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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陸史), 그리고 ‘청록파’
leed2017

 

 1999년 가을, 한국 E여자대학에서 나를 정교수로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겉으로는 무심한 척, “나같은 사람을 E대학에서 데려가는 것은 E대학의 영광이다”며 겉으로는 거드름에 가까운 태연함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깡충깡충 뛰고 훨훨 날아다니는 심정이었습니다.

 E대학에 연구실을 배정받은지 열흘이 못되어 옛날 학창시절 같은 서예의 도장, 같은 스승 밑에서 붓을 잡던 서예가요 한문교수로 있는 H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경북 안동 도산 원천리에 여명기의 저항시인 육사(陸史) 이원록의 문학관을 짓고 있는데 거기에 육사의 대표작 ‘광야’를 내가 붓글씨로 써주면 문학관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각(刻)을 준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놀랍고 이렇게 덩치 큰 부탁이 어떻게 나한테 떨어졌는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머뭇거리다가는 그 특권이 다른 서예가에게로 갈까봐 “그러겠노라”고 상대방이 부탁하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해 연말까지 온 정신을 다해 ‘광야’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육사는 나의 숙항(叔行: 아저씨 뻘이 되는 항렬)이 됩니다. 내가 쓴 ‘광야’ 글씨는 처음에는 문학관 안에 있는 육사의 흉상 바로 옆에 있었는데 요새는 다른 자리에 옮겨져 있더군요. ‘광야’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 끊임없는 광음을 /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지고 /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지금 눈 내리고 /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본문은 용비어천가체를 따르고 낙관은 얌전한 궁체로 썼습니다. 그러나 이 시를 쓰고 싶은 서예가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고려해서 낙관에 이동렬이 썼다는 것을 밝히지 않고 그냥 내 이름과 호가 적힌 도서(圖署: 도장)만 크게 각(刻)을 해두었습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애당초 나를 소개한 서예가 H의 체면도 생각해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다 무명의 설움이라는게 아니겠습니까.

 육사가 태어나서 자란 마을 원천은 한적하고 쓸쓸한 동네입니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은 원천같이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동네에서 육사 같은 장한 시인이 어떻게 여기서 태어났느냐”고 놀라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경북 영양의 주실 동네나 박목월이 태어난 경남 고성을 보십시오. 둘다 볼 것이라고는 별 것이 없는 동네가 아닙니까? 마치 중국의 문장가 구양수가 시인은 모든 것이 궁핍해야 시를 잘 쓸 수 있다(詩窮而後工).는 말을 한  것처럼  내게  시인은  살림만  가난한  게  아니라 그들이  태어난  동네도  하나같이  하잘 것  없어  보이는 동네여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나는 과거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큰 도시 보다는  형편없는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왜 모르느냐고,  볼 것  없는  동네라고  무시했다가는  큰  코  다칠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우선 문재인이나 이명박,  박정희,  노무현,  전두환이나  김대중,  김영삼,  이승만 같은 ‘ 큰’ 인 물이  태어난  곳을  보십시오.  번화한  도시에서  태어난  인물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모두가  흉악한  촌놈들입니다.

 대통령은  그렇고  나는  ‘청록파’  시인  세  사람  중에서  조지훈을  특히  좋아 합니다.  그의  시에는  조선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삼은  민족 정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청록집’에  기고를  한  김기준에  의하면  민족적  정서  말고도  지훈은  절제된  율격미  속에  자연미와  불교적인  선취미를  담아 냈다고 주장합니다.  

 박목월은  어떤 가요.  그는  향토성이  짙은  토속어를  구사하면서  간결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서정적 이고  애틋한  내면을  노래한  점에서  그의  시  특징을  보인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에  비해  박두진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산문적인  문체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노래하였습니다.

 ‘청록집’의 세 시인 모두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를 통해 등단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문장’지가 폐간되는 불운을 겪다가 해방이 되면서 햇빛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청록집’ 입니다. 이 시집 출간 후 이 세 시인들은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게 되지요.

 물론 청록파의 ‘청록’이라는 말은 박목월의 ‘청노루’에서 따온 것입니다. 안동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1학년 국어책 맨 첫 페이지에 나오는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으로 시작되는 목월의 시를 배우던 생각이 납니다.

 김기중의 말처럼 ‘청록집’은 해방 직후의 이념적 혼란 속에서도 생명감각과 순수서정을 탐구한 서정시의 중요한 질적 성취로 손꼽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방 이전의 순수시와 전후 서정시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 문화사적 가치도 크다고 볼 수 있지요.

 육사는몰려오는 우수와 고독을 뼈저리게 느꼈겠지마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저항에는 이기지 못하고 분노에 찬 펜을 들고 말았습니다. 육사의 시 밑바닥은 어디까지나 저항입니다. 청록파의 지훈이나 목월, 두진은 순수하고 애틋한 시정(詩情)으로 가엾은 이 산하를 누비며 서정의 정한(情恨)을 뿌려야 했습니다. 그 어느 것이나 읽는 우리로서는 감명과 산뜻한 서정을 다시 맛보게 합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무슨 생각이 일었는지 서실에 들어가 서가를 훑어보던 중 우연히 한국에서 출판사를 하던 친구 C가 보내준 ‘청록집’을 빼서 읽다가 감상에 젖어 이 글을 쓰기까지 이르렀습니다. (202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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