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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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Hwanghyunsoo

 

아랍 에미레이트(United Arab Emirates)의 아부다비 하면 황금빛 사막과 상상을 초월하는 도시 발전이 공존하는 꿈의 도시. 최고급 승용차와 호화로운 저택을 보유한 석유 부호. 백색의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흰 드레스 형식의 의상을 입은 아랍 남성. 눈까지 가린 보수적인 검은색 의상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여성이 연상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2016년 10월, 한국의 연극 <홍도>가 공연되었다.

 

극공작소 마방진에서 만든 <홍도>는 2015년부터 해외 진출을 타진하였고 UAE 한국문화원의 초청으로 공연을 하게 됐는데, 문제는 연극의 불모지인 주최 측에서 민소매 의상을 모두 바꾸고 여성들의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릴 것을 요청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영문 대본을 아랍어로 번역하던 UAE 한국문화원 직원이 대본상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현지 아랍인인데, 대본을 수정하지 않으면 공연을 보던 현지인이나 왕족들은 아마 중간에 퇴장할 거라는 것이다.

 

주최측의 요구는 ‘여성들이 술을 마시자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술 마시는 장면도 아닌데 단지 ‘술 마시자’고 말하는 대사를 고쳐야 했다. 또한 시아버지가 웃옷을 벗고 나오는 장면도 수정한다. 여배우들은 얼굴을 가릴 수 있게 장옷을 새로 제작하였다. 그 외에 현지에서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는 단어들도 수정하였다.

 


▲연극 ‘홍도’, UAE 아부다비 국립극장서 공연

 

이외에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견들이 있었으나 국가행사임을 고려해 주최 측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딱 한 장면만은 연출가가 계속 거부했다. 홍도가 처음 기생이 되려고 기생집 주인을 만나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마저 수정하면 홍도의 굴곡진 삶을 표현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고, 현지 직원은 “공연의 초반부인데 그대로 진행하면 공연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도대체 <홍도>는 어떤 연극일까?

 

 원작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제목으로 1936년 임선규 작가에 의해 쓰인 희곡이다. 흔히 ‘홍도야 우지 마라’라고 불린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1936년 7월 극단 청춘좌에 의해 동양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홍도는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되었으나 오빠 친구인 광호를 사랑하고 결국 결혼하게 된다. 광호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으나 홍도를 사랑하여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그러나 그의 약혼자인 혜숙과 동생 봉옥, 그리고 어머니는 홍도를 쫓아낼 궁리만 하고 광호가 유학을 떠나자 누명을 씌워 끝내 홍도를 쫓아낸다.

 

 홍도의 뒷바라지로 순사가 된 오빠 철수는 동생의 억울한 누명을 분노하며 복수하고자 하지만 홍도의 만류로 광호의 귀국을 기다린다. 광호는 귀국하였으나 홍도의 억울함을 달래기는커녕 오히려 기회주의적인 나약한 모습으로 혜숙을 선택하고 이에 분노한 홍도는 혜숙을 찾아가 칼로 찌른다. 뒤늦게 달려온 홍도의 오빠는 절규하며 동생을 살인자로 연행하면서 극은 막을 내린다.

 

 ▲1938년 1월 설날에 부민관(태평로에 있는 옛 국회의사당)에서 있었던 <사랑에 웃고 돈에 울고> 신문광고

 

여주인공 홍도 역에는 차홍녀, 홍도의 오빠 철수 역에 황철, 홍도를 배신하는 남편 광호 역에 심영, 홍도를 끝까지 괴롭히는 시누이 역에 한은진 등 당대 최고 인기 배우들이 출연하였다.

 

이 신파극은 당시 경험해보지 못한 대단한 흥행을 불러일으켰다. 전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공연을 보러 동양극장 앞으로 몰려와 서대문경찰서에서 동원된 순사들이 질서유지를 위해 관객을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

 

특히 공연기간 내내 서울 시내 기생들이 떼로 몰려왔는데, 홍도와 자신을 동일시한 기생들의 눈물로 극장은 연일 울음바다가 됐다. 장안의 기생들을 구경하려고 극장을 찾은 한량도 많았다.

 

서울에서만 수십 번의 재공연이 있었지만 만원 관객이 아닌 적이 없었고 지방 공연도 연일 대성공이었다. 해방 전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때 작사가 이서구가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라는 노랫말을 써서 영화의 부주제곡으로 발표했는데, 이 노래가 대중가요로 큰 인기를 모았다. 가사 일부를 소개하면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이 극은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차홍녀는 당대 최고의 인기 여배우로 1915년 경기도 여천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극단에 입단, 연극을 시작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운 심성으로 천사라는 호칭을 들었으며 유랑극단 시절 황철을 만나 연인 사이가 된다.

 

홍도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르는데, ‘홍도'라는 이름은 차홍녀의 가운데 자에서 따온 것으로 작가 임선규가 집필 당시부터 차홍녀를 염두에 두고 썼다 해서 화제가 되었다. 황철을 사랑하면서도 당시 동양극장 총지배인이었던 최독견과 비밀리에 동거생활을 하며 고민하던 차홍녀는 쉴 새 없는 공연과 무리한 지방 공연으로 인해 인기 절정의 나이인 25살에 요절한다.

 

소년시절부터 글재주가 있었던 임선규는 ‘조선연극사’에 입단하면서 연구생이었던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 문예봉(1917~1999, 북한 인민배우)을 만나, 가족들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한다. 폐결핵을 앓는 병상 중에 집필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흥행 사상 전무후무한 히트를 하면서 조선 최고의 인기 작가로 부상한다.

 

 이후 임선규의 이름만 간판에 나가도 관객이 무조건 몰려올 정도의 인기를 얻는다. 아내 문예봉의 뒤를 이어 월북하였으나 1970년 폐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 다시 아부다비 공연이다. 우여곡절 끝에 <홍도>는 2회의 공연을 마쳤다. 현지 관계자들과 관객들은 무척 좋은 평을 해주었다. 눈물을 흘리는 현지 여성들도 꽤 있었고, 공연이 끝나고도 아쉬움에 객석을 떠나지 않는 관객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도 많았는데 자막을 영어에서 아랍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서툴다보니 극의 이해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부분이다. 여러 순조롭지 못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중동에서도 연극으로 울고 웃는 관객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한국의 유교문화가 아랍 관객들에게 큰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은 아부다비 공연의 가장 큰 성과였다.

 

토론토에도 몇 년 전부터 악극을 공연하고 있는데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도 욕심낼만한 소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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