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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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매’가 알리는 조선 침탈
Hwanghyunsoo

 

 5년 전 서울에 계시던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황망하게 지내던 때, 여수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촌동생이 “바람 쐬러 한번 내려오세요”해서 갔었다. ‘근처 순천에 있는 선암사나 다녀오자’라고 해서 따라나서는데, 사찰에 오르며 복잡하고 어수선한 마음이 안정되는 분위기였다. 주차장에서 절까지 오르는 길이 넓게 잘 닦여져 있었고 도로 양옆에 늘어선 나무들도 꽤 나이를 먹은 듯 풍치를 보탰다. 아직 쌀쌀한 겨울이어서인지 산사는 매우 조용하고 사람들이 없었다. 안내를 해준 사촌동생이 좀 머쓱했는지 “절부터 운수암까지 오르는 담길에 있는 50여 그루의 매화나무에 꽃이 필 때면 많은 관광객이 온다”고 귀띔한다.

 선암사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백매화와 홍매화 나무가 있는데, 사찰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에 심은 것이라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아직 매화가 피지 않았지만 가지만으로도 그 틀의 기품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매화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이다. 매화꽃 위로 눈이 내리면 설중매, 달 밝은 밤에 보면 월매, 옥같이 곱다 해서 옥매, 향기를 강해 매향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양반가의 선비들이나 풍류를 즐기던 시인들은 매화를 사랑했다. 이들 양반가들을 주 고객으로 했던 옛 기생들의 이름에도 매화가 많이 들어갔는데, <춘향전>에서 성춘향 엄마의 이름이 월매이기도 하다. 조선 양반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매화를 좋아했다.

 일본 동북지방 미야기 현, 마쓰시마에 가면 즈이간지(瑞巖寺)라는 사찰이 있는데 그 앞마당에 800여 년이 된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다. 옛날 이 고장의 영주였던 다테 마사무네가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고 조선에 출병했다가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 조선 매화는 용이 누워 있는 것 같다 하여 '와룡매(臥龍梅)'로 이름 지어졌다. 본당에서 바라볼 때 왼쪽은 붉은 꽃을 피워내는 홍매화이고, 오른쪽은 하얀 꽃잎을 내미는 백매화다. 이 꽃들은 해마다 4월 중순쯤 꽃망울을 터트려 보름가량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영주였던 다테 마사무네는 예술가적 심미안을 지녔던 인물로 일본 내에서 처음으로 로마 교황청에 사절단을 파견할만큼 의식이 앞섰다. 다섯 살 때 천연두에 걸려 한쪽 눈을 잃은 마사무네는 애꾸눈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는지, 임진왜란이 나자 전시 첫해에는 동원력의 두 배인 3천 명을 보낸다. 또한 이듬해는 직접 바다를 건너가 진주성을 공략하는데 그때 나이가 27살이었다. 부산을 거쳐 한양까지 거침없이 올라가 창덕궁까지 진격한다. 그곳 선정전 앞에 있던 400년 된 와룡매에 반해 전리품으로 뽑아 챙긴다. 6개월간 참전한 후, 일본으로 귀국할 때 그 조선 매화를 가져와 가문의 선종 사찰인 즈이간지에 심은 것이다. 

 

 제2차 대전 당시 이 지역은 미군의 폭격을 받아 대부분 초토화됐지만 이 사찰은 가까스로 화를 면해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조선 매화 역시 본당 앞마당을 지키며 푸르름을 떨치고 있다. 이 절의 조선 매화가 1999년에 자목(子木)의 형태로 귀환해 눈길을 모은 바 있다. 두 그루에서 얻어낸 자목을 사찰 측이 일제의 한국 침탈을 참회하는 의미로 서울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기증한 것이다. 약 400년의 세월을 건너 분신으로나마 고국에 돌아온 셈이다.

 이 사찰 근처에 있는 마쓰시마는 일본의 3대 절경으로 꼽힐 정도로 풍경이 좋은 곳이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도 1970년대 중반에 이곳에 있는 도호쿠대학을 자주 찾았다. 반도체의 세계적 권위자인 니시자와 준이치 교수에게 자문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삼성이 반도체 부문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니시자와 준이치 교수는 이병철에게 ‘반도체 사업을 하지 마라’고 했다. 그만큼 개발도 어렵고 한국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병철은 “일본이 할 수 있으면 한국도 할 수 있다”며 밀어붙였다. 초창기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무척 어려워서 가전부문에서 번 돈을 빈도체에 다 쏟아 부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결단이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이 IT 산업국으로 가는 계기가 된다. 당시 도호쿠대학을 방문했을 때 이병철이 근처에 있던 즈이간즈 사찰을 갔을 거라는 짐작을 한다. 혹시 이병철은 와룡매를 보며 용처럼 뻗어 나가는 반도체 사업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곳 토론토에서는 매화나무를 구경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매화나무를 좋아하는 몇몇 한국 교민들이 집에다 관상용으로 심어 놓은 것이 전부다. 매화는 영어로 팜(Plum)이지만, 묘목 파는 곳에 가서 팜을 찾으면 대개 모른다. 그래서 시로 팜(Shiro Plum)이라고 해야 알아듣는데, 그나마도 있는 곳이 거의 없고 가격도 비싸다. 공원이나 들에 매화나무처럼 생긴 것이 있어 가까이 가 보면 대개 벚꽃나무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후에 캐나다 정부에게 기증한 것들이 새끼를 쳐서 공원마다 심어져 있다. 일본은 벚꽃 외교를 전 세계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그래서 세계 주요 도시마다 벚꽃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국 워싱턴 벚꽃인데 특히 포토맥 강변의 매화는 봄철 세계적인 관광거리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일본 사찰에 있는 와룡매는 자연스럽게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대의 조선 침략과 약탈을 스스로 알리고 있다. 조선 창덕궁의 와룡매를 일본에 가져 간, 마사무네의 유훈이다. "어짐이 지나치면 약하게 되고, 의로움이 지나치면 고집스럽게 되고, 예의가 지나치면 아첨하게 되고, 지혜가 지나치면 남을 속이게 되며, 믿음이 지나치면 손해를 입게 된다" 우리 조선에게 주는 가르침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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