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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sun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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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leesunggi

 


 
황순원의 소나기 작품이 전달하는 감정은 사춘기 시절 알았던, 혹은 사귈 뻔했던 그녀 또는 그에게로 마음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반드시 주인공 중에 하나가 죽을병에 걸려서 저 세상 사람이 되어야만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 둘 사이를 갈라놓지 않더라도 충분히 당시만 생각하면 아쉽고 짜릿한 순간들이 있다. 


소년은 자신의 계급으로 만날 수 없는 상층계급의 소녀를 우연하게 고향 시골에서 만나게 된다. 그 소녀가 서울서 택시 운전하다가 다쳐서 고향에 내려온 순돌이네 외동딸 봉선이었다면, 그리고 시골에서 흔히 보던 햇빛에 그을리고 웃을 때 유독 돌출된 앞니가 드러나는 소녀였다면, 소년은 그 소녀에게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봉선이는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건강하게 태어나서 그깟 소낙비 정도 맞았다고 시름시름 앓으면서 학교도 못 가는 체질은 아니었을 것이다. 


초라한 자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계급의 새하얀 피부를 가진, 도시에서 온 소녀, 그 소녀가 학교에 온갖 남자아이를 제치고 유독 자신과 만나주었다는 사실은 사춘기 소년다운 환상이다. 스스로를 낮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주인공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집에서 얻은 정체성이다. 


가난은 부를 지향하고, 서민은 부자를 존경한다. 소년은 소녀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훔쳤다. 지탄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하필이면 소낙비가 오는 날, 그것도 아무도 오지 않는 오두막에서 둘 만의 시간을 가졌다. 계급이 낮고 비천하기 때문에 귀족의 딸을 아주 잠시만, 접촉할 수 있다. 틈새로만 말이다. 


소녀가 병들어 눕지도 않았고, 여름방학 동안 시골에서 잘 지내다가 가을이 되면서 서울로 귀경했다고 치자. 소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소녀를 만나지도 연락하기도 힘들 것이고, 어찌어찌 해서 집안의 가난한 부모가 허락해서 서울의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면, 수소문 끝에 소녀가 다니던 대학을 알아내고 캠퍼스를 찾아가서 강의실 앞에서 허구한 날 기다렸다면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잠시 보았던 시골 소년, 그것도 소낙비 오는 날 함께 놀았다는 그 기억 하나만 가지고 소녀가 그 남학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둘이 사귈 수 있을까?

 

시간을 길게 늘리면 둘은 성격, 취미, 가치관, 계급 등이 맞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해서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적어서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소년이 중년이 되고, 어느 토요일 오후, 비가 잔뜩 오는 여름날, 베란다를 바라보면서 어릴 적 과수원에서 만난 그 소녀를 생각해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시계태엽이 풀려서 대학생이 되어서 어떻게 사귀어 보려고 했다가 시시하게 끝나버린, 아니 그 여대생이 자신이 소년 시절 기억하고 있었던 그 소녀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고 끝나버린 과거 일을 생각해 내고 피식 웃을 것이다.

 
과거의 어느 사건에 묻었던 감정이 살아있을 뿐이지, 당시의 소녀와 실제 상황은 소년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 순전히 해석의 힘이다. 순수한 사랑에 대한 동경, 막 피어난 사춘기적인 감정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 작품이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최소한 가슴 한 구석을 저리게 만들려면,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동결시켜야 한다. 


즉, 소녀가 더 이상 크지 못하도록 하고, 건강하게 되어서 자기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게 꾸며야 한다. 소녀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 남자아이를 만나서 불같은 사랑을 하였고, 그 사랑을 간직하면서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더 길어지면 진부해지니까.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주인공들이 교차로 죽어나갔다. 사랑을 영원히 붙들어 매기 위해서. 


소낙비는 어른들이 일손을 놓고 집에만 머물게 만든다. 천둥소리와 도랑에 빗물 흐르는 소리, 음악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소란한 빗소리 속에서 오로지 정열을 태울 만한 금지된 사랑만이 활동할 수 있다. 소낙비가 오래 내리지 못하는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뜨는 것처럼, 정열적인 사랑은 청명한 광장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사람은 극적인 순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소낙비가 오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소낙비 같은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제는 그저 바라만 볼뿐이다. 그저, 오랜 시간 속에서 남아있는 기억들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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