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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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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3)-허시 초콜릿 맛
knyoon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허시 초콜릿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리움에 눈물 젖어본 사람은 그 검은 향기와 맛이 외로움을 덜어주는 사랑의 미약임도 알 터이고.
 우리가 어릴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환상에 잠겨 살던 세상과 달리, 물질적인 현대의 동화는 ‘찰리와 초콜릿공장’이라는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워낙 초콜릿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우리가 뉴욕주의 코닝 웨어 미술관을 나서면서부터 허시 초콜릿 마을에 이르도록 군침을 삼켰다.
 우리부부는 코닝웨어 미술관 앞에 흐르는 체뭉 강변에서 뉴욕주 남쪽, 해리스버그를 찾아 들어갔다. 1903년에 미국인 밀톤 허시가 ‘어떠한 빈곤도, 폐단도, 악행도 없는’ 기업을 모토로 세운 유토피아 마을 허시엔 허시 초콜릿 월드가 펼쳐져 있었다. 잔디 위의 빨간 깨꽃들이 ‘당신도 허시 캔디를 만들어보아요’하며 유혹하고 있었고, 허시 초콜릿 월드 전시장의 벽돌 건물 정문 위엔 귀여운 은빛 키시스가 허시 바를 밟고 서서 두 손 벌려 환영하고, 높다란 두 개의 공장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초코 냄새를 풍기고 있다.
 전시장 안의 사람물결 속엔 어린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았다. 정문에 들어서면서 내주는 작은 키시스 2알갱이를 얼른 까서 먹고 다른 선물이 더 있나 살폈으나, 문밖을 나설 때 우리들의 양쪽 팔엔 묵직한 선물보따리만 안겨있었다. 토론토에선 구경 못한 예쁜 바스켓에 담긴 민트 초콜릿은 다정한 친구들에게, 열두 가지 초코 종류가 든 큰 통은 외손주들과 나눠 가지려고 샀기 때문이다. 
 진짜 3D안경 쇼를 벌이는 작은 극장이 눈길을 끌었다. 펜실베니아주에 허시라는 도시를 만드는데 공헌한 허시 초콜릿 창업주의 생애와 공장 이야기, 그리고 무대에서 튀어나올 듯 보이는 어린이들의 노래와 춤을 보여준단다. 시니어도 5불이나 내야 한다니, 집에 가서 ‘찰리와 초콜릿공장’을 DVD로 보기로 했다.
 


그래도 무료로 태워준 보트로 공장을 돌다가 찍은 작은 사진메달은(그것도 17불이나) 기념으로 남편의 자동차 열쇠고리에 달아두었다.
‘허시 초콜릿’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로알드 달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찰리와 초콜릿공장 (2005년)’ 이야기는 먼 이곳까지 안 와도 초콜릿을 진저리나게 구경할 수 있는 영화다. 한국전쟁 시절의 가난했던 우리 어린이들, 그러나 서로 위해주고 아끼던 시대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열 살 난 찰리 버킷은 아주 작고 낡은 판잣집에서 부모와 네 명의 조부모(한 침대에서 자야하는)와 함께 산다. 찰리도 초콜릿광인데 가난하여 일 년에 한 번 생일날만 초콜릿을 맛볼 수 있었다. 그 동네엔 세상에서 가장 큰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이 있다. 초콜릿 속에 숨겨둔 황금 티켓을 찾아내는 다섯 어린이에게만 베일에 싸인 웡카공장을 구경시켜준다는 것. 찰리는 할아버지 의견대로 마지막 황금 티켓을 발견하게 된다.
 할아버지와 함께 웡카공장 구경에 나선 챨리는, 다른 네 아이들 일행과 함께 사장인 윌리 웡카를 따라다니며 굉장한 초콜릿 공장을 구경하고, 공장 안에 비밀스럽게 일하는 움파룸파족이라는 작은 생물들도 만난다. 다른 네 명의 아이들은 말썽과 사고를 일으켜 탈락하고, 마지막까지 지혜롭게 규칙을 잘 지킨 찰리가 웡카 자신의 후계자로 공장을 물려받게 된다. 
찰리는 할아버지와 윌리 웡카의 큰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판잣집 지붕 위로 날아와 가족들에게 결과를 알려준다. 윌리 웡카는 이 가난한 찰리 가족들의 사랑에 자신의 부귀가 하찮게 여겨져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같이 산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허시초코 향기에서 깨어나 아름다운 허시 가든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숙소를 향해 다시 차를 달렸다. 다음날 아침, 비가 줄기차게 쏟아지는데도 어제 들르지 못한 랭캐스터와 게티즈버그를 구경했다. 
 


