 눈 돌리고 저 쓰레기 영화나 실컷 봐.”

“마지막 기회 같은 소리 하네. 네가 그렇게 눈에 힘주면 내가 움찔할 줄 알았어? 유치하긴.”

재림의 입에서 다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게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더 이상 참지 못한 재선이 손을 뻗어 섬뜩하게 생긴 가위를 집어 들었다. 순간 재림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이내 여유 넘치는 미소가 되돌아왔다.

“그래. 말로만 주절대지 말고 그렇게 행동으로 보이란 말이야.”

“마지막 경고야. 입 닥치고 영화나 봐.”

재선의 손에서 가위가 번뜩였다.

“싫다면 어쩔 건데?”

재선이 가위를 쥔 손을 천천히 올렸다. 그녀의 눈에서는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눈 돌려. 죽기 싫으면.”

“아직도 주절대는 거야? 나 같으면 벌써 열두 번도 더 찔렀겠다.”

“닥쳐.”

“찌를 거면 빨리 찔러. 안 할 거면 너나 닥치고 있어.”

재선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가위를 쥔 그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손에는 더 이상 핏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강철 가위를 부러뜨려버릴 것처럼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왜? 못하겠어? 아니야. 넌 할 수 있어. 자, 여기가 심장이니까 잘 겨누고 찔러봐.”

재림이 도전적으로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재선의 눈은 여전히 꽉 감겨져 있었다. 그녀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찔러봐. 그걸로 눈을 후벼 파든, 목을 긋든 상관없으니까 빨리 해보라고.”

재림의 킬킬거림에 재선이 천천히 눈을 떴다.

“찔러봐. 찔러봐.”

재림이 높이 쳐든 턱을 재선 앞으로 들이댔다.

“못하지? 못하겠지? 그러고만 있지 말고 찔러보라니까. 찔러, 찔러, 찔러!”

재선의 손이 뒤로 살짝 젖혀졌다. 재림의 미소는 사그라질 줄 몰랐다.

“배짱도 없는 게 큰소리만 치고. 너랑 자매인 게 내 생애 최악의 치욕이다.”

순간 재선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코에서는 콧김이 연신 뿜어져 나왔고, 눈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찔러봐. 찔러, 찔러! 이 한심한 년아, 몸이 얼어붙기라도 했냐? 한 번 시원하게 휘둘러보라고!”

재림이 가슴을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이렇게 밤이라도 샐 거야? 빨리 찔러보라고! 찔러! 찔러! 눈 딱 감고 휘둘러보란 말...”

재선이 휘두른 가위가 재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푹 소리와 함께 가슴에서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재림의 얼굴에도, 재선의 얼굴에도. 재림의 휘둥그래진 눈은 재선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은 크게 벌어져있었지만 새어 나오는 것이라고는 들릴락 말락 한 신음뿐이었다.

“너... 너...”

재림의 시선이 천천히 가슴에 꽂힌 가위로 내려갔다. 재선의 머리가 아찔해져 왔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가위의 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다.

재림의 흰색 셔츠가 피로 흥건히 젖어들고 있었다. 재선이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머리에서 의식이 들락거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슴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몸은 앞뒤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래서 기고만장했던 건가? 이렇게 될 줄 알았기 때문에? 내가 그걸 알고 찌르지 못할 거라 확신했기 때문에?

재림의 시선은 다시 재선에게로 돌아왔다. 더 이상 그녀의 눈에서 의기양양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그녀의 눈 속에는 극도의 공포만이 가득 담겨있을 뿐이었다.

재선의 손이 가위에서 떨어졌다. 머릿속이 뜨거워지면서 의식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고개가 앞으로 푹 꺾였다. 마침내 휘청이던 다리가 무너졌고, 재선은 그렇게 바닥에 고꾸라져버렸다.

열 시 삼십칠 분.

TV 속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손을 잡고 타이타닉호 안을 신나게 누비고 있었다.

 

 

샴쌍둥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

연합뉴스 기사입력 2010-11-07 03:59

 

샴쌍둥이, A씨와 B씨(24, 여) 자매가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관악 경찰서는 7일 오전 1시께 관악구 남현동 주택에서 숨져있는 자매를 어머니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시신의 흉부에 가위가 꽂혀있고,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점, 그리고 근래 들어 자매가 부쩍 우울해했다는 가족의 진술을 바탕으로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은 그러나 자매에 대한 부검을 실시하는 등 자세한 사망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소감:

부끄러운 작품임에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시스터즈>는 충격적인 반전을 품은 "마이크로 단편소설"입니다. 장르문학의 최고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재미"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즐겁게 집필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문인협회에 젊은 피가 수혈되어 보다 참신하고 다양한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는 바람을 늘 가져왔습니다. 비록 "젊은 피"라고는 감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데 미약하나마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졸작을 높이 평가해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과 <한국일보> 관계자 분들께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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