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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16)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지금 지옥보다 더 살기 힘들어진 북한 현실을 보면 어쩌면 부모님과 남동생이 함께 살고 있는 천국이 더 따뜻하고 아늑한 곳이 아닌가 싶다.

 

5. 딱 친구 영실이

 북한 노래 중에 남한사람들이 사랑하는 노래가 있다. “심장에 남는 사람”이다. 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의 주제가이다. 노래 가사는다음과 같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소중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인생을 살면서 기억 속에 남는 이는 있어도 노래 가사처럼 심장에 남는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몇 손가락에도 꼽기 어려울 것이다. 내게는 영실이라는 딱 친구가 있다. 그와 함께 지낸 지는 몇년이 안 되지만 영실이는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소중한 사람이다. 그는 키도 훤칠하고 정말 이쁘게 생겨서 중앙당 5과에 뽑혀 갈 뻔도 했었다.

 우리는 교양원 학교에서 처음 만나 우정을 키웠다. 우리는 서로 눈빛과 표정만 봐도 서로 알아 차릴 수 있고 배짱이 잘 맞아 둘이 항상 단짝이 되었다. 그래서 담당 선생님도 우리 둘을 대놓고 싫어했다. 영실이는 나를 군대 나간 자기 오빠와 맞세워주고 싶어했지만 오빠가 제대되면 농장원이 되어야 하는 사정 때문에 차마 내게 말을 못 꺼냈다. 나는 지금까지 영실이 이상의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50고개를 앞에 둔 지금까지 나와 영실이의 관계는 20대 초반에 멈춰 있다.

 내가 영실이라는 제목을 따로 달고 그에 대한 추억을 서술하는 이유는 내가 장사를 하던 중 보안소에 잡혀갈 위기상황에서 한 몸을 내던져 내 방패막이 되어주고, 그 덕분에 큰 돈을 벌 수  있게 해준 고마움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동창도 아니고 나와 알고 지낸 시간은 겨우 1년 밖에 안 된다. 바로 교양원양성소 시절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함께하면서 알게 된 친구이다. 우리가 서로 진정한 친구가 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로 이 계기를 통해 나는 영실이가 얼마나 나에게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친구임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1995년 9월이었다. 나는 엄마와 푸르청청한 가을날을 만끽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무심결에 말했다. “엄마, 산에 갈까? 낼 아침 도시락 싸고 산에 가서 송이라도 깰까? 송이를 캐서 갖다 바치면 정말 비싼데, 큰돈 벌 수 있잖아” 엄마는 반신반의하며 “송이 캐 본 적도 없는데? 송이도 캐는 사람만 캔다더라. 산이 여기서 얼마나 먼데” 고 걱정했다. “그럼 우리 산기슭에 기다렸다가 송이꾼들이 내려오면 그걸 사자. 산에서 바로 사면 반값에 사서 여기 와서 두 배로 팔면 돈이 남잖아!” 그런데 당장 수중에는 송이를 사들일 현금이 없었고 외화벌이꾼들이 송이 사들인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어디가서 누구한테 팔아야 할지 구매자도 확실치 않았다.

 나는 동네 외화벌이꾼 고태환을 떠올렸다. 그 집은 일제 때부터 대대손손 장사를 하며 부유하게 살아왔다. 그 집은 명란, 도루메기, 털게, 성게, 송이를 전문으로 하면서 돈을 벌었다. 일본 상선과 동해상에서 직거래하는 라인을 통해서 말이다. 그 집의 생활용품과 가전제품 모두 일본제였고, 일반인들과는다른 고급스러운 옷차림의 사람들만 드나들었다. 그들은 일반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거만함을 풍기며 살았다. 나와 엄마는 무작정 그 집에 찾아가 말했다. 송이 1킬로그램을 가져오면 얼마를 주냐, 몇 등품까지 받냐, 돈은 바로 주나, 등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그는 나와 엄마를 바라보며 두 다리를꼬고 누운 채로 1킬로그램에 700원 준다는 외마디 말을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귀찮게 굴지 말고 빨리 나가라는 태도였다. 우리는 700원이면 송이꾼들에게 500원씩 주고 사면 되겠다는 타산을 했다. 송이는 노동당 재정경리부 산하 39호실에서만 다루게 된 외화벌이 품목이다. 기타 기관이나 일반인은 송이를 판매하는 것이 불법이다.

