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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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맏손녀의 영화 사랑
Hwanghyunsoo

 지난해 이맘때, 한국 언론의 관심은 <코비드 19>보다는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받느냐?”였다. “아마, 아카데미 수상은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많은 평론가들이 말했지만 시상식에서 무려 4개의 상을 받아 우리를 놀라게 했다. 당시 봉준호 감독은 벌써 세 번이나 무대에 올라와 수상소감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작품상을 수상할 때 감독과 배우, 스텝이 우르르 올라왔다. 봉 감독이 제작자 곽신애 대표에게 수상소감을 부탁한다. 그 뒤를 이어 자그마한 여인이 말을 이어가는데, 그때까지 시청자들은 “저 여자는 누구지? 어느 장면에서 나왔더라?”하며 의아해했다. 붉은색 머리를 위로 꼬아 올리고 검은 빈티지 재킷을 입은 여인이었다. 미리 준비한 듯 고급진 영어에 “아, 배우 중에 통역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대표로 소감을 준비했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다음날 언론은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받은 것 이상으로 마지막 수상소감을 한 여인에 대해 주목한다. 그녀는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었다. 그런데 “아니, 영화에 돈 투자하면 다냐?”라든가, “잘난 체하며 언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등의 부정적인 기사가 신문을 도배한다.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을 잘 아는 비평가들이 “원래 작품상 소감은 제작자들이 하는게 관례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분위기가 바뀐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영화 배급도 담당했기에 그녀의 수상소감은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영화홍보와 수상을 위해 10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원했다는 가십성 기사가 돌며 여론을 긍정으로 만든다.

 한국인의 대개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부자를 싫어한다. 그래서 부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면서도 뒤로는 경시하거나 깔보며 묘한 감정을 즐기기도 한다. 이 부회장의 수상소감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그런 마음이 깔려 있던 건 아닐까 싶다. 영화 전문가들은 “그녀가 수상소감을 한 것은 <기생충> 관계자들이 미리 준비한 순서였다”고 한다. 그녀는 평소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거북해한다. 그래서 소심한 편이고 유전성 신경질환으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해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지만 당일은 한국관객들에게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어 용기를 냈다는 것이다.

 이미경은 선친이 유학 중이던 1958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난다. 아버지가 이건희 회장의 형인 이맹희이다. 이맹희는 삼성가의 맏아들이었지만 아버지 이병철과 사이가 안 좋았다. 그렇지만, 이병철은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야무진 맏손녀 이미경을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아마 이맹희가 삼성을 승계받았다면 이미경의 삶도 달라졌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경기여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원에서 석사를 했는데, 그때부터 한국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국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결혼은 평범한 회사 사원인 김석기와 했다가 이혼하는데 슬하에 자식은 없다. 그후 전 남편은 배우 윤석화와 재혼했고 이미경은 혼자 살고 있다. ‘영화에 미친 일벌레’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추진력이 강하고, 그녀 스스로가 “나는 이병철 회장의 DNA가 흐르고 있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한국영화의 세계 시장 진출은 CJ그룹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J는 미국 할리우드에 2004년에 진출하는데, 단순히 한국영화 수출 수준이 아닌 제작사로서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그 중심에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있다. 2014년 말, 이 부회장이 갑작스럽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데, 수감 중이었던 이재현 회장을 대신해 의욕적으로 그룹을 이끌어오던 때라 말들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재판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청와대 조원동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CJ가 걱정된다. 손경식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그만두고 이미경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얘기를 들었고, 이를 손경식 회장에게 전한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배경에는 CJ그룹이 제작한 방송 문화 콘텐츠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2013년 8월부터 CJ그룹을 사찰한 뒤 ‘CJ의 좌편향 문화사업 확장’을 청와대에 보고한다. 여기에는 tvN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패러디한 캐릭터가 ‘욕설을 가장 많이 하고 안하무인의 인물로 묘사했다’는 지적을 한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몹시 불편해했다.

 이밖에도 CJ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등 좌파 계열의 영화에 투자하며 박근혜 정부의 미움을 산다. 이병철의 맏손녀가 좌파라고? CJ와 좌파, 얼핏 봐도 잘 납득이 가질 않는 조합이었는데, 영화 투자를 좌우 진영논리로 본 것부터 균형없는 시각이었다는 평이 많았다.

 

 이 부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에 가있는 동안 영화산업을 직접 챙겼다. CJ가 공들이는 지역은 세계 영화시장의 본거지인 ‘할리우드’였다. CJ 엔터테인먼트는 이미 미국 영화업계에서도 ‘아시아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스튜디오이자 제작사’로 평가받고 있고, 작품 10여 편을 미국 제작사들과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다.

 CJ가 미국 진출 초기에 노렸던 타깃은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1200만 명과 한국계 미국인 200만 명이었다. 미주지역 아시아계 영화의 유통, 배급의 60%를 CJ가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CJ는 미국에서 영화관도 직접 운영한다. 현재 CGV는 한국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LA의 한인타운 근처와 오렌지카운티의 부에나파크,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멀티플렉스 극장을 직접 운영하며 25개의 상영관을 가지고 있다.

 CJ 덕인지, 10여 년 전부터 이곳 토론토에서도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 한국 개봉작을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같은날 상영하니, 따끈따끈한 고국문화를 즐기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CJ 같은 기업들이 한국영화 투자를 계속해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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