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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scollege
조주연 (Joyoon Cho)
현 퀸즈칼리지어트 학장, 문학박사 (사회언어학)

2 Gibbs Road, Toronto, ON, M9B 6L6, CA
416-231-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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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인가? ( Who are you? )
queenscollege

지난번 살펴본 “나는 누구인가?” 는 자기자신의 신분 (identity) 을 확인하여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았다. 오늘 주제인 “너는 누구인가?”는 상대를 알고 이해함으로써 얻어지는
경우로서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나 자신을 알면서도 나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부족하여 문제되는 수가 많이 있다. 상대방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상대가 나 보다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상대가 나보다 얼마나 더
훌륭한지도 잘 알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를 써서 변명하는 수가 많다. 상대를 알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따를 때 얼마나 좋은지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자.

 

첫째로, 부모의 경우이다. 부모가 누구인지를 모를 때 엄청난 모순을 가져온다. 부모 없이
나 자신은 실제로 없다. 나 자신의 탄생의 비밀이기에 그렇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신의
창조물이라고는 하지만 부모 없는 나라는 존재는 근본적으로 불가능 한 것이 어김없는 사실이다.
부모는 나를 낳고 길러주고 가르쳐주신다. 대가(compensation) 를 요구하지도 비용 (cost) 을
생각하시지도 않는다. 그저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신다. 이런 부모님의 존재를 무시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걱정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안 듣는 것은 구태여
말하지 않더라도 보모님에 대한 언어적 (verbal) 비 언어적 (non-verbal) 행동이 정말 가관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되면 공부 잘 하고 좋은 학교에 갈 수도 없겠지만, 소위 세상적으로
성공한다 해도 그런 사람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옛 부터
어른들은 부모를 모르는 버릇없는 자들을 놓고 호리자식 (호랑이나 이리의 아들이나 딸) 이라고
혼을 내셨던 것이다.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를 따를 때 잘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
어떤 부모도 자식에게 잘 못 되라고 하고 공부하지 말라고 하고 그릇된 길을 가라고 안내하는 경우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선생님의 경우이다. 선생님이 보모와 같이 무조건 사랑하고 무한히 인내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부모 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상대는 선생님의 경우이다. 아무리 세상이
물질 만능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여도 직업의 성격으로 보나 그들의 임무를 보아도
부모 다음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경우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모의 은혜
다음으로 스승의 은혜를 말한다. 선생님을 좋고 나쁘고 따지는 학생들은 많이 본다. 보기에 좋지
않다. 선생님에게 배우려고 하고 따르려고 하고 나 자신을 선생님께 맡기려고 할 때 잘 못 되는
경우 또한 전무 (nothing) 하다. 나의 기분을 맞춰 줄 때, 나를 인정해 줄 때만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은 크게 될 수가 없다. 쓴 소리로 충고해주는 선생님, 약점을 말 해주는 선생님에게 귀를
기울이는 학생은 반면에 크게 될 기능성이 많다. 나를 고칠 수 있는 것은, 나를 발전시키는 것은
단 소리 (sweet talk) 가 아니라 쓴 소리 (bitter advice) 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이익을 바라고
잘 해주고 못 해주는 직업이 아니다. 따라서 선생님을 존중하고 따를 때 인생이 바뀌어지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선생님들은 학문적으로 선배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사람들은 스승을 통하여 발판을 마련하였음은 말 할 것도 없다. 헬렌켈라 (Helen Keller) 와 설리반
선생님 (Annie Sullivan) 의 경우는 그 대표적 경우라고 하겠다.

 

셋째로, 가족의 경우이다. 일찍이 섹스 피어 (William Shakespeare) 는 존재의 대 사슬 (the
great chain of being) 이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자고로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은 자체적으로
위 아래가 있어서 이 질서가 무너질 때 문제가 야기되고 갈등이 되고 이 결과 파국이 온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현상이 바로 문학의 소재가 되어 그가 쓴 희곡들, 즉 Hamlet, King Lear,
Othello 등 많은 작품들이 바로 이 ‘존재의 대 사슬’을 주제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존재들은
태생적으로 순서가 있어서 맨 위가 있고 맨 아래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맨 위는 왕
(King) 이고, 꽃 중에서는 장미 (rose) 이고, 광물 중에서는 다이아몬드 (diamond) 이며, 동물
중에서는 사자 (lion) 이라는 것이다. 가족의 경우에 정확히 ‘존재의 사슬’ 논리를 적용하기에
무리이고 논란거리 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 가정에는 아버지라는 가장이 있고, 아우보다는 형이고,
아버지 보다는 할아버지 이시다. 이런 순서가 무너질 정도로 예의가 없거나 따름 (following)
이 없거나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질서가 무너지고 궁극적으로는 위 아래가 없고
부모 자식의 관계가 없으며 자녀교육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요즘 여권 (woman power) 이
잘 못 이해되어 어머니가 자식 앞 에서 아버지를 무시하고 결정하는 일들이 제법 있는 것 같다.
특히 캐나다에 자녀교육을 위해 이민 오셔서 아버지들의 위상이 고국에서보다 많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이든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 혼자서 좌지우지 할 때 함께 오는 결과는
불행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가정에서도 보이지 않는 질서가 상존 할 때 자녀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부부간에 서로를 알고, 부모 자식간에 서로를 알고,
형제자매간에도 서로를 알고,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따를 때 불협화음이 아니라 대 화음으로
모두가 잘 되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가 연출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존재의 대 사슬’의
논리는 한번 생각해 볼 만 하다고 하겠다.

 

넷째로, 사회의 경우이다. 인간의 사회는 법과 규칙으로 이루어진 공동체 (rule governed
community) 이다. 미국의 사상적 건설자로 알려진 초절주의자 (transcendentalist) Ralph
Waldo Emerson은, 하나님은 절대 정당 (just) 하시고, 절대 공평 (fair) 하시며, 절대 질서
(order) 이시다. 이런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nature) 은 당연히 절대 질서 (absolute order)
로서, 우리 인간이 절대 질서이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법 (law of nature) 을 지키면 아주
이상적인 사회 (high society) 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가장 이상적인 법 (high law) 을
전제로 하는데, 이와 같은 법 또한 질서를 순리대로 따르는 우리 인간 구성원들을 전제한다. 이와
같은 세상은 꿈과 같다 하여도 최소한 인간이 스스로 만든 성문화된 법과 질서는 지켜야 된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여 시종일관 거부하고, 회사에서
자기에게 월급을 주는 사장님을 시간 날 때마다 뒤에서 욕하고, 내가 급하다고 하여 줄을 서지 않고
기다릴 줄을 모르고, 아이들이 어른들 앞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할 때,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온데간데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가정과 같다. 위와 아래가 있고 법과 규칙이 있고,
따라서 여기에 맞는 언행이 있고 또 적절한 태도 (appropriate attitude) 가 요구되는 것이다.
사회라는 공동선 (public good) 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불행한 존재로 낙오하게
된다.

 

오늘 우리는 “너는 누구냐?” 라는 질문을 통해 상대에 대한 그리고 대상에 대한 실체를 살펴보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If you know yourself and your enemy, you will win whenever you
are in a fight.) 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도 항상 상대와 나를 알 때,
그리하여 적절한 생각과 준비된 행동으로 반응 (respond) 할 때, 항상 승리하는 우리가 되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