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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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면 잘 사나 보자”
Hwanghyunsoo

 

전래 민요 ‘아리랑’이 널리 퍼진 것은 지역마다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르면서 생긴 현상이다. 1930~40년대의 찬송가나 창가라 불리던 곡들도 알고 보면 유명한 외국 곡조를 빌려 온 경우가 많았다. 


노래 가사 바꿔 부르는 개사곡(改詞曲)의 일반적인 형태는 기존 가사의 패러디(Parody) 방식이다. 이미 있었던 노래에서 악곡은 원래 그대로 두고 가사만 바꿔 부르는 것인데, 류현진의 토론토 응원가를 만들려고 옛 자료를 뒤적이다가 재미난 것을 찾았다.


   1960년대에 흔하게 불렸던 ‘이별의 부산정거장’에 대한 기록이다. 이 노래는 1953년에 유호 작사, 박시춘이 작곡하고 남인수가 노래해 히트를 했다. 원곡 노래 가사는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 우네/이별의 부산정거장>이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가요 형식이지만, 당시의 모습과 사연이 가사에 잘 녹아 있다. 당시 배경은 6.25 전쟁으로 인해 부산에 피난 왔던 남성이 부산아가씨를 두고 떠나는 장면이다. 


난리통에 어쩌다가 정분이 맺어진 두 사람은 허름한 판잣집에 살림을 차리고 살다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작별이 서러워 아가씨는 흐느껴 운다. 드라마 같은 노래 가사는 이별 뒤 아가씨의 모습을 궁금케 한다. 이별이 이렇게 가혹한 것인가? 그들은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이런 기대가 새로운 버전의 노랫말을 만들어 낸다. 


<가기 전에 떠나기 전에 내가 사준 금반지 내놔/너 같은 것 믿고 살다 내 몸이 말라 죽겠다/애당초 살림 살이 하기 싫거든/애새끼 낳기 전에 떠날 일이지/몸부림 치는 자식 뿌리치고 가는 놈아/어디 가면 잘 사나 보자(1960년대 버전)


1980년대에 나온 영어 버전도 있다. <보슬 레인(rain) 노(no) 노(no) 사운드(sound)/이별 새드(sad) 부산 스테이션(station)/아이(I)도 굿바이(goodbye) 유(you)도 굿바이(goodbye) 눈물의 기적 크라잉(crying)/한 매니(many) 피난 리브(live) 설움도 매니(many)/그래도 돈(don’t) 포게트(forget) 판자 하우스(house)/경상도 로컬(local) 스피치(speech) 레이디(lady)가 새드(sad) 크라잉(crying)/세퍼레이트(separate) 부산 스테이션(station).


 

 


노래 한 곡으로 다양한 개사곡을 만들었던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는 대개 직설적이고 좀 비속적인 표현도 많지만, 복잡하지도 않고 일상적인 어투로 친근감을 준다. 


또한 이런 노래들은 대부분 잘 알려진 노래인데, 원래 노래가 익숙하지 않으면 가사를 바꿔도 기대가 생기지 않고 가사가 변하며 틀이 무너지는 재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피난민이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산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내가 태어난 곳이 부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3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와 그 때의 기억은 전혀 없지만, ‘판잣집’, ‘피난살이’, ‘눈물의 기적’ 등의 낱말이 낯설지 않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통해 당시 어머니의 삶과 DNA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전쟁을 치른 민족의 시련을 위로하는 노래이다. 메마른 가슴을 눈물로 젖게 하고 외로운 이들의 친구가 되었다. 한 시대의 삶을 구구절절한 한편의 시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피난살이와 이민살이는 ‘그리움’과 ‘이별’, ‘슬픔’ 등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해외에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도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사랑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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