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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ltm222
꽃분이 찾아 삼만리..........사랑하는 자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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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자가 성공한다
zltm222

꿈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꿈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가 된 석지영 교수는 그 꿈을 현실로 일구어냈다. 비결이 있다면, 그저 일을 즐기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가 된 석지영 교수는 많은 국내 젊은이들의 꿈이고 미래다. 그녀가 보여준 '가능성'은 어린 시절을 되짚어보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특별해서라기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녀는 조금 더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좌절의 순간에도 방향키를 놓지 않았던 그녀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나눴다.

 

여섯 살 소녀의 생존 본능


석지영 교수의 가족은 그녀가 만으로 여섯 살이던 1979년 여름,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전문직 유입을 반긴 당시 미국 사회에 수많은 국내 의사들이 이민자로 정착했다. 석 교수의 가족도 그중 하나였다. 물론 의사소통은 수월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을 절반쯤 마친 어린 석지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마디의 말도 이해할 수 없는 낯선 환경에 놓여졌을 때 그 극한의 공포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언어는 저와 세상을 이어주는 끈이었어요. 그 끈이 끊어지자 혼란에 빠졌죠."

친구를 사귀는 것은 고사하고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깊어지는 고립 속에서 그녀의 존재는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자 조금씩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던 소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 변하기 시작했어요. 영원히 걷힐 것 같지 않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죠."

당시의 경험은 그녀의 일생에 두고두고 영향을 주었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생존 본능을 일깨웠고, 한국말로 '눈치'가 생겼다.

"언어 이해에 전혀 문제가 없는 지금도 때때로 그 시절 느낀 고독의 물결이 밀려와요. 그때마다 어린 시절 맛보았던 정체 모를 단절, 거기에서 오는 기묘한 감각을 느끼곤 합니다."

 

 

1 1991년 줄리어드 예비학교 졸업식에서.

2 1978년 제주도에서 맞이한 동생 생일에 가족과 함께.
3 SAB에서 발레하던 시절.

4 1999년 옥스퍼드 대학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5 어린 시절 한국에서 유치원 소풍 때.

발레리나를 꿈꿨지만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다
석지영 교수는 (영문)소설과 시가 읽히기 시작했을 때를 "내 인생이 바뀐 전환점"이라고 회상한다. 책 읽기는 그녀의 피난처였다.

"책에 나온 주인공들의 생각과 느낌을 읽노라면 마치 제가 그들의 친구인 것처럼, 그들이 저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때만큼은 혼자가 아니었죠."

하지만 석 교수의 어머니는 딸이 책에만 파묻혀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이 다재다능하기를 원했다. 그래서였을까. 제인 오스틴의 팬이었던 석 교수는 < 오만과 편견 > 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춤도 잘 추고 연주 솜씨도 훌륭한' 사람으로 자신을 가꾸어나갔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발레 레슨도 받았죠. 한번은 뉴욕시티발레단의 < 호두까기 인형 > 을 보러 갔어요. 무용수들의 완벽한 몸매, 흠잡을 데 없는 무용 스텝,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장관에 넋이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발레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그녀는 그날 무대에 선 어린 무용수들을 기억해두었다. 팸플릿에 적힌 아이들의 소속은 SAB(아메리칸발레학교의 약자). 어린 석지영이 첫 목표로 삼은 드림 플레이스다.

"조용히 SAB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낸 무용수들의 사진으로 노트가 꽉 찼죠. 그리고 8월 말에 연례 오디션이 열린다는 소식을 알았어요."

영재들을 위한 특수실험학교 '헌터스쿨'에 딸을 보낼 생각이었던 어머니는 SAB 오디션에 참가하려는 딸이 마뜩치 않았다. 마침내 오디션에 합격한 딸에게 어머니는 단호한 거절을 '선고'했다.


"제 생명이 걸린 양 애걸했어요. 대입 내신은 9학년부터 들어가니 그전까지는 괜찮지 않느냐고 설득했죠. 결국 9학년이 되면 반드시 그만두는 조건으로 다니는 걸 허락받았어요."

그녀는 십 대 시절 온전히 발레에 사로잡힌 채 보냈다. 뉴욕시티발레단의 공연이 열리는 링컨센터는 그녀가 도서관 다음으로 자주 가는 장소였다. 하지만 어머니와 약속한 SAB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모님은 SAB에 대해 언급조차 않으려 하셨어요. 저는 헌터스쿨에 계속 다녀야 했고 발레를 포기해야 했죠. 취미로 춤을 출 순 없었어요. 여러 가지를 다 잘할 순 없었으니까요. 레슨을 전부 그만두었고, 전 패배했다고 생각했어요."
그토록 원하던 꿈이 부모의 의지로 꺾였을 때 누구라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가장 중요한 고비의 문턱에서, 그녀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매우 고통스러웠어요. 사실 그리 잘 견뎌내지 못했죠. 그 대신 예술에 대한 열정을 음악 같은 다른 것들로 돌리려고 노력했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것만이 방법이었어요."

