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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25)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특히 남자들은 말이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팔아도 500원도 안 나올 것 같았다. 손해를 보면서 팔 수는 없어서 할 수 없이 그 쌀을 우리가 먹기로 하고 나중에 언니를 500원 갚아 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탈북 전까지 나는 그 돈을 갚지 못했다.

 언니는 그 돈을 형부 몰래 빌려준 돈이었다. 20kg의 쌀은 한 달 양식도 안 된다. 내가 거의 매일 친정집에서 먹고 그 쌀은 남편 도시락만 싸주는데도 벌써 바닥이 났다. 그런데 남편은 자기 엄마와 누이동생이 낟알구경을 못해 본지가 오래됐다고 매일 걱정을 한다. 동생이매일 풀을 뜯어다가 삶아서 먹다 보니 영양실조에 걸렸고 게다가 시집갔던 다른 시누이도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녀의 시집이 가난해서 입을 덜려고 각자 따로 떨어져 살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내 친정엄마가 주는 쌀로 밥 먹을 때마다 자기 집 식구들 걱정을 하면서 쌀을 가져다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갓난 아기가 달린 내 코가 석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낮에 엄마와 함께 장사도 돕고 이것저것 일거리도 도와주느라 집을 비웠는데 한번은 1시간 정도 나갔다가 돌아오니 집 열쇠가 열려 있었다. 나는 급히 문을 열어보니 집안이 아수라장이었다. 장롱 속에 결혼할 때 해갔던 이불은 땅에 여기저기 널려 있고 결혼 예단과 신랑 옷들 등 값나가는 물건들은 다 훔쳐갔다. 비싸지 않은 옷가지들은 여기저기 바닥에 널려져 있었고 콧구멍만 한 집을 뒤져서 훔쳐가는 데는 10분 정도도 안 걸렸을 것 같았다.

 너무 급해서 미처 어떤 옷들은 훔쳐 갈만한 물건들을 그대로 두고 달아났다. 나는 급하게 친정집에 가서 알렸다. 이불은 다 뜯어진 채로 겉감과 안감도 훔쳐갔고 다행히도 쌀은 부엌에 숨겨 두어서 그대로 있었다. 바로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내 동창생의 형부였다. 동창은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났고 언니네 식구들과 함께 사는데 형부는 매일 처제를 천대하고 구박한다. 시집도 안가고 자기들에게 얹혀 같이 산다고 말이다.

 그 집은 그 친구가 태어나서부터 부모들과 함께 살던 집이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그 친구 집인데 시집 간 언니가 남편을 끌고 들어와서 사는 것이다. 형부라는 사람은 세수도 안하고 산도적 같이 시커멓게 생겼는데 하는 일이 없고 마누라하고 처제가 장에 나가서 장사를 하면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우리집은 사방에 다른 집들과 마주하고 있어 낯선 사람이 오면 금방 들키게 되어 있으며 본채를 거쳐야만 우리집으로 들어올 수 있으므로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날 도적이 들었다고 알리니 행동이 너무 부자연스러웠고 말도 더듬고 자기는 낮잠을 자느라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한다. 아침 9시부터 9시 30분 사이에 일어난 일인데 밤새 잠을 자고 난 사람이 또 낮잠을 잤다고? 아무튼 속이 떨리고 도적이 들었다는 사실에 몹시 재수 없게 느껴지고 뭔가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 무렵엔 나도 들판에 풀을 뜯으러 다녔다. 왜냐면 나도 더 이상 친정에만 의지하지 말고 우리 형편에 맞게 풀 죽을 섞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가까운 들판에는 풀이 없었다. 먹을 수 없는 억센 풀 말고는 야들야들한 풀들은 돋아 나기 전에 벌써 다 뜯기고 없다. 아주 멀리까지 돌아다녀 봐도 한 바구니도 채우지 못했다. 오히려 돌아다니느라 허기만 졌다. 장에서 냉이나 씀바귀를 데쳐서 파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뜯어서 파는 지 모르겠다.

 다음날에는 일찍 떠나서 훨씬 더 멀리 풀을 찾아서 돌아다녔지만 그 흔한 쑥조차 뜯을 수가 없었다. 쌀쌀한 봄이라 바람은 더 차가웠다. 그런데 한번은 엄마 친구 되는 분이 산에서 맛있는 산나물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직접 풀을 보여주었다. 아직 그런 풀이 먹는 풀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그 풀은 이름도 모르고 아무도 장에 내다 파는 사람도 없었다.

 장마당에는 쑥이나 풀을 데쳐서 한덩어리에 5원,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소다를 넣고 삶은 것 한덩어리 5원, 또 비지덩어리. 쌀겨. 칡뿌리를 통째로 팔거나 가루를 내서 파는 사람들, 산과 들과 바다의 먹을 만한 것은 다 내다 파는데 그런 풀은 본 적이 없었다.