미국 남북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지였던 게티즈버그엔 아브라함 링컨 기념미술관이 먼저 눈에 띈다. 바로 옆에 붉은빛 노란 빛으로 화사한 옛날 기차 한대가 서 있다.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희생된 이들을 매장하는 묘지 헌정식에 링컨이 타고 온 기차란다. 이곳에서 링컨의 유명한 연설이 탄생한다. 
 링컨은, 이 봉헌식이 단순히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숨진 병사들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for the people), 사람들에 의한(by the people), 사람들의(of the people) 정부가 이 땅에서 죽지 않도록” 싸우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헌납하는 것이라는 역사적인 구절을 남긴 것.
 미술관에 들어간 남편이 한참 만에 나오더니, 링컨이 연설한 기차 핸들을 잡고 링컨의 민주연설을 음미하듯 서있기에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또 한손엔 손주에게 줄 ‘링컨전’이 들려있었다.
 해리스버그의 사스케하나 강가에 있는 우리 숙소는, 이름도 ‘riverfront hotel’이다. 아주 한적한 강가에 어울리지 않는 큰 식당에서 가장 맛있다는 매운 인디언 커리 라이스를 눈물이 나게 들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틀 동안 내린 비에 황하같이 짙은 갈색의 강물이 넘실거린다. 튼튼한 여러 개의 교량 멀리서 웬 불빛이 비쳐온다. 이 강물이 흘러가 맞닿은 언덕 위의 외딴 집일까? 아니면 우리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펜실베니아 주립미술관에서 본 월넛 섬의 큰 바위 암각화가 있던 마을일까? 월넛 섬 마을이 1930년경의 큰 홍수 때 물에 잠겨버리자 그곳에 댐공사를 하던 정부가 인디언 암각화 바위를 건져 미술관에 옮겼다는 그 바위. 
 


한 원주민이 엎드려 끌로 파내며 그리는 그 넙적한 바위 위엔 여러 가지 상징적인 부호가 그려 있었다. 태양과 계절을 알리는 둥근 무늬들, 인디언의 수호신인 독수리들, 물과 비를 기원하는 남녀의 상징물, 하늘과 땅, 삶과 죽음, 영혼이 존재하는 고요한 곳을 알려주는 듯한 화살표 무늬들이 우리가 갈 곳도 일러주는 듯했다.
 이 성스러운 원주민의 바위는 새벽 미명이나 지금같은 옅은 황혼 빛에만 보였다니 그들의 신비를 다 헤아릴 길이 없다. ‘우리는 모두 인디언이다’라는 어느 책 제목처럼 우리의 태곳적 조상들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그 상징화들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신비를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듯 했다. 
우리 발밑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사스케하나 강은, 그 옛날에 에스겔 선지자가 바빌론의 그발 강가에서 본 ‘생명의 강’일 수도 있겠다. 그가 말했듯이 “이 강이 흘러들어가는 곳 어디에서나 생명이 넘친다”면 좋겠다.
 참으로 오랜만에, 수천 년을 흘렀을 그 강가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착한 찰리’와 ‘허시 초콜릿’의 요술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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