어머니의 '쓸데없지 않은' 잔소리

석지영 교수의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았다. 간섭도 많고 규제도 많았지만 석 교수는 "그 간섭이 쓸데없는 잔소리에 그친 적은 결코 없었다"고 기억한다.


"저희 부모님에게는 '교육'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어요. 부모님 덕분에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해 궁극적인 자유를 얻었죠. 조금 더 유연함이 주어졌다면 좋았겠지만, 어머니의 도움과 의지에 깊이 감사해요."

중·고등학교 시절 자유가 없었다고 말할 법도 한데, 그녀는 오히려 지금 얻게 된 자유의 감사함을 이야기한다. 자유를 적당히 통제받았기에 지금의 진정한 자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헌터스쿨을 졸업하고 예일대로 진학했을 때, 그녀는 또 다른 자유를 맛봤다.

"저는 대학을 사랑했어요. 그 시절, 저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은 제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심지어 무엇을 공부하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를 신뢰하기 때문이었는지 세세한 관심이 부족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건 진정한 선물이었죠."

프랑스문학을 전공하며 보들레르의 시에 빠져든 그녀는 대학 마지막 해 마셜장학생에 지원한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보다 깊은 학문을 탐구했지만,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이 들었다.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분명 즐거웠지만 그것을 쓰는 일이 결코 기쁘지 않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야 했어요. 이 길에 머문다면 억지로 해야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누가 봐도 성공한 삶처럼 보였지만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어요."

1999년 가을, 석지영 교수는 결국 하버드 법대에 입학했다.

 

1 피아노를 가르친 줄리어드 예비학교 올레이냐 푸스키교수와 함께.
 

2 줄리어드 예비학교 시절 피아노 독주회에서.

3 1994년 예일대 친구들과 할로윈 파티에서.


4 1995년 옥스퍼드 워드햄 칼리지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들어가기도 힘든 아이비리그를 그녀는 두 곳이나 거쳤다. 예일대를 졸업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하버드 법대를 다시 한 번 졸업했다. 명문대 진학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석 교수가 답했다.


"지금은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보다 명문대 진학이 훨씬 더 어려워진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믿어요. 대학은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된 학생을 원하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는 것을요. 단순히 부모의 지시와 바람만 따르지 마세요. 자신의 힘으로 추구하고 원해야 해요."
그녀 역시 맹모의 치맛바람 못지않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학문과 예술을 즐겼다.


석 교수는 종종 자신의 강의에서 'Do what you want(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를 강조한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이상적인 조언이 아니냐는 질문을 조심스레 던졌다.

"그보다 더 좋은 조언은 드릴 수가 없어요.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일을 찾는 것, 그보다 더 좋은 조언이 있을까요?"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인 석지영 교수의 강점 중 하나는 인문학과 예술을 법에 접목시킨 강의다. 문학을 전공하고 발레와 피아노에 심취한 그녀는 여느 법대 교수들과는 다른 감성을 갖고 있다.


"예술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제 인생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을 거예요."

종신교수직이 부여하는 혜택은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쭉 추구해온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종신교수에게는 과거보다 더 우수하고 혁신적이 되기 위해 어떤 학문적 탐구든 추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점에서 많은 자유를 얻었죠. 한국의 학생, 리더, 독자, 청중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된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한국에서 그녀의 종신교수직 임명은 대단한 화제가 됐다. '하버드' 세 글자가 주는 한국의 학부모, 학생 들의 인식은 상아탑이기 이전에 어떤 숭고한 명함이다. 그가 한국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은 이것이다.


"수업 시간에 기죽고 자신 없어 하는 학생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든 글을 쓰는 것이든 노력해서 익힐 기회를 찾아야 해요. 기가 죽어 있는 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행동으로 부딪치며 숙달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교육철학은 무엇일까.

"저는 아이와 학생들에게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습득하는 것의 진정한 기쁨과 환희를 전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그러한 기쁨을 스스로 알게 되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어머니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6살에도 16살에도 26, 36살이 되고 그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도 언제든 이야기하고 싶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녀가 바라는 어머니 상은 소박하다. 아이가 언제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엄마, 언제든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