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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경제 및 시사문예 종합지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품격 있는 언론사로 발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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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下山) 길에서-가을은 내려놓는 계절
ywlee

 

 

 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계전오엽이추성)(연못가 봄풀의 꿈도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계단 앞 오동나무 잎새는 어느덧 가을 소리를 알리네)-朱子(주자)의 偶成(우성)

 

 가을을 묘사하는 말이 참 많다. 고독의 계절, 추억의 계절, 우수의 계절, 허무의 계절, 사색의 계절, 독서의 계절… 서늘한 바람결에 코트 깃을 올리노라면, 포도(鋪道)에 뒹구는 노란 은행잎을 밟노라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찬별을 보노라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에디뜨 삐아프를 듣노라면, 커피잔에 어리는 빛바랜 옛사랑을 추억하노라면, 가슴 한켠에 쓸쓸한 바람이 스쳐간다.      

 

 아련히 흐려져가는 고향집 뒷마당의 감나무엔 지금도 까치 감이 남아 있을까. 풍경소리 서러운 수덕사의 법당엔 지금도 일엽스님의 흐느끼는 그림자가 비쳐질까. 대청호 기슭에 누워계신 어머니 아버지는 밤이면 춥지 않으실까. 덕수궁 돌담길엔 지금도 다정한 연인들이 거닐고 있을까. 캠퍼스 잔디에 쌓인 마로니에 낙엽은 누가 치울까.

 

 가을은 내려놓는 계절이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가을의 정수(精髓)를 음미할 수 있다. 코스모스 핀 들길을 호젓이 거닐며 나만의 추억에 잠겨보는 계절. 눈부시게 아름답던 처녀시절 아내, 그대와 함께 손잡고 걷던 가을 들녘의 ‘화사랑’ 철길은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때 막걸리 맛은 지금도  그대로 있을까.       

 

0…내려갈 보았네 / 올라갈 보지 못한 /  -고은 시인 ‘그 꽃’(2001)

 사람은 앞만 보고 달리거나 인생에서 한창 오르막일 때는 주변을 잘 보지 못한다. 오로지 정상을 정복하려는 마음 때문에 야산에 흐드러지게 핀 꽃이 아름다운 줄도, 주변 경치가 눈부시게 장엄한 줄도 모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오르자니 곁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정상에 올라 한숨 돌리고 난 뒤 하산할 때서야 비로소 안 보이던 꽃도 보이고, 주변 경치도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한창 물불 안가리고 위만 향해 달릴 때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나 시간을 갖고 천천히 주변과 자신을 돌아보면 보이는 것이 참 많다. 이래서 사람은 가끔은 내려올 때도 있어야 한다. 가을은 이처럼 산에서 내려오는 계절이다.      

    

 한때 잘 나가던 정치인이 선거에 낙선하고 산으로 출근하던 어느날 대포집에서 나와 마주 앉았다.  그는 말했다. “오직 성공하겠다는 목표만 갖고 악착같이 뛸 땐 나 자신이나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지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일이 눈에 많이 띄더라. 자신을  돌아보며  재충전도 하고 서민들의 고충도 더 이해하게 됐다. 숨막히는 인생길에서 가끔은 이렇게 하산(下山)하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0…유력 정치인이나 관료 주변에는 평소 사람들 발길이 들끓는다. 하지만 현직에서 물러나는 순간, 그리도 줄을 잇던 사람들이 갑자기 뚝 끊긴다. 그래서 허구한 날 산행으로 울분을 달래는 이들이 많다. 홀로 산에 올라 사색에 잠기면서 비로소 참다운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그런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인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오묘한 것이 인생이어서 모든 게 세월이 흐른 후에야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다. 행복의 시절에도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른 채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느라 마음고생을 하다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때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깨닫는다.

 

 고난과 역경의 순간을 맞으면 인생 자체가 암담해 보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고난과 역경 역시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한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곧 현재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인생은 견딜만하다는 것이다.        

 

0…이스라엘 왕 다윗이 어느 날  궁중의 보석세공사를 불러 지시했다. “내가 늘 지니고 다닐 반지를 하나 만들되 그 반지에 글귀를 새겨 넣어라.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큰일을 이뤘을 때 그 글귀를 보고 우쭐해하지 않고 겸손해질 수 있어야 하며, 또한 힘든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주는 그런 글귀를.”

 

 세공사는 정성을 다해 반지를 만들었지만 고민에 빠졌다. 어떤 글귀를 새겨야 왕의 마음에 들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는 고민을 거듭하다 지혜롭기로 유명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한참 생각하던 솔로몬이 말했다. “이렇게 써넣으세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인생길이 항상 탄탄대로일 수만은 없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시련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럴 때 “모든 것은 지나가게 돼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0…허허로운 인생길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서 악연의 덫으로 옭아매는 일도 숱하다. 올해도 내곁을 스쳐간 사람이 많다. 개중엔 아름다운 인연도 있고, 또 개중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다. 인연이든 악연이든 시간이 흐르면 이내 낙엽처럼 묻혀질 것이다.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간다…” (법정 스님)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