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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명상-이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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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명상
- 이진엽

 

 

새들은 서쪽으로 날아가고
회색의 능선 위로 노을이 물들고 있다
빛에 휩싸인 저녁구름
어떤 놀라운 신비가 성냥을 그으며
내 가슴을 불태웠다
이 큰 우주 속에
지금 나는 어떻게 있는가
황혼아 짙어 갈수록
끝없이 헝클어지는 만상의 몸짓 앞에
나는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쉬어라, 이젠
저 먼 산마루 위로 별이 또 뜨리니
마침내 아이들도
숲길의 작은 집에서 곤히 잠들 것이다

    

 


 1956년 경북 구미 출생
 199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경북 하양 무학고교 교사 역임
 시집; <아직은 불꽃으로> 

 

 


 쉬어라, 이젠

 

  능선 위로 물드는 저녁노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이 시의 배경입니다. 성냥불을 그어 댄 듯한 붉은 노을이 시인의 가슴을 불태우며, 어떤 놀라운 신비가 그의 마음에 감동으로 전이됩니다. 시인은 큰 우주 속의 한 작은 존재로서 인식되며, 그 경이롭고 경외함에 무릎을 꿇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시에서 볼 수 있는 정경과 심상을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쉬어라, 이젠’ 이라는 짧은 시구에서 독자는 카타르시스가 됩니다. 현실적인 삶의 고단한 짐을 벗어 버리고 싶은 심상을 잘 표현한 구절입니다. 하루 혹은 일생의 노동을 마치고, 이제 노을이 지고 어둠이 밀려오면 산마루 위로 별이 뜨고, 놀라운 신비 (절대적 존재 / 자연의 섭리)는 우리를 포근히 안아 주어, 우리는 휴식의 시간으로 들어 갑니다.


 그리고 숲길의 작은 집에서 아이들도 곤하게 잠이 듭니다. 이 마지막 결구는 폭 넓은 감동으로 다가 옵니다. 우주와 나만의 교감에 도취한 자족의 경지를 넘어, 자라나는 새 생명과 큰 우주와의 신비로운 하모니를 노래함으로서, 시적 울림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진엽 시인은 시의 주제에 있어서는 현실 인식을 삼투시키면서도 언어가 지닌 울림과 향기를 섬세하게 투영해 내는 솜씨가 돋보인다.”고 문학평론가 김재홍 교수는 평합니다.


 ‘우주’라는 시어의 선택은 새로운 느낌을 주며, 더 넓고 깊은 의미로 확산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립니다.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오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희망과 사랑과 미래를 안겨다 주는 ‘아이들’, 숲길로 접어드는 작은 집에서 곤히 잠이 드는 우리 아이들은 희망과 사랑이 있는 우주 공통체의 미래를 꿈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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