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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 언덕(Montmartre)(1) 순교자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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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방문하는 거의 모든 방문객들이 한번씩은 다녀 가는 몽마르트 언덕.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낮은 언덕이다! 


언덕 위에는 프랑스에서는 좀 이색적인 비잔틴 양식으로 1876~1910년 사이에 지어진 성당이 하늘 높이 솟아있고, 교회 옆으로 난 골목길 끝에 있는 작은 광장에서는 많은 화가들이 캔버스를 앞에 세워 놓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야외 전시장이자 작업장이 있다. 

 

 

 

 


파리 시에서는 시 외곽으로 설정하여 세금 부담도 별로 지우지 않았던 19세기. 살아 생전에는 그림을 팔아 삶을 영위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들어 주린 배를 움켜쥐고 허기진 발걸음으로 힘겹게 언덕을 올랐다. 


하늘에 조금은 더 가까워졌기에 그 소원이 조금은 더 빨리 상달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소원을 간구한 후, 후미진 골목에 화구를 펼쳐놓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꿈과 환상의 절규가 조금씩 형상을 이루어 갔다. 

 

 

 


캔버스 위로 노을이 질 즈음, 언덕 아래로 내려 오면 다리를 번쩍 번쩍 들어올리며 유혹하는 무희들의 빠른 캉캉 비트가 무대 바닥의 먼지들을 흩날릴 때, 짙게 바른 무랑루즈의 붉은 풍차는 환락의 바람을 일으키고, 더욱 짖게 내린 뒷골목의 어둠 속으로 흐느적거리며 흐르는 윤락의 배설이 이루어지던 곳이 바로 몽마르트 지역이다.


 로마가 이 지역을 다스리던 시대에는 반기를 든 사람이나 로마 법으로 볼 때 죄인인 사람들을 언덕 높은 곳에서 처형을 하였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며 두려움을 느꼈을 테니까. 


그 때 이 지역을 라틴어로 몽머르티스(화성의 언덕: Mons martis: Mount of mars)라고 부른 데에서 오늘의 몽마르트라는 이름이 기원하였다는 설이 있다. 옛날부터 화성이라는 별에 붉은 기가 도는 봄철이면 군인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전쟁터로 대오를 맞추어 출전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군인들의 행진을 march라고하였고, 이런 march가 자주 일어나는 3월을 March라고 영어로 명명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이런 이름의 유래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 것 같다.


또 하나의 다른 유래인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설이 있다. 프랑스가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절인 주후272년, 프랑스 초대 주교인 ‘생 드니(Saint Denis)’ 신부가 카톨릭을 전파하다가, 부주교 두 명과 함께 순교한 곳이 이 언덕이란다. 그 자리에 12세기에 베네딕트파의 수녀원이 건립되며 순교자의 언덕이라고 불리게 되었단다. 


Mont(언덕) + Martre(순교자), 즉 순교자의 언덕을 뜻하는 몽마르트 언덕으로 말이다. 두 가지 유래가 다 공감을 하게 만들기는 하는데, 막상 이 곳에서 처형을 당한 ‘생 드니’ 신부는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약 6 킬로미터를 북쪽으로 걸어가서 죽었단다. 요즈음, 유로스타가 정거하는 파리 북역(Gare du Nord) 근방의 ‘생 드니’ 역 부근으로. 그 당시에는 시체를 버리는 곳이었단다.


1144년, 그 자리에 당시 수도원 원장이었던 수제 신부(Suger C 1081-1151)가 ‘생 드니 성당’(Basilique de Saint-Denis) 을 건축한 후 각 지역의 수도원장들을 초청하여 봉헌미사를 드렸는데, 그 때 참석하였던 모든 신부들이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각 지역에 성당을 지을 때 그 모형을 차용하였는데 이것이 ‘고딕양식’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후 생 드니 성당은 프랑스의 왕과 왕비들이 묻히는 곳이 되어, 프랑스 혁명 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도 이 곳에 묻혔다. 왜 생 드니 신부는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그 먼 길을 걸어 갔을까?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이 길을 가는 동안에도 계속 강론을 하였단다. 믿기 어렵지만 기적이란 우리의 지혜나 지식으로 이해되는 일이 아니기에 믿음으로 믿는 것이 기적이니까 믿기로 하자.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의 북역으로 가는 동안 창 밖으로 많은 난민들이 우글거리는 광경이 한참을 계속되었다. 이 지역에 북 아프리카계의 이민자들이 모여 살면서 파리에서 가장 가난하고 지저분한 우범지역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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