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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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 마음은 어느 나라나 똑같다
Hwanghyunsoo

 

한국에 있을 때, 캐나다 이민 신청을 대행해주는 이주공사에서 “이번 가을 이민 심사에 통과하려면 여름에 캐나다를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해서 1998년 여름, 7일간의 휴가를 내어 몬트리올로 이민 답사를 가게 된다. 내가 몬트리올로 이민 신청을 했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으면 ‘인터뷰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때 이주공사의 소개로 비슷한 처지인 박기성(가명)이라는 친구와 함께 갔다. 나보다는 10살 정도 아래였는데, 처음 만나 “제가 나이도 어리니,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밝고 명랑해 금세 친해져 답사 기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박기성은 수원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다며,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이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 끝에 “이민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망설였는데, 아들이 유치원에 갔다가 오면 자꾸 울어요. 내후년에는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야 하는데…”

“아, 그래요. 우리 아이들도 유치원 가기 싫어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지던데…” 했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아들이 발달 장애아여서 걱정이에요”라고 한다. 속으로 ‘무슨 장애가 있지?’ 궁금했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서 그냥 가볍게 ‘아,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하며 넘겼다.

그는 틈만 나면, ‘캐나다가 장애 학생에 대한 배려나 교육환경이 좋은 점’에 대해서 말했다. 그런 정보를 어디서 들었는지 “캐나다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분 없이 모두 일반 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받는다고 해요” 하며 “우리나라는 장애인 교육이 힘들죠.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그렇고…”

듣고 있던 나도, “하긴, 그래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민 결정을 잘하셨네”하며 위로했다. 그는 “유치원 원장에게 힘들겠지만, 특별히 신경을 써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다른 학부모들도 그렇고, 차라리 특수교육을 받는 곳을 알아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정말 속상하셨겠네. 사실 아이 교육문제 때문에 이민 가는 사람도 많잖아요? 장애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더 간절할지도 모르겠네.”라며 토닥거려 주었다.

우리 둘은 그렇게 캐나다 답사를 마친 뒤, 비슷한 시기에 이민 인터뷰를 통과했다. 그 뒤, 그는 친척이 살고 있다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 정착했고, 나는 이곳 토론토로 오게 된다. 갑자기 발달장애인의 아빠인 그가 생각나게 된 것은 2 주전에 본 고국의 뉴스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에 대한 상영 금지를 요구해 장애인 부모들이 발끈하고 나섰다”는 기사다. <학교 가는 길>은 지역사회의 무관심과 냉대로 17년간이나 멈춰 있던 서울 강서구 내 신규 특수학교 설립을 무릎까지 꿇는 강단과 용기로 이끌어낸 어머니들의 사연을 다룬 영화다. 학교 설립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대립만을 단편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폐해,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오랜 기간 고통을 당한 주민들의 애환 등 지역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충실하게 담고 있다.

 

 

여러 힘든 과정을 거쳐, 지난 5월에 개봉된 영화는 일부 지역주민과 관련된 사람들이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서 영화 상영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뿐만이 아니라, 공감하고 응원하는 수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는데 말이다. 오직 어미와 아비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녀들이 부당한 처지에 놓이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흘렸던 눈물과 땀이 스크린에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가는 길>이 더 이상 상영되지 못할까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했는데 다행히 나흘 만에 총 58,877명이 탄원에 참여한다. 그리고 이러한 뉴스가 언론에 알려지며 여론이 심상치 않자, 상영 금지를 신청했던 사람이 소를 취하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다시 캐나다로 돌려보자. 그럼 이곳 캐나다에서 발달장애인의 삶은 어떠한가? 캐나다는 연방과 주 차원에서 이중으로 장애복지서비스가 제공되는데, 연방 차원은 주로 세금 면제와 혜택 성격이 강하고 실질적인 발달장애 관련 서비스는 주정부의 재량과 관장이다.

주정부는 발달장애에 대해 법제 아래 서비스를 체계화했다. 조기 발견과 진단이 이뤄진 뒤에는 6세가 되기까지 집중적인 행동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상당한 금액이 지급되며, 취학한 뒤에는 홈케어 보조와 커뮤니티 활동 보조 등의 명목으로 지원이 이뤄지거나, 매년 평가를 통해 행동치료 지원이 연장되기도 한다.

성인이 되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경우든지 그룹 홈에 들어가든지 주거비와 생활 보조비가 지급되며, 장애인 대상 대학 진학, 직업 훈련을 받고 취업을 하기도 한다.

캐나다가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진전이 이뤄진 것은 역시 부모들의 노력이 컸다.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치료센터나 특수학교, 체육재단 등을 설립했고 지역별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보 제공과 교환, 지원은 물론 정부에 대한 압력 단체 구실을 했다.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에 비해 장애인을 자주 접하게 된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 길을 건너거나, 편의점에서 쇼핑을 하는 지체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이들이 정부 행사의 봉사자로 일하거나 홈 디포(Home Depot)나 월마트(Walmart) 같은 대형 슈퍼마켓 등에서 일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큰 점포는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는 장애학생을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스쿨버스를 운행한다. 학교에서는 특수반에 다니는 장애학생도 자신의 능력과 과목에 따라 보조교사와 더불어 일반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받기도 한다. 이곳에 살며 느낀 것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한국보다 잘돼 있고 그들을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장애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섞이고 어울리는 모습은 비장애인들에게는 다소 거북할 수도 있지만, 모두들 양보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캐네디언이 한국인에 비해 선천적으로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어서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국가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찍부터 제도적으로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캐나다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장애아나 그들의 부모들이 힘든 상황이 많다. 몇 해 전에는 캐네디언 노부부가 성인인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자살한 뉴스도 접했다. 장애아도 독립된 한 인간이고 부모도 아이와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속 모르는 소린지 모르겠으나, 한국도 서둘러 발달장애에 대한 좋은 제도를 만들어 발달장애 때문에 이민을 고민하는 부모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제도가 사람이고, 사람이 제도다’라는 말이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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