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문인협회 신춘문예 입상작 <수필 부문 가작>두 개의 물길,두물머리에서-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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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희

 


 할 일을  마친  늙은 나뭇잎들이  길게  정렬하여  길을  마련해  놓은  가을숲은  한치의  변수  없이 아름다울 것이었다. 아름다운  가을 오솔길을   걷자며  호기롭게  길을  나섰으나  친구도  나도  정한 곳은  없었다.우리는 그야말로“요즘  것”들  답게  스스로 도  알지  못하는    < 가을에 가고 싶은 곳> 을    인터넷에   물었다 .모든 게  마뜩찮을  즈음  문득  오랫동안  맘 속에  품었던  곳이  떠올랐다.


“두물머리에  가고  싶어”


 친구는  아마도  캐나다  촌년에게  좋은 곳을  보여 주고  싶었겠으나  나는  한사코  정약용의 조카 사위  황사영이  좋아했다는  두물머리와  주변  오일장에  가고  싶었다. 


친구가  운전하 는 차에  앉아  연방 “ 잠시 후  좌회전  하십시오” 라  말하는  네비를  쫓아  길  찾는 친구에게   감탄  하느라   차에서   흐르는  노래들은  숫제  듣지도 않았다.


잠시  후 가 어딜까?  셈이  느리고  거리감이  없는  내게 ‘잠시후’란 가늠할 수 없는  거리였다.


 얼마쯤을  가다가  우리는  오일장을   만났다.


 아… 그곳에  골고루  퍼져  고여  있던  냄새를  나는 캐나다에  돌아와서도  입덧 처럼  그리워했다. 그리움은  유형만이  아니라  무형으로  혀 끝에도 그리고  코끝에도  머문다.


고소한  뻥튀기 냄새, 온갖 생선 반죽으로  만든  오뎅, 깊고 은근하게  단맛이  나는 각종  엿들,


 잘 말린 능이버섯과  오미자 그리고  오종종  작은  항아리와  삼베 주머니…  노란  박스에  잠들어  있던  순하고  귀여운  똥강아지들  놓칠  것  없이 그리운  것들이었다.


 우리는 먼저  요기를 하기로  하고 투명한  비닐로  천막을  쳤으나  허술하지는  않은  잔치국수집을 택했다. 아주머니   셋이  일을  나누어  잔치국수를  만들면   젊은 청년과  어여쁜  아가씨가  릴레이 하 듯 연신 국수를  날라댔다.오른쪽의  아주머니가  긴  젓가락으로 국수를  휘리릭  젓기도 하고 젓가락에  국수를   감아  팔을  높이  들기도 하며  국수 면을  삶아  재빠르게   찬물에  헹구어  물기를 뺀다.물기  뺀  국수면을  받은  그  다음의  아주머니는  촘촘이  구멍  뚫린  국자에  면 을 넣어  뜨거운 육수 냄비에  담아  여러 번 자맥질을  시켜  국수를  덥힌  다음 그릇에   담고  잘고  아진  육수를 가득  붓는다.


 연신  계란 지단을  부치거나  김치를  썰던  왼쪽의  아주머니가  면이  담긴  그릇을  받아  잘게  썰어 놓은 김치와  계란지단과  잘게  부순  김을  올려  아가씨와  청년에게  주면  쟁반에  담아  손님에게  가는  길에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 “ 맛있게드세요~” 말끝을  올리며  손님상에   놓는다.


국수는  내  혀에  휘감겨  씹히기도  전에  식도를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  장의  수많은  달고 꼬신  냄새들이  국수 위에  고명으로  얹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보약인 듯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먹었다.


 박스에서  동글동글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을  넋 놓고  바라보다  엄마에게  드릴  울릉도  엿과  팥소가  들어가지   않은   찹쌀 도넛  그리고  각종 센베이와  능이버섯을  샀고  친구는  노지배추로  가을 김치를  담는다며  잘디 잔 배추10포기를 샀다. 노지배추라  통은  작았지만  속이  꽉차  얼마나 무겁던지  그것들을  들고  주차장으로  걸으며  우리는 짐을  내려 놓고  한참을  웃었다.


 우리  놀러 온 거  맞니?


 함포고복  뒤엔  무엇이나  감미로운가.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나는  정약용 일가의  비극과  아름답던  청년  황사영의  죽음을  떠올리며 애틋함에  젖어  느리게  흐르는  물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줄기  물이  만나  두물머리라는 그곳에서  1시간여를  물만  바라보았다. 


