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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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구멍의 이치’를 깨달을 나이
Hwanghyunsoo

 

 나이가 55세쯤 되었을 무렵, 환갑이 되면 하고픈 일이 있었다.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북미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생들끼리 한번 모여 술 한잔 하며 옛 추억도 끄집어내고 흰소리도 좀 해보자는 거다.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다 싶어서 이야기를 꺼내 봤더니 모두들 ‘좋지!’ 하고 약속들을 했지만, 그 뒤 환갑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고 약속은 공염불이 돼버렸다. 그때, ‘아, 나이 들어가니,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가는거구나’ 하고, 이번에는 그 계획을 멀찌감치 10년 뒤인 칠순으로 미루어 잡았다.

그런데 세월은 야금야금 지나 조금 있으면 칠순이 다 돼 가는데, ‘야, 우리 만나기로 했던 거, 어떻게 됐어’하며 물어 오는 친구조차 없다. 가만히 보니 건강도 형편들도 옛 같지 않아서 말 꺼냈다가 “아, 그거! 없던 일로 하자”라고 할까 봐 눈치만 보고 있다.

 나에게는 아직도 연락되는 초등학교 동창생이 뉴욕에 4명, 뉴저지 1명 그리고 세인트루이스에 1명, 아틀랜타 1명, 로스앤젤레스에 1명, 저 멀리 브라질 상파울루에도 1명이 살고 있다. 물론 수시로 카톡을 하며 지내는 이들도 있지만, 대개는 연말 정산하듯 1년에 한두 번 연락하는 사이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칠순이 되는 해에 부부 동반으로 고국에 모여 같이 여행도 다니고 한국에 있는 옛 동창들도 다 같이 만나면 얼마나 좋은가?

 한국 나이로 칠십을 칠순이라고 하고 고희라고도 한다. 고희(古稀)는 ‘옛 고’에 ‘드물 희’ 자를 써, ‘예전부터 흔한 일이 아니다’라는 뜻을 가졌다. 하지만, 요즘 같이 백세 시대에 나이 칠십을 ‘고희’라 하는 건 좀 쑥스럽다. 특히 토론토 같은 북미에서는 70세 생일이라고 ‘고희연’ 같은 잔치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공자는 나이 칠십을 종심(從心)이라 했다. 從心所欲 不踰矩(종심소욕 불유구),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에서 앞 자만 따내어 ‘종심’이라 칭했다. 쫓을 종(從), 마음 심(心)을 써 제 맘대로 말하거나 행동하여도 사회적으로 나름 인정받는다는 말이다.

 공자가 제 나라 국경을 지나다가 뽕을 따는 두 여인을 보았는데 동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얼굴이 구슬처럼 아름답고, 서쪽에서 뽕을 따는 여인은 박색이었다. 공자가 이 광경을 보고 농을 하기를 '동지박 서지박(東枝璞 西枝縛)'이로다. 즉 동쪽 가지는 구슬 박(璞)이고 서쪽 가지는 얽은 박(縛)이라는 뜻이다. 이러자 서쪽 여인이 공자를 힐끗 보더니 '건순노치칠일절양지상, 이백어면천하명문지상(乾脣露齒七日絶糧之相, 耳白於面天下名文之相)'이라고 의미 심장한 말로 재치 있게 받아넘긴다.

즉, ‘입술이 바짝 마르고 이빨이 툭 튀어나온 게 7일 굶은 상인데, 귀가 얼굴색보다 흰 걸 보니 문장만은 천하에 알려질만 하겠군요’라고 공자의 관상을 한눈에 말한다.

공자는 머리에 상투를 얹고 수염을 기르고 긴 도포를 입으며 양손을 공손히 모아 근엄한 모습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의 머리는 정수리가 움푹 들어간 절구 모양이라 하여 '니구'라는 아명을 지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인물이 그저 그랬다.

 

 

 

아무튼 공자는 실없이 던진 농으로 여인으로부터 무안을 당하고 황급히 길을 재촉하다가 국경 지대서 제 나라 수비 군사에게 잡힌다. 천하의 대성현을 몰라본 군사는 확인하는 차원에서 공자를 심문한다. "선생이 노나라 성현 공자라면 보통 사람과 다른 비범한 데가 있을 터인데, 구멍이 아홉 개 뚫린 구술을 명주실로 한번 만에 꿰어 보라"고 하였다. 연 나흘을 애써 해 보았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공자는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나흘 전에 만난 뽕 따던 여인이 생각나 제자를 마을로 보내 찾아 보라고 한다.

제자는 마을로 찾아가 여인을 만나 저간의 사정을 말하자 여인은 얇은 양가죽에 밀의사(蜜蟻絲)라는 글자를 적어 주었다. 글을 받아 본 공자는 또 한 번 탄복하며 꿀과 개미 한 마리와 실을 가져오게 하였다. 개미 뒷다리에 명주실을 묶어 놓고 구술 구멍에 꿀을 발라서 하룻밤을 지내니 개미가 구술을 다 꿰어 놓았다.

 그날은 공자가 끼니를 거른 지 7일째 되는 날이었다. 공자는 여인의 말에 깊이 감동하고 ‘사물에 대한 깨우침’인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터득하게 된다. 자신의 지혜가 한 여인의 지혜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공자는 ‘격물치지’의 논리를 정립하여 70세가 되어서야 여인이 말한 ‘아홉 개의 구멍에 대한 이치’를 깨달았다.

사람은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지고 태어나서 두 눈으로 바로 보고, 두 귀로 바로 듣고, 콧구멍으로 냄새를 판단하고, 입으로는 바르고 맑은 소리를 내고, 두 구멍으로는 대소변을 막힘 없이 배설한다는 아홉 개 구멍의 이치를 70세가 되어서야 알았다고 해서, 이 나이를 '從心所慾 不踰矩(종심소욕 불유구)'라 하였고 이런 지혜를 암시해준 이름 모르는 여인을 스승이라 생각하며 산다.

 

 

내가 신입사원 시절에 쓴소리를 잘해 보도국에서 쫓겨나 우리 부서로 유배(?) 온 기인 같은 기자 선배가 있었다. 날 좋아해 이런저런 이바구를 해주곤 했는데, “사람 몸에는 눈, 귀, 코, 입 등의 아홉 개의 구멍이 있어. 나이가 들면서 건강하게 살려면 이 구멍들을 잘 닦아줘야 해. 이 아홉 구멍이 듣기도, 보기도, 먹기도, 말하기도, 싸기도 하거든. 그러니 얼마나 중요한 거야. 이 구멍을 잘 관리하고 조심해야 되는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몰라”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그저 웃어넘겼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뜻을 조금 이해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내가 70세 언저리에 와 보니 ‘종심’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좀 부끄러운 게, 가정이나 사회에 크게 보탬이 된 삶이 아닌 그저 나이만 찬 것 같아서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나와 가족을 위해서나 기도하지 남을 위한 기도에는 아직도 여유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도 점점 더 많이 늘게 되고, 습관적으로 남보다 나를 먼저 챙기는 점도 부끄러운 일이다. ‘종심’의 나이 칠십이 다 되어 가니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잘 안 들리고, 하지 말아야 할 입만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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