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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와 한국의 두 영웅-그룬트비와 달가스 그리고 박정희와 류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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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스칸디나비아 3국 하면 노르웨이, 스웨덴과 함께 덴마크를 꼽는다. 현재는 영토가 이 3국가 중 가장 작지만 과거에는 덴마크가 칼마르 동맹의 종주국으로서 발틱해와 북해를 오가는 선박들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하며 바이킹의 뛰어난 항해술과 조선술로 지경을 넓혀, 북유럽, 동유럽, 북아프리카 그리고 지금의 캐나다 동부에까지 세력을 넓혔으나 넓어진 영토에 비해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부족하였다. 


또한 이 무렵, 유럽의 정치지도가 바뀌는 격정의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많은 전투를 경험하며 발전된 무기와 훈련된 군대를 갖게 된 여러 나라들과 계속되는 전쟁에서 패하며 영토와 지배력을 상실하던 중, 1864년 프러시아의 침공으로 독일인이 다수 거주하던 슐레지안 지방을 빼앗기고, 동시에 오스트리아의 침공으로 홀스타인 지방을 빼앗기면서 결국 덴미크는 항복을 하였다.


이 전쟁의 패배 후 덴마크에 남은 영토는 북해의 찬 바람이 몰아치며 모래를 날리는 황무지가 국토의 대부분이도록 축소되었다. 국민들은 뜯어먹을 풀이 없어 뼈만 앙상한 젖소와, 배고픈 돼지들을 몰고 바닷가로 나가서 파도에 밀려온 해초나 죽은 생선을 먹이는 수밖에 없었다. 


배고픈 가족을 부양하려고 프러시아나 오스트리아 병사에게서 몸을 팔아 연명하는 여인들도 많았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덴마크는 유럽의 모든 국가들보다도 더 개방적인 성문화를 유지하며 국가가 관리하는 홍등가가 관광지가 될 정도이다. 물론 규모는 많이 작아졌지만…)

 

 

 


이 처참함을 보며 “다시 무기를 잡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자”며 의용군을 모집하려는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공병장교였던 엔리코 달가스(Enrico Mylius Dalgas, 1828년 6월 16일 - 1894년 4월 16일)로,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 덴마크의 부흥 운동가다.


그러나 그 때 한 목사가 나서서, “지금 전쟁을 다시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전쟁은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을 더 깊은 나락에 빠뜨립니다. 밖에서 잃은 것을 우리 내부로부터 찾읍시다.”라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바로 니콜라이 프레데리크 세베린 그룬트비(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 1783년 9월 8일 ~ 1872년 9월 2일) 목사였다. 그는 루터교 목회자이면서, 시인, 역사가, 민속학자, 정치가, 저술가, 교육자, 철학자로 숭상 받는 덴마크의 민족운동가이다.


이 두 사람이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면서 황무지 개간에 앞장서자 그 열성에 감동한 국민들이 함께 모래땅에 나무심기를 거듭한 끝에 거친 국토는 푸른빛으로 바뀌었고, 이로써 덴마크 부흥의 기틀이 다져지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고, 높은 세금에도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낙농업 나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덴마크는 우리 나라와도 꽤나 깊은 인연이 있는 나라다. 전쟁의 피해를 뼈저리게 체험한 국민답게, 우리나라에서 북괴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병원선을 보내 의료 지원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병원선의 의료 기자재를 한국에 기증해 서울에 “국립의료원”이 설립되어 한국의 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한 나라이다.


6.25전쟁 후 잿더미가 된 채 반토막이 된 한국의 참상은 덴마크사람들이 겪었던 참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일본의 압정 하에 있었던 1936년 5월 14일,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류태영(柳泰永, 1936년 ~ )에게 가난은 ‘한’ 이었고, 소나무 껍질과 칡뿌리, 도토리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굶주림’은 그와 온 국민에게 비참함을 뛰어넘는 ‘비극’이었다. 


18살 늦은 나이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해준 차비를 들고 서울로 올라와 신문을 돌리며 하우스 보이, 구두닦이에 방물장수, 아이스께키 장사 등을 하며 1957년 건국대학교에 진학하였다. 


공부를 계속하던 중 유달영 박사가 쓴 “새 역사를 위하여”라는 책을 통하여 덴마크의 가난한 농촌이 세계적인 복지국가가 되는 과정을 읽고 “나는 공부한다면 덴마크로 간다”는 결심하고 덴마크의 가장 높은 사람에게 보낸다는 기지를 발휘하여 덴마크 국왕인 프레데릭 9세에게 편지를 보냈다. 


왕궁의 주소도 몰랐지만, 우편 배달부는 알 것이라는 믿음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한 달 만에 기적적으로 덴마크 왕궁 외무성에서 답장을 받았단다. 이 또한 덴마크 사람들의 인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여야 할 것 같다.


"당신이 원하는 기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라는 초청 편지를 받은 후, 덴마크로 유학길에 오르는 기적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의 간증에 의하면 기도의 응답이었다고 한다.


덴마크어를 3개월 만에 터득하여 복지국가와 국민운동에 관해 2년간 배웠지만, 그 당시 덴마크는 이미 복지국가로 완성된 상태여서 실제로 농촌 발전을 경험해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는 실제 부흥 운동이 진행 중인 이스라엘 유학을 결심하여 이번에도 당시 이스라엘 대통령이었던 잘만 샤자르에게 편지를 보낸 후 항공권, 생활비, 의료비, 학비 모든 지원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받아 이스라엘로 가게 된다. 강한 집념과 타고난 체력, 그리고 명석한 두뇌와 끊임없는 기도가 이룬 인간승리의 표본이었다.

 

 

 


귀국 후 건국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중 달가스와 비슷한 구상속에 고심하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소개되어 한국의 새마을 운동의 주역으로 낙후된 농촌의 모습을 바꾸어 놓으며 “보릿고개”란 단어를 망각하게 만들 수 있게 한 큰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동시에 KIST와 포항제철 등을 만들며 산업화를 병행하여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국판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한국을 급속도로 발전시키는 기틀을 다지게 된 것이다. 


너무나도 급속도로 발전한 성장통을 아직까지 앓고 있으며, 그간 이루어낸 번영을 까먹고 있는 요즈음의 한국이기도 하지만….


한 나라의 발전에는 많은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소수의 지도자와 이를 따르는 많은 국민이 있을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덴마크와 한국이 보여준 것이다.


여기 말 중에 “Too many Chief, no Indian” 이란 말이 있다. 


모두가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는 바람에 지도자들은 많은데 이를 따르는 국민이 없다는 말이다. 결국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우리말과 비슷한 말이겠지.


후일 이명박 대통령이 덴마크의 운하를 본 후 청계천 복개를 헐고 오늘의 서울 시민 휴양지로 다시 태어난 청계천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또한 한국과 덴마크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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