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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노래-오세영
Byunchangsup

 

겨울노래    / 오 세 영

 

 

산자락 덮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 그늘 지고 산들
산이겠느냐,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간 데 없고
저녁마다 문살 긁던 다람쥐도
온 데 없다.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그들은 또 어디 갔단 말이냐,
어제는 온종일 진눈깨비 뿌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리는 폭설
빈 하늘 빈 가지엔
홍시 하나 떨 뿐인데
어제는 온종일 난을 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물소리를 들었다.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무명연시> <사랑의 저쪽>
서울대 국문과 석좌교수 

 

 

 

 

 

 


 산이 산인들 어쩌겠느냐

 

 지금 평창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모인 올림피언들의 겨울 축제가 한창입니다. 하얗게 눈 덮인 산기슭을 미끄러져 내리고 활강하고 점프하는 스키어들의 모습이 활기차고 역동적입니다. 그 설산의 원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옆의 시는 고요하고 정적입니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합니다. 설산에 포근히 안긴 산사의 모습은 평화롭습니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산까치, 다람쥐 그리고 먹을 갈아 난을 치는 풍광은 흑과 백의 대비를 이루며 고요를 넘어 적막합니다. 거기에 빈 가지에 매달려 떨고 있는 빨간 홍시 하나가 적막을 깨고 생기를 불어 넣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하루 종일 물소리를 듣습니다.


 한국현대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이 시는 오세영 교수의 대표작이며 제 4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이기도합니다. 그의 언어는 얄미우리만치 맑고 영롱하고 투명합니다. 시적 언어와 산문적 언어의 경계마저 무너진 요즈음의 시 창작 경향에 비춰 보면 그의 시에서 만나게 되는 언어는 명경지수같이 맑고 투명합니다. 그리고 정제된 형식과 단아한 문체는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줍니다.


 또한 노자와 장자에 기초한 무공사상과 선불교를 통한 역설의 논리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의 시를 관통하는 기본적 철학입니다. 그의 시안은 현상 저 너머에 있는 본질을 꿰뚫고자 하는 실존적 사유가 그의 시세계의 내면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고 평자들은 말합니다.


 고승 성철 스님이 입적하기 전, 남기신 말,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가 한창 인구에 회자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고 달관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듯한 시적 변용을 보여 줍니다.


 오늘은 설날입니다. 설산 같은 하얀 마음으로 새해 아침을 열어 봅시다.

 

 

 

 새해 첫날 새벽
 창을 열고 밖을 보아라.

 

 눈에 덮여 하이얀 산과 들,
 그리고 물상들의 눈부신 


 고요는
 신의 비어 있는 화폭 같지 않은가

 

 백지는 순수한 까닭에 그 자체로 이미
 충만하다. 

 

-    오세영의 <설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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