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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꽃들의 근황
bonghochoi
2020-10-15
1. 수국
담장아래 터를 잡고
호시절 구가하던 한 묶음의 수국이
수런수런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일생이 다사다난했다고,
누렇게 변해버린 얼굴 가린 채
기도하듯
몇 잎의 잎사귀를 모은다.
2. 쑥부쟁이
수국 이웃에
새살림 차리고 가지런하게 키운 치열이
서늘한 바람에 듬성듬성 흔들린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쑥 뜯으러 왔다가
신세만 지고 떠난다고,
갚을 길이 막막하다고
살래살래 고개 흔들고 있는 저 꼬락서니가
꼭 나를 닮았다.
3. 꽃무릇
이젠 연분홍치마도
어울리지 않는 시절이 왔다고,
그래서 세상말세라고,
키만 키웠다가 얼굴이 갈퀴가 돼버린
몸,
올 가을엔 무엇을
긁어 모았을까.
4. 만데빌라
나팔꽃이라 착각하지 마라. 그쪽과는
대대손손 족보가 완연하게 다르다.
향이 없다고 헛소문내지 마라.
한 번 취하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은근함이 무기다.
빨간, 파란색이 한 몸으로 피었다고,
빨갱이로 몰지 마라.
마음만 먹으면
어느 색이든 다 물들일 수 있다.
5. 베고니아
일 년에 삼세번
온몸을 활짝 꽃피워 바쳐도
순정을 모르는 인간들,
그래서
개보다도 정이 안 가는 인간들,
올 가을 마지막 피어봤자
외면할게 뻔할 뻔자인
멍청이들의 대명사.
인간.
(20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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