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63 전체: 273,985 )
겨울밤, 국화 엿보기
Hwanghyunsoo

 

 

첫눈이 와도 집 문 앞에 놓아둔 국화는 좀처럼 버리기 아깝다. 9월 초에 사 놓았으니, 본전은 벌써 뽑았는데 자세히 보면 꽃만 시들었지 아직 잎은 파랗고 싱싱하다. 사실 좀 큰 대국이 보기 좋은데, 아내가 소국이 오래간다고 언제부터 인가 올망졸망한 소국을 사서 놓는다. 시든 꽃은 볼품 없지만, 오후 4시반 경만 되면 어두워지니 전등만 켜 놓으면 그게 그것이다. 내친김에 선조들의 ‘국화 공부’나 해야겠다.


 옛 선비들은 국화를 운치 있게 즐기고자 여러 방법을 고안했다. 19세기 조선 문인 이학규는 <등불 앞의 국화 그림자>에서 “등불이 국화 남쪽에 있으면 그림자는 북쪽, 등불이 국화 서쪽에 있으면 그림자는 동쪽, 상 하나에 책 몇 권과 술 두 동이 있으니, 그저 꽃 그림자 속에 이 모습을 즐겨야 하리”라고 하였다. 꽃을 직접 즐기는 것이 아니라 벽에 비친 그림자를 즐긴다. 등불을 이곳 저곳 위치를 바꿔가면서 국화꽃 그림자를 바라본다. 


이덕무 역시 <선귤당농소>에서 “흰 문종이를 바른 훤한 창문에 흰 국화꽃이 비스듬히 그림자를 만들었다. 옅은 먹을 적셔 한껏 따라 그려내니 한 쌍의 큰 나비가 향기를 좇아 꽃에 앉았는데, 나비의 수염이 구리로 된 실과 같아 역력히 셀 수 있었다.”며 묘하게 국화 즐기는 법을 글로 소개한다. 


정약용도 <국화 그림자놀이>란 글에서 “국화가 여러 꽃 중에서 특히 뛰어난 점은 네 가지가 있다. 느지막이 꽃을 피우는 것이 그 하나요, 향기를 뿜는 것이 그 하나요, 꽃이 오래도록 견디는 것이 그 하나요, 고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면서도 차지 않은 것이 그 하나다. 그런데 나는 이 네 가지 외에 특히 촛불 앞의 국화그림자에 취하여 밤마다 이를 위해 벽을 소제하고 등잔불을 켜고는 조용히 그 가운데 앉아서 혼자 즐겼다.”고 하였다. 

 

 

 

 

 

흰 벽에 비친 국화는, 꽃은 꽃대로 잎과 줄기는 줄기대로 한 편의 먹으로 그린 그림이 되었다. 꽃을 두고 이렇게 즐기는 것이 선비들의 고상함이었다. 대부분은 국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즐겼지만, 눈과 코 그리고 입으로 즐기기도 했다. 국화를 차로 끓여 먹거나 술로 담가 마셨고 꽃으로 만든 국화전도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옛 기록에 따르면 감국을 채취해 꽃받침과 꽃술을 제거한 다음 물을 뿌려 축축하게 하고 쌀가루를 묻혀 전을 부친다. 이때 꽃잎이 뭉치지 않도록 해야 모양이 곱다. 꿀에 담갔다가 꺼내어 말려둔 뒤 겨울이나 봄, 여름까지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국화는 은자나 선비의 정조를 상징하는 꽃이다. 조선 문인 신경준은 “국화는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나 있다가 여러 꽃들이 마음을 다한 후에 홀로 피어 바람과 서리에 꺾이는 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양보하는 정신에 가깝다 하지 않겠는가?”며 국화를 통해 양보하는 정신을 배웠다고 한다. 


학자 홍유손은 출세가 늦다고 불평한 후학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국화가 늦가을에 피어 된서리와 찬바람을 이기고 온갖 화훼 위에 홀로 우뚝한 것은 빠르지 않기 때문이라오. 세상 만물은 일찍 이루어지는 것이 오히려 재앙인 법이지요. 빠르지 않고 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그 기운을 굳게 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겠소? 국화는 이른 봄에 싹이 돋고 초여름에 자라고 초가을에 무성하고 늦가을에 울창함으로 이렇게 피는 것이라오. 대개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이와 무엇이 다르겠소.” 홍유손은 국화를 두고 조숙 보다는 대기만성이 중요하다는 공부를 했다.

 

 

 


 
옛 선조들은 국화를 보고 오히려 그 늦은 성장을 배우는 것이 사물을 성찰하는 공부라 생각한 것이다. 공부는 책을 통하여 지식을 확충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혜를 얻어 온전한 인격체가 되는 과정이라 하였다.


때늦은 ‘국화 공부’지만, 늦게 핀 국화꽃의 당당함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흐뭇하다. 해 가기 전에 통하는 친구들과 국화차나 마시며 방랑 공부나 해야겠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