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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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면 웃고 넘길 일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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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표 전 MBC관현악 단장이 몇 주 전에 유튜브를 단톡방에 올렸는데, “스마일(Semil)… Chalie Chaplin 곡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요즘 카톡에 이런 뮤직 비디오를 올리는 분들이 많아 무심코 지나쳤는데, 옛 회사 동지가 “작곡도 했네요. <모던 타임즈> 채플린 영화 배경 음악에 사용”이라고 댓글을 달았기에, 다시 보니 내털리 콜(Natalie Cole)이 부른 ‘스마일’이었다.

원래는 무성 영화용으로 가사 없이 배경 음악으로만 제작된 것을 1991년도에 리메이크한 것이다. 무슨 오페라의 아리아를 듣는 듯했고, 코미디언이 작곡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미로웠다.

영화 <모던 타임즈>는 찰리 채플린의 걸작 중 하나로,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현대인의 삶과 대공황 시대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풍자한 1937년의 코미디 영화이다. 채플린이 주연, 제작, 감독, 작곡까지 겸해 그의 모든 재능을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에서는 채플린 영화는 ‘빨갱이 영화’라고 수입이 금지되었다가 1988년도에나 풀려 개봉된다. 그러다 보니 그전에는 채플린에 대해 잘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원로 코미디언 남철과 남성남 콤비가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흉내 냈던 모습을 통해서다.

<모던 타임즈>를 만들기 전인 1931년에 채플린이 고향인 영국을 방문한다. 그때 그는 벌써 헐리우드에서 세계적인 배우로 성공해 극진한 환대 속에 유명 인사들과 만남이 이어졌는데, 마침 인도 독립을 논의하기 위해 <런던 원탁회의> 참석차 머물고 있던 마하트마 간디와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지 않았던 간디는 배우와의 만남이 탐탁지 않았으나 그가 빈민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마음을 돌렸고, 채플린 역시 간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신문 기사에 나온 몇 줄이 전부였다.

두 사람이 만난 날, 수많은 기자들에 둘러싸여 채플린이 먼저 말을 건넨다. 독립운동가보다 기계 문명 반대론자로서의 의견을 물었다. 간디는 “기술의 도움을 받아 세계가 진보하길 바라지만, 인간이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요. 기계가 빨라질수록 거기에 얽매인 인간의 삶도 바빠질 수밖에 없지요. 기계가 인간을 부유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인간답게 만들어 주진 않습니다. 최고의 독립이란 모든 불필요한 것을 떨쳐버리는 것이죠.”

채플린은 간디의 말 뜻을 금방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그의 지성에 깊은 인상을 받고 돌아온다. 그리고 산업화로 초래한 대공황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몇 년간 생각을 정리해 <모던 타임즈>를 만들게 된다.

채플린은 배우 활동 전, 음악에 관심이 많아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를 독학으로 익혔다고 한다. 왼손잡이였던 그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경우 줄을 역순으로 감고 왼손으로 활을 켰다. 이외에도 몇몇 자선 음악회나 가수들의 녹음 때 지휘자로 등장하기도 했고, OST(영화 음악) 녹음을 위한 리허설이나 시연회에서도 관현악단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의 영화에 음악을 직접 붙일 만큼 작곡에도 관심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다만 채플린의 영화 음악 작업은 엄밀히 말하면 초보적인 작곡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실제로 OST 작업의 기초는 채플린 자신이 어떤 곡조를 흥얼거리거나 악기로 연주해 보이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실제로 OST를 관현악용으로 정서하기 위해서는 전문 편곡자를 필요로 했다.

물론 채플린 자신은 자서전에서 이런 작업을 하면서 지휘자용 총보를 보는 법이라든가 하는 전문 지식을 익혔다고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작곡과 지휘, 영상과 음악의 싱크 작업 등을 혼자 할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늘 편곡자를 필요로 했다.

이 작업 방식은 대개 전문 작곡가들과 함께 작업하는데 익숙했던 편곡자들에게는 상당히 고역이었는데 <모던 타임즈>의 편곡과 지휘를 맡았던 편곡자 2명이 채플린과 대판 싸우고 때려치우면서, 말 잘 듣는 신출내기 편곡자가 대신 작업을 맡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어쨌든 OST에 들어간 음악 자체는 채플린 자신의 착상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작곡자는 채플린으로 등록되어 있다.

<모던 타임즈>는 이상한 질감의 영화다. 유성영화로 기획한 무성영화다. 배우들의 대사는 없는데, 음악과 배경 음향은 있고, 몇몇 장면에서는 라디오 같은 소리를 통해 말도 들린다. 원래 1920년대까지 극장에서는 관객을 위한 서비스로 영화 상영 전에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30분 정도 연주했고 상영 중에도 연주를 직접 했다.

하지만, 1930년대가 되면서 극장 소속 악단들이 하나 둘 사라졌고, 채플린은 어쩔 수 없이 필름에 음악을 새겨 넣어야 했다. <모던 타임즈>는 7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한 달 동안 연주와 녹음을 했는데, 그가 원했던 것은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에 대비되는 우아하고 로맨틱한 선율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눈물겨운 코미디를 감정적으로 더 끌어올렸다.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에서 비극과 희극을 교차시킨 연기를 한다. 중산모와 콧수염, 지팡이와 커다란 구두로 기억될 주인공 ‘떠돌이’ 캐릭터의 마지막 작품이다. 또한 무성 영화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1951년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로 찍혀 추방당해 유럽을 전전하다가 스위스에 정착해 1977년 사망한다.

내가 1998년에 캐나다 퀘벡 샤토 프롱트낙 호텔에 갔더니 채플린이 방문했다고 자랑스럽게 포스터를 붙여 놨길래 갸우뚱했는데, 돌이켜 보니 어리석었다. 그가 지나간 흔적이 바로 소중한 역사인 것을 미처 몰랐다. ‘과거? 지나고 나면 결국 웃어서 넘길 수 있는 것들뿐이지’라는 채플린의 말이 되새겨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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