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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73)-두아디라(Thyateira) 교회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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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교회를 떠나 약 1시간이 좀 못되어 도심에 있는 한 폐허에 내렸습니다.

성경에서는 “두로”라고 불리며, 그 당시 로마가 전략적으로 많은 유대인들을 이주시켰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상술과 지리적 특성은 자연히 상업도시로 번성하게 되었으며, 이때 이미 상인조합조직(길드/Guild)을 가지고 있었던 도시였지만, 오늘날에는 “아키사르(Akhisar)”라고 부르는 작은 도시로 전락한 채 옛 시대의 잔재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 중에, 두아디라 교회였던 요한 기념 교회의 석축 기둥과 담장이 남아있는 곳에 내리니, 무너진 벽과 땅에 뒹구는 돌 덩어리들이 부서진 상태로 도심에 그냥 방치되어 쓸쓸히 옛 영화를 나타내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볼 것은 없으나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 두아디라. 이곳 출생자 루디아를 안 집고 넘어 갈 수가 없겠지요. 바울이 서양으로 전도하기 시작한 첫 시발점을 열어준 여신도이니 말입니다.

사도행전 16:11~15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에 빌립보에서 “두아디라에서 온 루디아”를 만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루디아”는 성경에 쓰여있듯이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루디아는 어디에선가 초대 교회를 통해서 벌써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또 공경하게 되었기에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빌립보에까지 상권을 넓히면서 그녀 나름대로 그가 알게 된 하나님을 빌립보에 있는 몇 여자들에게 전해주던 중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을 알게는 되었으나 나름 전도를 하려니 궁금한 것이 꽤나 많았을 것입니다.

결국 사도행전 16장 6~7절에 기록된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 지라”는 말씀은 “루디아”에게 바울을 만나게 해 주시려고, 또 바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하나님을, 예수님을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생전 처음 만난 바울의 일행들에게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여 서방 전도의 첫 관문인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주님의 역사일 것이라고 감히 상상을 하여 봅니다.

두아디라 출신의 루디아가 빌립보 지역까지 상권을 확보하면서 장사한 것을 보면 그녀의 자주색 옷감의 색감은 뛰어나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고향인 두아디라는 예부터 자주색 염색으로 이름 난 곳입니다.

서머나 출신의 시인 호머는 그의 작품 일리야드 Ⅳ. 에서 “두아디라 시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주천이 생산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오늘날과 같이 화학염료가 발달되지 않은 그 옛날에는 자연에서 색을 채취해야만 했었는데, 일반적으로 보라색은 아프리카, 소아시아, 베니게(페니키아)의 연안, 결국 지금의 지중해 연안에서 채집된 아름다운 악귀패(뿔고동)의 목구멍에 있는 특별한 선(腺)에서 채집한 염료였다고 합니다.

최근 행해진 실험에서는 1,200개의 뿔 고동에서 겨우 1.5g의 색소를 얻을 수가 있었다고 하니 이런 색소로 염색한 옷감이 비쌀 수밖에요….

그 때문에 이 염료로 염색된 의복은 왕족, 귀족, 고관이 착용했고, 따라서 자주색은 왕실, 권력, 부유의 색으로 여겨지게 되어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그 당시 옷감을 염색하는 자주색 원료는 이 외에 한가지가 더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식물의 뿌리에서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인조 꼭두서니(Madder)라는 나무뿌리를 채취하여 물 속에 오래 담가 두면 자주색 염료가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 성경 학자들의 견해는 “두아디라에서 생산되는 자주색 옷감은 소라나 조개에서 얻어진 자주색이 아니라, 식물의 뿌리에서 나오는 염료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두아디라 근처에는 바다가 없으며, 반면에 ‘인조 꼭두서니’라는 식물이 많이 나기 때문이라니요…?

그래도 혹시? 하여 요즈음 편한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인조 꼭두서니”는 “진홍색”, 즉 “짙게 붉은 색깔”이 나온다고 하네요. 영어로 “Madder”라는 단어는 “심홍색, 짙은 다홍색”이라고 번역을 하니, 아무래도 “악귀패(뿔고동)의 목구멍에 있는 특별한 선(腺)에서 채집한 염료”였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주색이 붉은 색과 파란 색의 적당한 혼합으로 얻어진다고는 하나 자연에서 나온 색만이야 하겠습니까? 자주색이라 해도 자주색 나름으로 색의 격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두아디라는 강에 둘려 쌓여 있었으며 돛단배가 무척 많은 성이었다”는 설명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마치 한국의 마포나루가 한양으로 들어가는 쌀과 새우젓 등 생필품의 집산지였었던 것처럼….

각설하고, 그 당시의 두아디라 사람들은 트림나스 신을 철저히 숭배하였다고 하는데, 토기장이, 제혁업자, 직물업자, 염색업자, 의상제조자 등의 연합상인조합인 길드는 신전에 재정을 헌납해야 하였기에 활동은 주로 계조직을 단위로 신전에서 이루어졌으므로 트림나스 신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트림나스 신전에 제사를 드리는 날은 곧 곗날이 되었으니 당연히 술을 마시고,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으며 즐기었을 것이고, 제사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면, 신전에서 일하는 여신들과 음행으로 들어가고…. 이러니, 아마 이 때에도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겠지요.

이렇게 두아디라의 계조직이 트림나스 신전의 음란한 제사와 관련되기 때문에, 당시 두아디라 교인들 중에는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없이 신전의 제사와 이어지는 음란을 행하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으니까요!

요한 계시록에 “이세벨을 용납하고 음행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는 책망이 바로 이런 일들이 아닐까요? (요한계시록 2장 20절)

7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 가장 길게 쓰여진 두아디라 교회는 교회사에서도 제 4기로 구분하며, 약 천 년에 이르는 가장 긴 기간의 교회의 역사를 차지하고 있는데, 역사가들은 “교회사 중에서 이 시기에 진리가 가장 많이 왜곡되고 변질되었다”고 규정하여 이 기간을 “종교 암흑시대(AD538~16C말)”라고 부르며, “종교 개혁운동이 일어나면서 두아디라 교회 시대는 그 종말을 고했다.”라고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이런 과거가 있는 두아디라 교회터가 지금은 도시 중심에 폐허로 남겨진 채 가끔씩 오는 순례객들에게 부서진 애잔한 모습을 보여주는 순례터가 된 것입니다. 애잔한 마음으로 옛날의 교회를 그리며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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