 우리도 사실 소나무 껍질도 사 먹어도 보고 별의별 것은 다 사서 먹어 보았는데 정말 먹기가 힘들었다. 정말 죽도록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겠지만 너무 거칠어서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고, 먹은 후에는 소다를 많이 넣어서 그런지 속이 뒤틀리고 심한 아픔을 느낀다. 그래도 더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그나마도 살 수 있는 돈만 있다면 다행이다.

 우리는 그 선생이 알려준 대로 다음날 새벽에 산으로 올라가 많이 뜯어 왔다. 산에는 그런 풀들이 꽤 많았는데 한 달 정도만 나고 그 후에는 너무 쇠어서 먹을 수가 없다. 끓는 물에 데쳐서 먹어보니 시금치 같이 부드럽고 맛있었다. 우리는 마치 대단한 발명을 한 것처럼 기뻐했다. 이렇게 맛있는 풀을 알아내다니… 이건 시금치보다 더 맛있었다. 하지만 이 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거의 매일 산을 돌아다니면서 풀을 뜯어 데쳐서 팔았다. 하루 종일 뜯어와도 워낙 데치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겨우 한끼 쌀이나 장작을 살 정도의 돈이 생겼다. 그렇게 매일 집을 비우다 보니 두 번째 도적이 들었다. 내가 낮에 집에 없는 것을 알고는 아주 샅샅이 뒤져서 몽땅 가져갔다. 처음 도적이 들었을 때 이미 괜찮은 물건들은 친정집에 옮겨갔기 때문에 별로 훔쳐 갈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낡은 옷가지와 신발이며 웬만한 것은 다 가져갔다.

 안 그래도 고달프고 힘든데 도적까지 들어와서 몽땅 훔쳐가니 그렇다고 도적이 무서워서 계속 집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도적이 들게 되자 집에 들어가기도 싫어졌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으로 도적놈 옆에서 사는 것이 불안하고 재수가 없게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당장 집을 옮기자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사는 집도 언니가 돈을 빌려줘서 집세를 내고 이사 오게 된 것이었다.

 아직 한두 달은 더 살아야 계약이 끝난다. 두 번이나 도적이 들고나니 살림이 나아지기는 고사하고 탈탈 다 털리고 진짜 거지가 되었다. 거기다 남편은 요즘 들어 풀로 자주 끼니를 먹게 되자 툭하면 짜증을 부렸고 트집을 잡았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다투었고 그 이유는 내가 남의 집 여자들처럼 잘 벌어오지 못한다는 것이고 또 시집식구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였는데 나는 납득이 도저히 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부터 이 남자랑 더 이상 함께 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기 하나만도 벅찬데 남편까지 나한테 짐이 되어서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내몫을 아껴서 자기 도시락 싸주고 배곯지 않게 양보해주니 자기 집 식구들만 걱정하고 내가 배고파서 젖이 잘 안 나오면 아기가 울어 대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밥을 잘 챙겨 먹어야 모유가 잘 나온다고 계속 나를 챙겨 줬지만 난 그걸 먹지 않고 남편 도시락을 싸주느라 굶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도 배가 고프면 맹물이라도 많이 마셨다. 그러다 보니 모유가 부족해서 아기는 울고 보채는 일이 잦았다.

 한번은 진짜로 일이 터졌다. 내가 산에서 뜯어온 풀을 평소대로 죽을 만들어 먹었는데 난 괜찮았지만 남편만 배탈이 났다. 여태 괜찮았는데 오늘따라 설사를 하고 구토를 하고 밖에 변소에 들락거리며 힘들어했다. “너 나 죽이려고 죽에 뭘 넣었지? 이때까지 괜찮았는데 왜 오늘만 이래?”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생각이다. 왜 내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는 여태 속에 품고 있던 온갖 불만을 터드렸다. 뿐만 아니라 내가 결혼할 때 준비한 큰 거울. 그리고 장롱, 등 눈에 띄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깨부수기 시작했다. 그는 결혼할 때 아무것도 가져온 것이 없다. 정말 달랑 빈 몸으로 지금 사는 월세집에 돈 1전도 보탠 것이 없으면서 내 가 준비해온 물건들을 때려 부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낡아 빠져 너덜거리는 출입문을 쾅 닫아 버려 문 돌쩌귀가 떨어져 나갔고 그 소리에 아이가 깨어 놀래 울어 대기 시작했다.

 그때는 캄캄한 새벽 2시경이라 조용한 동네에 우리가 싸우는 소리는 사방에 울려 퍼졌다.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화가 난 나도 이판사판 오늘 그만 끝장을 내자고 함께 이것저것 깨부수기 시작했다. (지난 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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