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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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죽은 사람’ 있는 사람?
Hwanghyunsoo

 

 벌써 14년 전, 아침에 가게를 열며 처음 하는 일이 문 앞에 놓여 있는 신문 뭉치를 풀어놓는 일이다. 그날 아침 신문에는 “THE FACE OF DEATH”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동양인의 얼굴이 1면에 큼지막하게 나와 있었다. 손님들이 계산대 위에 신문을 올려놓을 때마다 나와 신문의 사진을 번갈아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32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다친 뉴스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고국에서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으로 보도됐다.

 이곳 북미에 사는 많은 동포들이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을텐데…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은 이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가해자와 같은 나라 사람으로서 위로와 사죄의 마음이 들었다. 또한 희생자들 대부분이 학생들이라,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두고 있는 부모로 마음이 착잡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을 일으킨 학생은 '외톨이‘여서 같은 대학 한국인 모임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 보니 그를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고 한다. 또한 여자친구로부터 도 외면을 당하는 등 철저히 혼자만의 고독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 사건을 보며 혹시 내 자식은 어떤 환경에 있을까, 그러지 않을까? 하는 여러 생각과 함께 두려움도 느꼈었다.

 갑자기 13년 전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된 건, 며칠 전 보았던 영화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Free Writer's Diary)를 보고 나서다. 이 영화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 났던, 2007년 4월보다 3개월 앞서 개봉됐다. 원작 '더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The Freedom Writers Diary)'의 저자 중 한 명인 에린 그루웰(Erin Gruwell)이 자신이 교사로 제직했던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다.

 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이 느꼈던 좌절과 수모, 공포 등을 피하지 않고 끌어안으며 자신이 담당한 ‘203’호 클래스 아이들을 훌륭한 학생으로 바꾼 교사와 학생들에 대한 기록이다. 23살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윌슨고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게 된 에린 그루웰은 상상해왔던 것과 현실이 너무도 다른 데서 실망감과 좌절을 맛본다.

 그 학교는 교육 평준화 정책에 의해 하루아침에 명문 고등학교에서 문제 학교로 전락했다. 학생 대부분이 빈민층 아이들로 백인, 라틴계, 중국계, 흑인계 등으로 나뉘어 매일매일 싸움이 일어난다. 결국 에린 그루웰은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며 아이들의 처절한 일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된다.

 “갱단에 속해 있는 사람?”, “친구 중에 죽은 사람이 있는 사람?”, “죽은 친구가 다섯 명 이상인 사람?”, “살해 협박을 받고 있거나 당해 본 적 있는 사람?”,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

 첫 수업시간에 그러한 환경을 경험한 그루웰은 열심히 애를 써보지만 부모가 죄수가 되어 눈앞에서 끌려가거나 친구가 총에 맞아 죽는 등의 경험이 전무한 백인 여성 선생을 학생들은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 그루웰은 학교에서조차 포기한 학생들을 올바로 가르치기 위해 방과 후와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자비로 교재를 구입하고 영화나 전시회 등을 데려가는 한편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하라’며 스스로의 고민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간다.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제목처럼 한 짐 가득 멍에를 지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 주기 위한 선생의 숭고한 노력과 함께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돌이켜볼 수 있도록 특별한 무언가를 실시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노트를 주고 일기를 쓰도록 한다. ‘안네의 일기’를 통해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고자 마음먹으면 자신이 처한 환경 따위야 별 문제되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한 아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로운 작가(Freedom Writers)가 되어 자신의 삶을 기록해 나간다.

 실제로 아이들이 적은 일기를 묶어 책으로 발표하면서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다들 포기한 아이들이 석탄에서 다이아몬드로 변모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여전히 백인들의 차별을 받는 가난한 학생들이지만, 그루웰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 덕택에 학생들의 모습이 교육청과 지역신문 기자들에게 알려지면서 지역 유명인이 된다. 그루웰 선생이 맡은 반 아이들은 상당수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고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뻔한 줄거리지만 실화가 전해주는 진실성이 영화의 감동을 한껏 튀긴다. 아카데미상 수상자인 힐러리 스웽크(Hilary Swank)는 교사 그루웰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학생들에 대한 관심, 애정이 묻어나는 연기가 감동의 깊이를 더하며 신인 연기자들로 구성된 아이들 또한 실제 프리덤 라이터스 멤버들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영화의 마지막에 실존 인물과 연기자를 소개하는 장면이 좀 촌스럽지만, ‘옛 영화이구나’ 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 조승희는 아마 그루웰 같은 헌신적인 선생을 못 만났으리라 짐작된다. 아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런 행운이 없다. 북미에서 아이들을 기르는 부모들은 사실 그들의 중고등, 대학생활에 대해 잘 알 수 없고 또한 도와주거나 인생의 방향을 제시할 능력도 대부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아이들 자신이 삶을 이겨내고 공부하고 도전할 수밖에 없다.

 이곳 토론토도 이제 심심찮게 총기사고가 들려온다. 지금은 다 커버려 부모들을 보호하는 입장이 된 자식들이지만, 앞으로 우리 2~3세들의 모습은 어떨까 생각하니 영 마음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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