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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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지’와 ‘얼레지’
Hwanghyunsoo

 

 ‘좌골 신경통!’ 허리에서 시작해서 엉덩이, 허벅지, 발까지 뻗치는, 쑤시거나 타는 듯한 통증이다. 다리가 저린 감각이 생긴 건 몇 해 전부터지만, 이렇게 왼쪽 엉덩이가 쑤시고 아픈 건 처음이다. 앉아 있는 것보다 서 있는 게 편할 정도다. 다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증상을 얘기하고 처방(?)이랄까, 진료 방법을 물었다.

“일단 패밀리 닥터에게 가서 정확한 검진을 해야 해. 난, 혼자서 진단하고 열심히 운동했다가 오히려 쓸데없이 병을 키웠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 시국에 의사 찾아 다니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해 유튜브에서 ‘좌골 신경통 치료하기’를 찾아 대충 응급 치료를 하고, 혼자 공원에 나가 달밤에 체조를 했더니 다음날부터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통증이 온 이유는 무리한 정원 일 때문이다. 가장 큰 원흉은 그 놈의 ‘민들레’다. 다른 집 잔디들은 멀쩡하고 푸른데, 우리 집 민들레는 왜 이렇게 노랗게 여기저기 피어나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씩씩거리며 쭈그리고 앉아 뿌리까지 파내다가 얼마 못 가 허리가 아파서 잔디 깎는 기계로 대충 꽃봉오리만 밀어 버린다.

그렇지만, 다음날이면 ‘날 잡아 봐라’ 하듯 또 피워 오르는 노란 꽃들. 다른 해 같으면 이웃집에도 노란 것들이 제법 있어 대충 넘어갔는데, 올해는 재택근무들을 해서 인지 예년 같지 않다. 그러다 보니 며칠 뒤면 또다시 잔디를 깎아야 한다.

집 앞에 자주 나가게 되면서 벌써부터 눈에 신경이 거슬렸던 건, 앞마당의 전나무. ‘저거 밑에 가지들을 잘라 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는데, 그 날은 무슨 ‘똘기’가 들었는지, 용기를 내어 톱질을 시작했다. 사실 나무 가지치기는 일반 톱으로는 처음부터 무리였기에 밑에 있는 몇 가지를 쳐 보고, 2~3일에 나눠서 해야지 했다.

하지만, 막상 하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중간에 그만두면 보기도 싫고 이상하게 톱질이라는 게 ‘성취감’ 이랄까, 땀 흘리고 몸이 피곤하면서 얻는 묘한 매력 같은 것이 있었다. 아침나절에 시작한 가지치기를 해가 떨어질 때까지 했으니, 몸뚱이 사용을 끔찍이 싫어했던 ‘죽돌이’가 무리를 한 것이다. 이 전나무는 키가 7미터나 되어 쳐낸 가지들이 소형 자동차 정도의 분량이나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무 밑을 쳐내니, 그동안 그곳에 숨어 있던 낙엽들이 그린 빈(Green Bins) 봉투로 3개나 나왔다. 그것을 다 치우고 나니, 나무 밑이 횅해 너무 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곳에 화분 몇 개를 놓아야겠다 싶어, 코스트코(Costco)에 가서 꽃 모종을 사다가 화분 6개를 만들어 나무 주위에 놓았다. 정원 일이라는 것이 해도 해도 티도 안 나고 끝도 없는데, 정작 일하는 사람의 눈에는 손볼 것이 계속 생긴다.

어쨌든 당장 급한 것이 자른 나무를 1.5미터 간격으로 잘라, 묶음 해서 집 앞에 내놔야, 나무 수거하는 아저씨들이 가져갈 텐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군데군데 흙바닥이 보이는 곳에도 자갈을 사다가 덮어주어야 한다. 어림잡아, 자갈 8 포대를 사야 할 텐데 끔찍한 숙제다.

또 지난해 심은 모종들이 뭉쳐 난 곳도 있고 겨울을 나면서 다시 나오지 않는 것들도 생겨, 새로 간격을 떨어 뜨려 주어야 한다. 하지만, 허리 굽혀 일할 생각을 하니 겁부터 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침마다 정원에 물주기인데, 그나마 이것이 가장 쉽고 보람을 느끼는 작업이지 싶다. 내 몸의 노폐물을 빼내는 상상을 하면서 한다.

