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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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데스네
Hwanghyunsoo

 
 

 1988년 일본에 처음 가서 느낀 것은 도시가 참 깨끗하고 사람들이 참 예의 바르다는 것이었다. 그 뒤 몇 번의 일본 방문 때도 “이러니까 나라가 발전하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요즘도 그런 이미지에는 사실 변함이 없지만, 섬세함 속에 지나친 깔끔함이 숨어 있는것 같다.


 요즘 고국에서는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가 언론을 통해 확대되고, 정치인들도 여론 을 타고 있다. 이곳 토론토에도 분을 못 참는 분들이 이런저런 논리로 ‘봉기’를 하자는 이도 있고,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켸켸묵은 감정이냐?”는 이도 있다. 선뜻 어느 말이 옳은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국의 지성이라 할 수 있는 이어령 선생은 1982년에 <축소 지향적인 일본인> 이라는 책을 썼다. 몇 년 전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그는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우연이었지.” <축소 지향의 일본인> 탄생은 프랑스 출장 길에서 시작된다. 1973년, 이어령은 프랑스로 향하던 중 일본에 2~3일 머문 적이 있었다. 지인을 만나러 간 그는 일본인들의 사사로운 술자리에 동석하게 된다. 화제는 외국인이 본 일본인이었다. 그도 일본 문화에 대해 한마디 거들었다. 생면부지의 일본인들 사이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농담식 대화였다.  


 “길 위에 우주인이 떨어트리고 간 물건이 있다고 합시다. 지구에는 없는 물건이지요. 그걸 주운 사람이 프랑스 사람이라면 눈으로 샅샅이 뜯어보고, 독일 사람이라면 귀에 대고 흔들어 볼 겁니다. 프랑스는 시각문화라 하겠고, 독일은 청각문화지요. ‘뛰고 나서 생각한다’는 스페인 사람은 우선 발로 깨버리고 그 속을 보겠지요. 영국은 정반대예요. 그게 뭔지 집으로 가져가 가족들의 투표로 결정합니다. 군자(君子)의 나라 중국인은 우선 점잖게 사방을 둘러본 다음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허리춤에 감춰 집에 가서 생각하지요. 골동품처럼 모셔 두고 그것이 뭔지 알 때까지 기다립니다. 자, 문제는 일본 사람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호기심으로 좌중이 조용해진다. “그 물건을 그대로 10분의 1로 축소해서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나루호토(아, 그렇구나!)’ 하며 무릎을 칩니다.” 당시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손바닥 계산기 등의 소형화로 유명해진 일본 문화를 비꼰 농담이었다.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세계 각국 문화의 핵심을 꿰뚫은 이 농담은 농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일본 유명 출판사의 사장도 있었다. 출판사 사장은 이어령에게 프랑스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일본문화론에 대한 특강을 부탁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강연장에 섰다. 한국에서 온 무명교수의 강연장에 많은 청중이 모였다. 이어령은 특유의 재치와 입담으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앞에서 하는 이 일본말은 초등학교 6학년까지 식민지 교실에서 배운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 사고하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의 40대 교수가 아니라 12세 초등학교 학생으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어떻게 일본말을 배웠는지, 당시 한국말을 사용하면 어떤 벌을 받았는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마디 한마디의 일본말 속에 멍들어 있는 한국의 어린이로 자란 이야기를 말이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러나 이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일본 문화론 강연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특유의 예리한 분석에 좌중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과 탄성이 터졌다. 이 강연은 매스컴을 탔고, 당시 주한 일본대사는 그에게 ‘국제문화교류기금’으로 책을 부탁한다. 이렇게 해서 이어령은 도쿄대 비교문화 객원연구원으로 1981년부터 1년 반 동안 동경에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쓰게 된다. 


 <축소 지향의 일본인>은 일본 특유의 섬세한 문명을 조목조목 읽어내 일본인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제시한다. 


 “일본은 확대 지향적이었을 때 언제나 패배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나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은 ‘확대 지향성’을 가슴속에 키우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은 그들의 축소 지향성이 확대 지향으로 변할 때 주변국가에도 위험을 주었다. 그들의 뛰어난 문화는 모두 ‘축소 지향’에서 비롯된다. ‘확대 지향’이 될 때 그들의 섬세한 성품은 변질되고 만다. 참다운 대국이 되고 싶으면 더 작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도깨비가 되지 말고 난쟁이가 되어야 일본은 더욱 빛날 것이다.”  


 이 책의 가치와 인기는 아직까지다. 이어령은 ‘일본은 축소할 때가 좋은 모습이다’라는 메시지를 이 책에서 전한다. 


 일본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말 중에 소오데스네(そうですね)는 단어가 있다. ‘그렇군요’라는 긍정의 의미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부정을 하는 의미가 되기도 하며, 또한 애매하게 결론을 내지 않는 의미도 있다. 요즘 일본은 한마디로 소오데스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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