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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59)-밧모 섬(2) '요한 기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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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밧모 섬의 스카라(Skala) 항구에서 올려다보는 섬 최정상의 호라(Chora)에는 사도 요한 기념수도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4세기 콘스탄틴 대제 이후 순례지가 된 밧모 섬에 1088년 성 크리스토 둘로스(St. Christodoulos)가 동로마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1세의 도움으로, B.C. 4세기에 세워졌던 아르테미스(Artemis, 아데미) 신전의 폐허 위에 사도 요한 기념 수도원(The Monastery of Saint John the Theologue)을 세울 때, 이 지역에 자주 출몰하는 해적들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성으로 지어, 그 규모가 동서로 70m, 남북 50m 그리고 성벽의 높이가 15m나 되는 중세의 요새를 방불케 하는 큰 건물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당시 극성을 부리던 해적들의 공격을 쉽게 방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수도원에는 역대 동로마제국의 황제들이나 총대주교들이 수도원에 하사한 수 많은 값진 보물과 희귀한 성경이 많은데, 특히 AD 500년대에 기록한 마가복음은 매장 첫 글자를 순금으로 썼고, 나머지는 은으로 쓴 희귀본이 있는가 하면, 해상무역으로 큰 돈을 번 상인들이 안전 항해를 기원하며 많은 보물을 기증하여 엄청난 보물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1537년, 오스만 터키군이 이곳을 침략해 올 때에는 그들에게 저항하지 않고 섬을 내줌으로써 이 보물들을 지켜낼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수도원 입구의 문 위에 모자이크로 되어있는 “계시록 책을 펼쳐 들고 있는 요한의 초상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화라고 합니다.

이렇듯 수도원에 소장된 진귀한 성서 사본들이 손상되지 않은 채 보존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춰지지 않자 A.D. 1100년경에는 수도원의 수도사가 100명을 넘었다고 하나, 현재는 20여 명 정도가 수도원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순례자인 우리들이 섣불리 볼 수가 없었으니 우리들에게는 “그림 속의 떡”만도 못한 소식일 뿐이었습니다.

수도원에는 메인 성당을 포함한 5개의 작은 교회가 있으며 이중에 한 교회 안에 성 크리스토 둘로스 신부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밧모 섬(Patmos)에 기독교가 정착하게 된 것은 바로 요한 수도원이 세워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다른 많은 수도원과 교회들이 속속 들어섰고, 수도사들의 학문 연구를 위해서 도서관도 세워졌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밧모(Patmos)섬은 수도사들에게 “에게(Aege)해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거룩한 섬이 되었습니다.

밧모 섬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는 기원전 6-4세기로 인구는 12,000-15,0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 제우스, 아르테미스, 디오니소스 등의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로마시대에 이 섬을 유배지로 사용했으나 요한의 유적이 발굴되며 순례지가 된 후 1453년 이후에는 오스만 터키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로마 교황청의 지원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 1537년에 터키에 점령된 후, 1832년부터 터키의 직접 통치를 받다가, 1912년에 이탈리아의 지배를 거쳐 1947년 이후 그리스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빛과 물이 귀한 기후조건 때문에 약간의 곡식과 채소와 포도나무가 재배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이기에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그리스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구에서 배로 7시간 반 가까이 지중해를 항해해야 하기에 아테네에서 일찍 저녁을 먹은 후 떠난 우리가 스카라 항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밤중인 새벽 2시경이었습니다.

비록 침대 칸을 배정받았지만 지중해 수면위에 길게 꼬리를 내린 보름달에 취해 밤 바람을 맞다 보니 비싼 침대 칸이 무용지물이 된 셈이었습니다.

교통의 불편함은 있더라도 오랜 역사 속에, 또 많은 진귀한 성물들을 간직하고 있기에 오늘도 성지로써 많은 참배객과 관람객을 부르는 밧모 섬은 말대로 크지가 않아, 아침나절에 벌써 다 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에 한해서 말입니다.

점심을 먹은 후 예약된 배를 타고 찬란히 빛나는 지중해의 태양을 받으면서 신화의 나라를 떠나 소아시아의 7교회 터가 있는 터키로 가기 위하여 항구 근처의 모래밭 옆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리 쉼을 하고 있는 시간도 참으로 귀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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