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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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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배경 영화 (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7.끝)
youngho2017

 

(지난 호에 이어)

 결국 아랍의 독립을 바라는 로렌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더욱이 영국군은 애당초 아랍국의 독립 따위는 허용할 마음이 없었다. 18세기 중반~19세기 초반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의 주요 동력원이었던 석탄을 대체할 미래의 에너지원으로서 석유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나고 아랍 민족의 독립을 논의할 시점이 서서히 다가오자 열강국들은 아랍의 분할통치 음모를 기도하는데…. 급기야 로렌스는 대령으로 진급되면서 곧바로 제대 명령을 받는다.

 

 파이살이 말한다. "늙은이들이 협상해서 이제 전쟁을 끝냈소. 젊은이들이 일으키는 전쟁은 용기와 희망이 느껴지고 생기가 있소. 그러나 늙은이들은 평화를 원하지. 평화 속에는 불신과 경계라는 늙은이들의 악덕이 숨어 있다오. 피할 수 없지." 그리고 물러나가는 로렌스의 등 뒤에 대고 "자네에게 진 신세는 이루 말로 다 못한다."고 말하는 파이살. 그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파이살이 '아랍이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는 제목으로 로렌스의 사진과 함께 톱기사로 난 시카고 데일리 신문을 알렌비 장군과 드라이든 자문관에게 내민다. 그 때 알렌비가 "영국장교에 의한 해방이었다."고 강조하자 파이살 왕자는 "그럼 로렌스는 다용도 칼이었군. 이젠 우리 모두에게 필요없게 됐군요."라며 "당신은 평범한 장군에 불과하오. 난 왕위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이오."하고 위엄있게 나무란다. [註: 파이살 왕자는 아랍 수니파로 1921년 8월23일부터 죽기까지 이라크 국왕을 지냈다. 이 이면에는 '여성판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불리는 거트루드 벨(Gertrude Margaret Lowthian Bell, 1868~1926)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고고학자, 탐험가이며 제1차 세계대전 때 최초의 여성 정보장교로 카이로에 근무했던 벨의 강력한 건의에 따라, 영국을 도와 오스만 터키 제국과 싸웠던 파이살을 이라크의 국왕으로 옹립하였다.

 

 '이라크를 사랑하고 영원한 고향 바그다드에 묻힌 여인' 벨은 새로 탄생한 이라크를 위한 헌법을 만들고 이라크와 요르단의 국경선을 획정(劃定)하는 데 일조하면서 왕의 조력자가 되었다. 그녀가 이라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타계하기 한 달 전인 1926년 6월16일 개관한 '이라크 국립박물관'이다. 평생을 미혼으로 산 거트루드 벨을 소재로 한 영화가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79) 감독, 니콜 키드만 주연의 '사막의 여왕(Queen of the Desert·2015)'이다. 이 타이틀은 벨의 별명이다.

 

 그러나 그녀가 만든 이라크 왕정은 1958년 쿠데타로 막을 내리고 공화정이 된 이래로 지금은 아랍 수니, 아랍 시아, 쿠르드 세 파로 나뉘어 혼란을 겪고 있다. 80여 년 동안 권좌를 무력으로 지키다 아랍 시아에 권력을 빼앗긴 아랍 수니가 IS(이슬람 국가) 극단주의자로 되어버린 오늘날 이라크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누구를 탓해야 할까?…]

 

 로렌스는 아랍인들과 동화되어 항상 아랍인 의상을 입고 진정으로 아랍인들의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본래 영국 정부의 의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적국 오스만 터키 제국의 후방을 교란시키기 위해 그들의 지배를 받고있던 아랍 민족들을 선동해 '사막의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정치·외교적 필요성이 존재했을 뿐 약소국과 약소민족에 대한 배려는 물론 언감생심 독립시켜준다는 약속을 지킬 생각은 전혀 없었음이 드러난다.

 

 또 한편으로 아랍민족은 물론 로렌스의 신념(信念)에 의한 인간적인 노력이, 힘과 권력이 정의인 정치적 게임에 의해 그저 전쟁의 소모품이자 장기판의 말로 이용 당해 토사구팽(兎死狗烹) 되는 처지가 왠지 서글프고 허망하게 느껴진다. 무릇 개척자, 선구자의 삶은 따로 있고, 그것을 향유(享有)하는 사람은 뒤에 따로 있는 법이다!