함께  했던  친구는  꼭 사야  할 것을  놓쳤다며  나를  그곳에   두고 오일장으로  다시  되짚어  갔으므로  얻은  고요한  시간이었다.


 여행은  혼자일 때   비로소  완성되는 법.


 흐르는  물 위로  일체의  잡다한  현수막과   음식점 광고  사인들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고개를  숙여  오로지   흐르는  물 만을  바라보며  물성에  사로잡혀  나는  나를 고요하게  두었다.


나는  늘 고요하다는  평판을  듣지만  기실  나는 조용하기는 하나  고요  한 적은  없다


고요로  가장 된  분노와  유쾌로  포장된  불안감, 그리고  사랑  받기  위한  무던한  노력이   때때로 속수무책의  무기력으로  발현  되어 그  모든 것을  고요로  감춘다. 


 사람을  만나거나  의외의  상황이  닥치면  나는  언제나  호와  불호 그리고  쾌와  불쾌  사이에서 무엇에  저울이기  울고  있는가를  감지 하느라  사람  관계를  맺지도  닥친  상황에  집중하지도  못한다. 쾌에  머물면  그것에  머물렀으나  불안 했고 불쾌에  머물면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두 개의  감정이  동시에  생기는  나 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자주  이중적인  나를  탓했다.


 두 물이  만나  두물머리가  되어  하나의  커다란  강이  되는  두물머리  앞에서  내  두 개의  성향은 드디어  명분을  얻고  자유로워졌다.  두 개의  감정이  발현 되어  저울에  오르면  시간이  지나  끝내 닿아야  할  마음에  당도하기를  기다리려   한다. 


 그건  이중적인 게  아니라   하나의  길에  닿기  위해  반드시  두루  거쳐  지나 가야  할  두 개의  길이었다.  사금이  순도  높은  순금으로  거듭 나기  위해  수많은  과정을  거치듯  나를  덧씌우거나  창조하지  않고  순수한  나에  당도하기  까지 고작  두  개의 길 만을  거칠 수 있다면  이득이  아닌가.


세 길 혹은 네 길이어도 지나야  할 것 아닌가. 한자리에 꽂혀 한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는  꽃이나 나무도  바람에   따라  가지를 움직이는데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살아가는  나를  한마음에  머물게해   요지부동의  사람이  되라 해서는 안되겠다.


 마음의  움직임을  역동적이라  믿으며  역동의  끝에서  얻어진 ‘나’는 나라는 사람의  진리값 일 것이다.고요히  머물고  싶었던  나만의  1시간은 역동적이었고  끝내는  단정하였다.


 두물머리  근방의  오일장  어느  한 곳에서  주인장이  직접  내렸다는 멸치젓갈  한봉지를 사 들고 돌아온  친구와  가을 김치를  맛있게  담는 법,  그리고  노지배추는  무엇인가에  대해   꽤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며  수많은  잠시 후  좌회전과  우회전을  거쳐  짧은  가을 여행을 마쳤다.

 

 

<당선 소감>

 

 

 이제야 제 삶이 문장을 얻은  듯한 느낌이어서 기쁩니다. 


 저는 무용의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효용의  가치로  따지자면  어느 것에도 무가치 하지만  어떤  무용의  아름다움은  기억을  소환하고 웃음 짓게  합니다. 목단이  수놓아진  엄마의  오래된  횃대보가 그러하고  붓펜으로  화선지에  그린  아버지의  산수화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느  젊은  청년의  춤 한 판이 그렇습니다. 


 들꽃이  피어 있는 길, 잔바람이  지나간  자리, 고양이가 꼬리를 치켜들고 살금살금 걷는 것, 어린 개가  바람에  실려가는 마른 나뭇잎을  보고 앳된 소리로 짖는 것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생각할 때 비로소 제게 새로운 생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 문을  들어서기까지 참으로 많은 것들이 구구절절 난무했지만 그 수많은 난무함  속에서 굳게 닫혀 있던 문은 글을 짓는 일 앞에서 마침내 열렸습니다


 힐링과 소통이라는 떠들석한  희대의  표어에서  비껴나  그저  조용히  문 안에  들어서  무용의 것들 일구겠습니다. 좋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생을 건너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소식을 전합니다. 그들에게도 내 언어가 읽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문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력>


-1996년 이민
-단국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현재 마캄 거주
-액세서리 도매업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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