 송이꾼들은 노동당이 운영하는 외화벌이 사업소인 5호관리소에 가서 송이를 바치고 대신 설탕이나 기름, 의류 등 물건으로 받아온다. 그래서 다들 개인들과 현금으로 밀거래를 한다. 밀거래를 막기 위해 산과 마을, 도로변까지 감시망이 쫙 깔려있다. 그리고 마을과 산에서 내려오는 길목마다 감시원들이 지켜서 송이를 가지고 나가면 몰수해 버린다. 그래서 송이꾼들은 산밑에서 가격만 맞으면 웬만해서 바로 팔아버린다고 한다.

 감시망을 뚫을 수만 있다면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엄마와 나는 엄마의 동료 선생님 집에 돈 꾸러 갔다. “00선생, 현금 3천원만 빌려 주오, 낼 아니면 모레까지 500원 이자 붙여서 돌려줄게, 꼭 약속하오. 그 선생님은 엄마 말이면 무조건 신뢰하던 사람이라 두말없이 빌려주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단 무작정 집을 나섰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한곳이었다. 바로 산을 끼고 있는 마을에서 유치원 교양원을 하고 있는 딱친구 영실이를 찾아갔다. 뜻밖에 나타난 나를 보며 너무 반가워하던 그는 나에게 과일이며 먹을 것을 잔뜩 건네주며 어쩐 일로 찾아왔냐고 물었다.

 “산밑에 가서 송이꾼들 한테서 송이나 사려고 해.” “송이를 사면 팔 데는 있고? 여긴 당에서 눈에 불을 켜고 송이를 수집해 가 는데 잘못 걸리면 큰일나! 특히 동네 빠져나가는 골목골목마다 감시대가 있어.” “그래? 난 몰랐지. 휴~쉬운 게 없네,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구나.”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나에게 말했다. “산으로 무작정 가지는 말고 우리집에 가 있어. 어차피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딱 하나야. 우리집 옆을 지나야 해, 내가 엄마한테 일러 놓을 테니 내려오는 송이꾼들을 우리집에 가라고 알려줄게.” “그렇게 해도 돼? 내가 너한테서 그렇게 많은 신세를 져도 되니? 그리고 너희 엄마까지…” “응. 괜찮아! 어차피 엄마도 집에서 쉬고 있으니 도와주실 거야.”

 그 애는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동네유지로 알려져 있는 그의 아버지 덕분에 옛날 지주집 못지 않은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살고 있었다. 그의 엄마는 처음 만난 나를 구면처럼 반가워 하며 산에서 내려오는 송이꾼들을 집으로 안내해오겠노라고 하며 집을 나섰다. 영실이 엄마는 동네 누가 송이를 잘 캐는지 잘 알고 있었고, 송이꾼들도 영실엄마를 신뢰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순식간에 구름처럼 모였다. 나는 송이를 1등, 2등, 3등품으로 분리하여 가격을 매기고 손저울로 떠서 돈을 세주었다.

 1등품은 송이 갓이 하나도 펴지지 않고 동그랗게 그대로 있는 것이고 1킬로그램에 500원이다. 2등은 갓이 살짝 펴지긴 했 어도 완전히 펴지지는 않은 것 300원, 갓이 완전히 펴진 것은 3등품인데 100원으로 했다. 일단 가격이 국가에서 물건으로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현금을 준다고 하니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간 3천원은 어림도 없었고 돈은 금방 거덜났다. 점심시간에 잠깐 궁금해서 집에 달려온 친구 영실이는 선뜻 자기 돈을 빌려주었다.

 “나한테 2천원이 있어, 먼저 쓰고 돌려주면 되잖아!” “아, 정말 고맙다, 내가 낼 500원 얹어서 갚을 게 너무 고마워.”

 그러나 갑자기 밀려드는 송이꾼들의 송이를 다 사기에는 그 돈마저도 턱없이 부족했다. 송이꾼들은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때 내 친구 영실이가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우리집을 믿고 외상으로 팔아요. 내 친구는 절대 돈 떼먹을 사람 아니니, 내가 보증설게요, 낼 이 시간에 돈 받으러 오세요.”

아! 역시 그는 나와 배짱이 척척 맞았고 두뇌 회전도 나처럼 빨라 순발력이 좋았다. 송이꾼들 중에는 그가 가르치는 유치원생들의 부모들도 있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주요 관리직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라 마을에 권위가 꽤 있는 집안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도 주저 없이 외상으로 송이를 나한테 팔았다. 돈 주고 산 송이보다 외상을 받은 송이가 2배가 더 많았다.

 나는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상상도 못해 장부에 이름을 적고 수량을 적으랴, 저울질하랴 무척 바빴는데 영실이가 옆에서 장부 정리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송이꾼들은 낼 꼭 와 달라고 송이를 캐서 나한테 팔 거라고 약속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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