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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58)-밧모 섬(Pastmos)(1) 요한 계시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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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가 두렵기도 하고, 또 그 내용이 난해하기도 하여 선뜻 열기에 주저되는 책이 신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이라고들 말합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 요한계시록 1:9~16

 

사도 요한의 기록처럼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보내라시며 주신 주님의 계시는 어쩜 오늘날 수없이 많은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려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 상의 모든 교회들이 소아시아 7교회의 유형 중의 하나일 수가 있으니까요.

이런 계시를 받은 곳으로 추정되는 동굴이 1090년에 밧모 섬에서 발견되어 보존 되고 있습니다.

밧모 섬(Pastmos)은 터키 해안에서는 불과 60㎞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나, 아테네에서는 250㎞나 떨어져 있습니다마는 그리스의 영토입니다.

1차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오스만 터키가 주위의 많은 섬들을 다 연합군들에게 빼앗겨 대부분이 그리스 영토로 편입되었기 때문입니다.

하기사 서로 먹고 먹히는 역사가 벌써 몇 천 년인가요! 오늘의 승자가 내일에는 패자가 되고, 오늘의 패자가 또 내일에는 승자가 되는 그런 역사의 점철이 수 놓아진 이곳 지중해 주변이니까, 앞으로 생겨날 일들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우린 우리대로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만큼 느끼고, 돌아가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입니다.

남북이 약 16㎞, 동서로는 넓은 곳이 약 10㎞이며 중간 부분은 너비가 불과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밧모 섬이지만 해안 굴곡이 심하여 주위 둘레는 약 60㎞에 이르나 면적은 34㎢밖에는 안 되는 작은 섬에, 주민은 약 3000여명인데, 반 이상이 섬 중앙의 산언덕에 있는 호라 마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집들이 하얀색이어서 매우 깨끗하게 느껴지는 이곳의 집들은 모두 지붕이 넓적합니다. 이유는 비가 올 때 빗물을 받기 위해서랍니다. 이 섬에서는 물이 나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비가 내릴 때 그 빗물을 저장하여야만 살 수가 있답니다. 그래서 그 옛날부터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오기 힘든 감옥으로 사용하던 섬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 받던 때는 로마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였으니 피 지배자가 많은 만큼 감옥에 보내야 할 죄수들 또한 많았을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사도 요한은 예수의 도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이 섬으로 유배됐다가(주후 95년께•계1:9) 도미티아누스가 죽은 후 석방돼 96년 에베소로 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21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최후에 대하여 말씀하시니 21절에 베드로가 요한은 어찌 될 것이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주님께서 22절에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그 말씀이 성취되어서인지, 요한은 순교하지도 않았고 또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밧모섬에서 주님의 게시를 들은 후 에베소로 돌아갈 수가 있었나 봅니다.

이곳 전승에 의하면 요한은 돌을 깨는 일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이곳 채석장에서는 돌을 생산하고 있다고 하니, 그래서 섬이 지금처럼 더 작아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갇혀 있었던 감옥, 동굴로 들어가기 위하여 한참을 하얀 돌담을 돌며 좁은 계단을 내려가니 나타난 동굴 입구에는 눈이 어두운 요한 대신에 계시의 내용을 대서하고 있는 브로고로 집사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 5절에 따르면 브로고로 집사는 예루살렘 교회 초대 7집사 중 한 사람으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마는 그가 이곳 밧모섬에 왔었다는 것은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단지 그리스 정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도미티아누스 황제(AD81-96)당시 황제숭배를 강요했고 누구든지 이를 거역하면 무서운 핍박과 사형도 서슴지 않았답니다.

이때 사도요한은 황제숭배를 항의하다가 로마군에 체포되어 펄펄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졌으나 “온 몸이 녹아 내리고 뼈가 휘어졌으나 죽지 않는다”고 보고를 하자 황제는 부하들에게 "이는 분명 신이 내린 사람”이라며 “사람의 손으로 죽이지 말고 밧모섬으로 유배를 보내라"고 하여 사도 요한은 간신히 살아나 제자인 브로고로를 데리고 AD 94년경 죽음의 밧모섬으로 유배를 왔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되었던 이런 형벌의 결과는 신약 시대에도 초기에 여러 곳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약 30여명이 들어갈 만한 바위 굴로, 그 천장에는 요한이 계시 받을 때,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들리며 세 갈래로 갈라진 바위 틈새가 있었고, 전면에는 후세 사람들이 교회 제단처럼 장식물들로 치장이 되어 있었으며, 오른쪽으로 요한이 기도하면서 머리를 대어 움푹 파인 바위와 일어날 때 짚었기 때문이 파인 손자국을 은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가이드 하신 목사님이 설명을 하시는 동안 둘러본 동굴 벽은 좀 특이한 검정색 바위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주 작은 조가비들이 수도 없이 모래와 뭉쳐진 채로 바위가 된 수성암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동굴도 그 언제인가 옛날에는 바다 속에 있었던 것이 지각의 융기로 땅 위로 솟아 올랐고, 그 중 약한 부분이 파여서 동굴이 되어 죄수의 몸으로 귀양 온 요한의 거처가 되었다가 오늘날까지 성스러운 곳으로 인정받아 수많은 관광객이,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돌덩어리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연계될 때에는 이렇게 변화할 수가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동굴 교회 왼편에 난 창으로 보이는 정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저 멀리 파아란 바다가 있고, 동굴 아래로 경사진 언덕에는 올리브 나무와 포도나무가 밝은 햇빛을 받아 초록색으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내가 지금 감옥에 서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게 만듭니다.

하기야 이 또한 마음먹기 나름이 아니겠습니까? 찬송가의 한 구절,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요한이 이곳에서 받은 계시는 아마도 나의 남은 평생을 걸쳐 이해하려 노력하여도 모자랄 것만 같습니다. 육의 생각으로 이해 되어질 수가 없는 영의 말씀이니 말입니다.

언제나 영의 옷을 입을 수가 있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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