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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40)-감람산 위의 교회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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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이 합하여지면서 땅 속으로 스며들어 명맥을 유지하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부활하면서 예수님의 행적과, 그를 이어 세계로 퍼져 선교한 제자들의 발자취가 있는 곳마다 기념 교회들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성지 순례라는 이름으로 그 발자취를 돌아보는 순례자들 또한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에 지어진 크고 유명한 교회들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로마 교황청과 수도원들의 지원을 받은 천주교 계통의 교회들이었습니다. 성지 중의 성지인 예루살렘에도 교회들이 많이 지어 졌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천주교와 개신교가 예식의 차이에서 오는 건축적인 다름도 있지만 천주교에서는 주교좌성당(대성당, cathedral)과 경당(소성당, chapel), 그리고 기념비적 건물이지만 주교좌가 아닐 때에는 Basilica로 부르는 것을 우리들은 모두 “성당”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인들이 모이는 곳을 “교회”로 나누어 부르기도 하지만, 개신교가 형성되기 전에는 모두 교회, 즉 Church라고 불렀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성당들을 교회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예수 승천 교회(Ascension Chapel)

영어로는 Olive Mountain, 우리 말로는 감람산 정상에 예수 승천 교회가 이슬람 사원 안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0절에서는 승천하신 장소를 베다니 근처라고 하였고, 사도행전 1장 12절에서는 감람산이라고만 언급하고 있기에 두 곳의 기록이 서로 다른 곳 같습니다마는 나사로의 고향인 베다니가 감람산 기슭이니, 결국 같은 장소를 다르게 표현한 것뿐입니다.

감람산 정상은 처음부터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승천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는 말대로, 주후 387년에 신앙심 깊은 귀족 출신 부인인 포메니아(Pomenia)가 감람산 정상에다 기념교회를 8각형의 둥근 형태로 지으며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고 하늘로 가심 대로 다시 오심을 믿어 지붕을 덮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교회 역시 614년 페르시아 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670년에 다시 지어졌으나 1009년 술탄 엘 하킴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1152년 십자군에 의해 팔각형으로 다시 지어졌는데, 1187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될 때 예수님의 재림을 막기 위해서 둥근 지붕을 덮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무 장식도 없는 조그마한 교회 중앙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남겨놓았다는 예수님의 오른쪽 발자국이 찍힌 바윗돌이 하나 있는데, 역사적인 신빙성은 없지만

일단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가 다 그 바위를 만지며 잠깐씩 기도를 하곤 합니다.

교회력 절기로는 부활 후 40일째 날을 승천일이라고 하고, 부활 후 50일째는 오순절, 혹은 성령 강림절로 기념을 합니다.

 

기도문 교회(Church of the Pater Noster)

3세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 헬레나가 주님께서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 전승되는 이 곳에 처음 교회를 세웠으나, 614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12세기 십자군들이 탈환한 후 다시 지었으나, 십자군이 퇴패한 후 다시 폐허가 되었던 자리를, 1868년에 프랑스의 한 공주(이름이 사람들에 따라 다르기에…)가 구입하여 갈멜 수도원을 지은 후, 프랑스 정부에 헌납하여 지금은 개혁 그룹에 속하는 “맨발의 갈멜 수도원”이 위탁 관리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교회가 특이한 것은 마태복음 6장 9절로부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 기도문”이 한글을 포함하여 세계 62개국의 언어로 벽을 따라 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후 귀국길에 성지 이스라엘을 순례하였던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최재선 요한 주교님이 이 곳에 들렸을 때 여러 나라 말로 된 주님의 기도문이 있는데 한글로 된 기도문이 없는 것을 보시고 귀국하신 후 바로 우리말로 된 “주 기도문”을 기증하여 성사된 것이라고 합니다.

2008년에는 이 곳에 있던 우리 말 “주 기도문”이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주 기도문”이 바뀌어 전시되었는데, 알아보니 교회일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어느 보수 교단 출신이라고 알려진 목사님이 수도원을 설득하여 “개신교용 주 기도문”으로 교체하였다가 우여곡절을 거쳐 다시 원상 복구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잠시 교체 되었었다는 “주 기도문”을 보면 정통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과 조금 다른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원상 복귀를 위하여 여러 기관들에 청원을 하여야 했으니 한국 교계의 치부가 예루살렘에 드러났던 사건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좋은 기도문이 요즈음엔 예배에서 보다는 교인들 간의 모임이 끝날 때 함께 외우는 폐회 기도가 되었고, 예배 드릴 때 빠지지 않고 외우는 것이 “사도 신경”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땅 아래로 숨을 수밖에 없었던 2세기 경부터, 믿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믿음 고백의 형식으로 시작되었던, 그래서 여러 형태로 전해오던 “사도 신경”이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되어 “니케아 신경”이 되었고,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보완하여 사용되어 오던 중, 431년에는 에베소 공의회에서 다시 마리아의 신성이 더하여지며 보완되었다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요, 완전한 하느님,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칼케돈 신조를 통과시키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 신경”이라는 신앙 고백문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세계 교회 협의회, 천주교, 성공회, 정교회가 각각 이 신경을 자구는 서로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하게 번역해서 사용하여 오던 중 2012년 현재, 예장통합 소속 개신교회는 대부분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으로 바꾼 후, 새로 출간된 성경에는 새 사도신경과 옛 사도신경이 함께 인쇄되어 나옵니다.

캐나다 연합교회에서는 1968년, 23차 총회에서 새 신조(A New Creed)를 만들어서 우리들도 한달에 한 번씩 새 신조를 읽게 되었습니다.

“사도 신경”이나 “새 신조”를 암송할 때마다 “믿음의 고백”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믿음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발전하는 사도 신경을 만드는 자체를 인정은 하면서도 “왜 주님께서 가르치신 “주 기도문”으로 함께 기도 드리는 시간이 예배 시간에서 빠지게 되었는지…. “사도 신경”을 외우는 것보다는 “주 기도문”을 함께 드리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믿음의 고백”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평신도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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