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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섭의 현대시 산책(4)-수인번호를 발목에 달고(복효근)
Byunchangsup

 

 

수인번호를 발목에 달고 / 복효근

 

 

 

 

대중탕에 들어서면 운명처럼
번호표 달린 열쇠를 받는다
죄인이라는 거다
관을 닮은 옷장을 열면
물음표 같은 옷걸이 하나
살아온 날을 묻는다
확인하자 벗으라 한다
양말도 벗고 겉옷을 벗고
속옷을 벗고 남김없이 벗고나면
입은 만큼 껍질로 쌓이는 시간
거울 속
수인번호를 발목에 차고
추레한 사내 하나
벗어야 할 껍질로 서 있다

 


 
 요즘같이 추운 날, 모국에 두고 온 것 중에서,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을 대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중탕을 꼽습니다. 요새는 찜질방이 대세라지만 역시 60, 70년대 대중탕이 사람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물 붓는 소리, 시끌벅적 애 우는 소리…. 지금은 그곳도 많이 변했겠지만, 다시 한번 그때 그들과 함께 등 비비고 싶은 곳, ‘대중탕’ !


 위의 시는 탈의실 풍경입니다. 탕 안으로 들어가기 전, 시인은 번호표를 받고 수인번호를 떠올리며,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산다는 게 매일매일 죄를 짓는 행위의 연속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기서의 ‘죄인’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라는 의미보다는 ‘양심을 저버린 자’라는 보편적인 의미일 것입니다.


 옷장 속의 옷걸이는 그 동안 살아온 날들을 묻는 물음표로 인식되며, 양말과 옷을 벗는 행위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던 체면과 위선 등, 나를 보호하고 방패막이를 하는 그 ‘껍질’을 벗으려는 의지이며, 반성과 확인의 시간입니다.


 이 시는 번호표를 수인번호로, 옷장을 관으로, 옷걸이를 물음표로, 옷을 껍질로 상징화하고 있습니다. 옷 벗는 행위를 통해 세상의 먼지(부정/불의)로 더럽혀진 자신의 모습을 씻어내려는 자기 성찰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거울 속에서, 벗어야 할 또 하나의 ‘껍질’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러워지고 두꺼워진 마음 속의 껍질(때)일 것입니다.


 수인번호를 발목에 찬 추레한 우리들!. 자, 모두 함께 탕 속으로 들어 갑시다. 마음의 때를 씻어 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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