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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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群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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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이 열렸던 여름, 프랑스 파리에 출장을 갔다. 파리는 처음이라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이곳저곳을 관광했는데 낯선 유럽의 문화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가이드는 차 안에서도 장소나 도움이 되는 정보를 수시로 토해냈다. 


어느 골목에 들어서자 “이곳은 세느 화랑가인데요, 세계적인 화가들의 전시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 파리에는 유명한 한국 예술가들도 많이 살아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윤정희, 백건우님도 있고 동백림 간첩 조작 사건으로 유명한 이응노 화백님도 계세요. 이응노 화백이 윤정희씨 주례를 섰다고 해요”. 당시에는 여러 일정 때문에 이응노 화백이 누군지, 동백림 사건이 뭔지, 관심 쓸 새 없이 흘려들었다.


 다음해 1월 중순경 신문에 이응노 화백이 돌아가셨다는 기사와 그의 전시회가 마침 호암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다는 내용을 보게 된다. 지난해 파리에서 들었던 호기심도 있고 마침 근처에 갈 일도 있어 전시회에 가 보았다. 전시 규모도 무척 컸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많았는데, 그 중 한 그림 앞에 멈추며 “아, 이건 뭐 지?”하며 순간 멈춤을 했다. 


바로 ‘군상(群像)’이라는 작품이다. 흰 한지에 먹으로 그린 것인데, 언뜻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춤을 추는 듯한 모습에 큰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전시를 통해 이응노의 생애와 작품을 보며 그가 대단한 화가임을 알게 된다. 

 

 

 
▲이응노, 군상, 1987 ⓒ Musee Cernuschi Roger-Viollet - Adagp, Paris 2017

 

 

 그렇게 잊혀졌던 이응노를 며칠전에 다시 만나게 된다. 고국의 국립현대미술관도 <코로나19>로 당분간 문을 닫았는데, 대신에 유튜브로 전시를 볼 수 있도록 영상을 올려놓은 것이다. 덕분에 해외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수준급 전시를 볼 수 있다. 


내가 본 영상은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2부였는데 큐레이터가 작품 마다 쉽게 설명을 해 주어서 그동안 흘겨 봤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한국 현대미술사를 총괄해서 보여주는 이 전시는 <광장>이라는 모티브로 기획되어 한국의 근대 화가부터 현존하는 화가의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워낙 내용이 방대해 기획이나 원하는 의도는 잘 이해 못하겠지만, 다양한 작품을 한번에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군상’도 다시 보게 된다. 


솔직히 난, ‘동백림’이 동백나무 숲인 줄 알 정도로 시사에 어두웠다. 동베를린 간첩 조작 사건은 1967년 7월,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과 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 교육을 받으며 대남적화 활동을 하였다고 주장한다. 


중앙정보부가 간첩으로 지목한 인물은 유럽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 천상병 시인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한다. 


1967년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던 64살의 이응노가 동백림(동베를린)에 간 것은 “아들 문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다. 아들 문세는 6·25 사변 때 소식이 끊어진 북에 두고 온 자식이다. 이응노는 한달음에 동베를린에 있던 북한대사관을 찾았다. 


얼마 후 한국대사관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민족 문화를 선양한 이응노 화백을 초청하겠다는 것이다. 이응노는 10년 만에 고국을 둘러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앙정보부가 만든 계략이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바로 잡혀 2년 6개월간 복역한다. 수감 중에서도 그는 잉크를 대신해 간장으로 그림을 그리고 밥알에 고추장을 칠해 조각을 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다. 


석방된 후 파리로 돌아간 그는 고국과 단절하고 한국에서도 그의 이름은 금기시돼 잊혀진 인물이 된다. 그러다가 88올림픽을 계기로 정부가 해외 교포 유명 예술가를 발굴해 홍보하며 대중에게 다시 알려진다.

 


 

▲이응노는 문자나 사람의 형상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사람들은 마치 거대한 축제 한마당에 나온 듯 춤을 추고 흥겨운 모습을 보인다.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군상(群像)’ 시리즈는 후기 작품이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집중적으로 ‘군상’ 연작을 그렸다. 문자나 사람의 형상을 반복적으로 그렸는데, 화폭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마치 거대한 축제 한마당에 나온 듯 춤을 추고 흥겨운 모습을 보인다. 


이응노는 “군상은 추상적인 표현이었으나, 1980년 5월의 광주사태가 있고 나서부터 좀더 사람들에게 호소 되는 구상적인 요소를 그림 속에 가져왔다. 2백 호의 화면에 수천 명의 군중의 움직임을 그려 넣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이 그림을 보고 이내 광주를 연상하거나, 서울의 학생 데모라고 했다. 유럽 사람들은 반핵 운동으로 보았지만, 양쪽 모두 나의 심정을 잘 파악해 준 것이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다.

 

 

 

▲이응노는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주로 사람을 주제로 수많은 집단의 인간상, 인간군을 그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이응노 작품의 주된 소재로 인간, 그것도 단순히 한 두 사람의 인간 실상을 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집단의 인간상, 인간군을 그렸다. 그의 관심은 생동하는 인간, 움직이는 인간, 역사 속의 인간에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시대다. 또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가를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군상!’ 그 속에 사람, 바이러스, 행복, 사랑도 숨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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