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79 전체: 273,192 )
“그럼 ‘섹스’ 한번 넣어 주실래요”
Hwanghyunsoo

 

 

7년 전쯤 서울, 저녁 약속까지 여유가 있어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갔다. 시간도 좀 때우고 책도 몇 권 살 셈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며칠 전 읽었던 책 리뷰가 언뜻 생각나 직원에게 물었다. “제목은 기억 나질 않는데, ‘조선 최초의 희곡’이라는 책을 찾는데요.”라고 했다. 


그녀는 컴퓨터로 찾아 보더니 “그런 책은 안오는데요, 책 제목을 모르시면 내용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당연히 찾겠지 했는데… 저자도, 출판사도 모르니 난감했다. “혹시 키워드로 ‘고전’ ‘희곡’ 쳐보면 어떨까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벌써 찾아 봤다는 것이다. 


“그럼 ‘섹스’ 한번 넣어 주실래요” 했다. 말하고나니, 말이 좀 거시기한 것 같아 애꿎은 핸드폰만 쳐다 보고 있는데, 잠시 뒤 ‘찾았다’며 웃는다. 책 제목은 <북상기>였다.


‘북상기(北廂記)’는 1840년에 지어진 것으로 그 동안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희곡이다. 배경은 강원도 홍천이며, 제목에 등장하는 ‘북상’은 이 작품의 주인공 순옥이 거처하는 방이다. 61세 선비와 18세 기생의 엽기적인 사랑을 극화한 이 희곡은 동고어초(東皐漁樵)라는 사대부에 의해 한자 구어체로 창작됐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강원도 홍천의 학자였던 김낙안 선생의 61세 환갑잔치에 본관 사또가 기생들을 데려와 춤을 추게 한다. 기생 순옥의 춤을 본 낙안 선생은 한눈에 반해 순옥에게 정시를 써 보내지만, 늙은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다. 


그러나 낙안 선생은 순옥의 어미인 봉래선을 불러 “말로 안 되면 완력을 쓴다”며 협박한다. 엄마의 권유를 못 이겨 순옥은 낙안 선생에게 맹서의 글을 쓰게 한 다음, 비로소 몸을 허락하기로 한다.


그런데 다음날, 원주 상의원(왕의 옷을 만드는 관청)에서 파발이와 순옥을 침선비로 뽑아간다. 침선비는 왕의 옷을 바느질하는 기녀이다. 크게 낙담한 낙양은 상의원의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순옥을 다시 집으로 빼내온다.


그리고 칠월 칠석에 낙안 선생과 순옥은 잠자리를 한다. 합방에 앞서 엄마는 딸에게 잠자리 비방을 가르쳐 준다. 다음 날 순옥은 합방 뒤에 음부에 통증이 심하다는 핑계로 앓아 눕는다. 낙안 선생은 “어허, 그래? 그렇다면 내게 좋은 방도가 있다네.”하며 음경에 약을 발라 음부를 치료해야 한다는 핑계로 외설적 정사를 벌인다.

 

낙안 선생이 약을 바른다는 구실로 순옥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이다.


순옥 밀치는 듯, 밀치지 않는다. 


선생은 약관을 들고 바짝 다가서서 다독인다. 


순옥 눈을 감고 베개에 기댄다.


선생은 그녀의 홑치마를 열어 젖힌 뒤, 손으로 옥경(玉莖)을 잡고 그 약기름을 옥지(玉池)의 양 가장자리에 바른다. (옥경은 남자, 옥지는 여자의 성기를 뜻한다.) 한점 한점 바르자 어언간 귀두가 기세가 등등해 옥지 속에 반쯤 빠진다. 가야 할 길만 있고, 물러날 길이 없다. 


순옥: 병든 곳은 밖에 있는데 어째서 안에 발라요? 


선생: 외치(外治)가 내치(內治)보다 못한 법이다.


순옥은 몽롱한 눈빛이 갈수록 동그래지며, 창백한 뺨이 점차 복사빛으로 붉어진다.


순옥: 이런 때를, 이런 때를 견딜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 견디리!


선생: 어쩌면 좋으냐!


순옥: 어쩌면 좋아요!


순옥 뚫어지게 바라본다.


선생: 화살이 시위에 걸렸으니 쏘지 않을 수 없겠구나.


순옥: 몰염치하기는! 백 보 길에 벌써 구십 보를 지나고 나한테 물으면, 십 리도 안 되는 그 길을 내가 그친다고 그치나요? 이 몹쓸 홑치마는 여기 둬서 뭐 할 거나!


순옥 옷을 벗는다.

 

 

 

 

 <북상기>는 이런 19세기의 조선 희곡이다. 희곡은 공연을 전제로 하지만, 과연 이 희곡으로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적나라하다. <북상기>를 발굴한 안대회 교수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시대에 성을 이렇게 공공연히 말하는 건 금기였습니다. 사대부들은 여성이나 연애를 문학의 소재로 다루는 걸 꺼려했거든요. 물론 19세기 이전까지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 뿐이지, 조선 사회가 근엄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진지한 부분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안대회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한복의 옷고름은 꽉 매는 게 아니다”는 글이 옛 문헌에 나온다며 선문답하듯 흘린다. 성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 콘텐츠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