 

 이들의 대화를 부동자세로 듣고 있던 브라이튼 대령이 울컥하며 급히 밖으로 뛰쳐 나간다. 눈물을 글썽이며 로렌스를 찾지만 그는 이미 떠나고 없다.

 

 한편 기가 죽은 로렌스를 태운 지프차 운전병이 "고향으로 돌아가시나 보죠?"하고 묻지만 대답을 않는 로렌스. 그의 차 앞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이는 오토바이 사고로 그가 죽을 것임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첫 시작 장면과 연결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엄청난 제작비와 명배우들의 명연기, 웅장한 연출이 돋보이는 대작이지만, 실존 인물과 가공 인물이 혼재해 있으며, 그 내용에 깔려있는 은근한 서구 문명 및 백인 우월주의는 개봉 당시부터 비난도 많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이해하면 전혀 반대이지 싶다.

 

 요컨대 영국의 모험가이자 지식인 군인이었던 로렌스의 일대기를 통해 사막이라는 대자연 앞에서 벌어지는 식민제국주의의 전쟁과 정치적 배신이 얼마나 치졸(稚拙)한 것이며, 인류의 정의와 세계관이라는 잣대로 보면 인간의 국지적(局地的)이고 단견적(短見的)인 탐욕이 얼마나 허무하고 덧없는 것인지를 보여준 명작으로 기억된다.

 

 T. E. 로렌스의 오토바이 사고가 난 지점인 영국 돌셋(Dorset) 군 웨어럼(Wareham) 읍의 Clouds Hill 길가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가 묻힌 Moreton 묘지에는 시편 27장인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Dominus illuminatio mea)"라고 새긴 묘비가 있다. 이는 그가 졸업한 옥스퍼드 대학의 모토이기도 하다.

 

 실제 T. E. 로렌스가 타던 오토바이는 최고시속 160㎞를 달리는 '오토바이의 롤스 로이스'로 불리는 '브라우 슈피리어 SS100' 모델로 런던 전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고가 난 지 6일 후인 1935년 5월19일에 아깝게도 46세로 사망했는데 그 원인은 치명적인 뇌손상이었다. 그로부터 헬멧 착용이 의무화 되었다.

 

 사막 장면은 요르단의 와디 럼 및 모로코에서, 사령부 등 건물은 주로 스페인 등지에서 촬영됐다. [註: '와디(Wadi)'는 비가 오는 우기에 물이 흐르는 곳을, '럼(Rum)'은 물이 모여 넘치는 곳을 뜻하는데, 와디럼 사막의 샘물 이름이 '로렌스의 샘'이라고 불린다.]

 

 영국 배우 피터 오툴(Peter O'Toole, 1932~2013)이 출연한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와 '로드 짐(1965)'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 때 봐서였는지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후로 그의 열렬팬이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백만장자의 사랑(1966)' '굿바이, 미스터 칩스(1969)' '라만차 돈키호테(1972)' '칼리굴라(1979)' '마지막 황제(1987)' 등을 봤지만 위의 두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피터 오툴은 아카데미상에 8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끝)

 

▲ 전후의 터키와 중동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 통치한다는 밀약(密約)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로렌스(피터 오툴). 왼쪽은 드라이든 아랍 군사자문관(클로드 레인즈)

 

▲ 로렌스는 아랍인이라는 동기보다는 현상금이 걸린 죄수 등 돈에 눈먼 사람들로 군대를 만들어 다마스쿠스를 공격한다.

 

▲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터키군에 의한 타파스 마을 학살 현장을 목격하고 치를 떠는 아우다(앤서니 퀸), 로렌스와 알리(오마 샤리프).

 

▲ 타파스에서 '죄수는 없다!'며 터키군에게 돌진하다 죽은 부하의 분루를 삼키며 이성을 잃고 모조리 학살해 버린 로렌스의 모습. '이에는 이로!'라는 사막의 율법을 따른 것이다.

 

▲ 뒤늦게 도착한 벤틀리 기자는 "당신의 역겨운 모습을 찍어 빌어먹을 신문에 내겠다."며 로렌스의 이 모습을 찍는다.

 

▲ 아우다(앤서니 퀸)가 다시 돌아가자고 권하지만 "다시는 사막을 안 보겠다"고 말하는 로렌스. 다마스쿠스까지 점령했지만 결국 아랍의 독립을 바라는 로렌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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