 

 

정원 가꾸기 외에 중요한 일과가 아내와 함께 동네 산책 하기다. 며칠 전은 매일 다니던 코스가 아닌, 저 멀리 베이뷰 에비뉴(Bayview Avene)를 건너 동쪽 다른 동네로 가 보았다. 평소 자동차로도 갈 기회가 없던 곳이어서 낯설었지만, 집들이 크고 정원들도 잘 가꿔져 있었다. 발 가는 데로 동쪽으로 무작정 걷다 보니 길은 없어지고 자그마한 숲이 나온다.

‘아니, 이런 곳에 숲이 있었네’ 하며 들어가 보니, 동네 사람들만 알 것 같은 작은 트레일이 나왔다. 나는 ‘맨날 집 밥만 먹다가 외식을 하는 듯’ 기뻤다. 아내가 “여기 엘레지가 있네”해서 “뭐, 이미자의 엘레지?”하며 자세히 보니 엘레지가 숲 속 가득했다. 수십 송이가 아니라, 수백에서 수천, 자세히 따져보면 아마 수만 송이는 될 듯싶은 풀들이 ‘군상의 화원’처럼 피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엘레지’라 부르는 풀은 ‘얼레지’라 쓰는 것이 맞다. 이미자의 노래 ‘엘레지의 여왕’ 때문에 그렇게 알려진 것 같지만 말이다. 보통 꽃 한 송이에 두 장의 이파리가 달리는데, 짙은 녹색의 이파리에 얼룩얼룩한 자갈색 무늬가 있다.

꽃대 끝에 노란 꽃이 한 송이씩 달리는데, 발레리나가 허리를 꺾고 손을 하늘로 향해 올림머리를 하는 모습이다. 흡사 날렵하고 우아한 춤추는 숲 속의 발레리나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질투’, ‘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영어로는 엘로우 트로웃 릴리(Yellow trout lily)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보라색 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미자를 ‘엘레지의 여왕’이라고 하지? 이미자는 1957년 KBS 노래자랑 프로그램 <노래의 꽃다발>에서 1위를 차지하며 가요계에 데뷔한다. 이후 '동백아가씨', '흑산도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여자의 일생' 등 서정적인 트로트를 불러 큰 인기를 얻는다. 1967년에 영화 '엘레지의 여왕' 주제가를 부른다.

영화 <엘레지의 여왕>은 한형모 감독이 만든 이미자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미자가 어린 시절 밥을 얻기 위해 노래자랑에 나간 사연, 고교시절 방송국 노래자랑에 출연한 일, 미군 부대 공연 무대에 나선 일화 등이 그려졌다.

아픈 할머니를 위해 콩쿠르 대회 상금으로 고기를 사간 일, 헤어진 엄마와 20년 만에 재회 등 이미자의 절절한 개인사들도 담겨 있다. ‘미자’ 역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배우 남정임이 연기하지만, 영화 곳곳에 흘러나오는 ‘동백아가씨’ 등 노래는 모두 가수 이미자가 직접 불렀다. 노래 ‘인디언 인형처럼’ 등으로 유명한 가수 나미가 이미자의 아역을 맡아 눈길을 끈 영화다.

엘레지(elegy)라는 뜻은 한국어로는 비가(悲歌)이다. 한자 그대로 슬픈 노래다. 슬픔을 노래한 문학 작품을 엘레지라 하는데, 그리스어로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에서 쓰인 운율의 종류’를 엘레게이아(?λεγε?α, elegiac couplet)라고 해서 엘레지라는 말이 유래한다. 그래서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이미자에게 '엘레지의 여왕'이란 애칭을 붙이게 된 것이다.

그러니 ‘엘레지’ 여왕과 ‘얼레지’ 꽃은 서로 다른 말이다. 얼레지는 순우리말로 “꽃이 핀 모양이 연 날릴 때 실을 감는 도구인 얼레 비슷한 데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고, 또 다른 것은 잎 표면에 얼룩얼룩한 자주색 무늬가 있어 얼레지가 되었다”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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