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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時差)
JungYeoungDeuk

 


해마다 봄 가을이면 이곳에는 일광절약시간제(Daylight Saving Time)가 시행된다. 3월에 한 시간 당기고, 11월에 한 시간 늦춰서 낮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낮 시간을 그럭저럭 유용하게 사용하고 어두워지면 활동을 자제하게 된다. 


가을 끝 달 초순에서부터 봄의 첫 달 중반 무렵까지 잠을 매일 한 시간 더 잘 수 있는 건 분명히 좋은 점이다. 나머지 기간에는 잠을 한 시간 줄여야 하는 반대급부에 승복해야 한다. 이 제도는 수면 시간을 연중 두 차례나 인위적으로 조정하기 때문에 교통사고 유발, 건강 악화, 인지 능력 훼손 및 업무 생산성 저하 등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고도 한다. 그러니 시차는 복병(伏兵)이라 아니할 수 없는 걸까? 


시차란 말은 내 사전에 아예 없는 단어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열너덧 시간 비행기를 타고 먼 곳까지 날아와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시간대를 접하는 캐나다의 처음 며칠 간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낮에 쏟아지는 잠을 잘 참고 있다가 밤에 푹 자면 그뿐이었다. 2-3일 쉬고 나면 거뜬히 직장으로 출근하고 정상을 되찾곤 하였다.


그러다가 내 몸을 세월에 고스란히 내어 줄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걸 알게 되는 데에는 그다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1년 사이에 신체가 변한 것을 느꼈다. 지난해 이맘때에는 고국에 다녀오고 나서 꼬박 일주일을 고생했다. 하지만 올해는 자그마치 보름 동안이나 제대로 시차에 적응하지 못했다. 


낮에 피곤해서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밤에는 말똥말똥 한국 시간에 맞춰 내 몸이 작동했다. 그렇다고 고국에 오래 머문 것도 아니고 기껏 2주였는데 내 육체는 그 2주를 고스란히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떼를 썼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기간이 한 2년은 더 지난 느낌이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그만큼 야윈 잔상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거울을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거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 사람을 오랜 시간 동안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서 다른 얼굴을 볼 때가 있었다. 6학년 교실에서 동무가 앞에 나와 숙제를 발표할 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전혀 모르는 얼굴로 보이던 일이 그랬고, 어느 날 수업 중에 중학교 선생님의 모습이 점차 낯설게 보이던 일이 그랬다. 


어떤 사람을 똑바로 오랫동안 바라볼 기회가 줄어서 그런지 요새는 그런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오래 쳐다보면 분명히 그렇게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동일한 등장 인물이 다른 얼굴로 출연하는 것이다. 


안방에 우리 부부의 사진이 액자에 한 장 걸려 있다. 강남의 도산공원에서 야외 촬영한 웨딩 사진이다. 풋풋한 젊은 날의 봄이 찍혀있다. 얼마든지 기뻐해도 좋은 시간이 벽에 걸려있다. 지난 주말에 그 액자 곁을 지나가다가 유리 면에 반사된 내 모습을 얼핏 보게 되었다. 


예전의 그때와 지금 다른 건 계절만이 아니었다. 무려 30여 년의 시간과 공간 차이가 실려 있었다. 시간은 공간을 동반해서 지금 여기라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고 현재도 그 진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은 언제나 한 개념이요 곧 생활의 방식으로 발전한다. 본가에 며칠 묵으면서 오랜만에 옛 사진 앨범을 보게 되었다. 흑백 사진에서 컬러 사진으로 페이지가 넘어갔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해가는 시간과 장소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첩을 채우고 있었다. 


떠나오는 날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뭐 놔두고 가는 거 없는지 잘 살펴봐라.” 내가 처음 이민 떠나는 날 하신 말씀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시간이 지나면 내가 곧 다른 공간에 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미리 서운하셨던 게다. 나는 또 하나의 시공간을 남겨 놓고 설운 발길을 돌렸다. 


“세월, 아! 그렇게도 좋았던 시절이여. 어디로 갔는가? (Time, Oh good good time. Where did you go?)” <Time>이라는 팝송 가사의 후렴구다. 내가 요즈음, 이 노랫말에 푹 빠져든 까닭은 바로 절묘한 시공간적인 표현 때문이다. 


시간한테, 도대체 너 어디로 간 거냐면서 장소를 묻고 있지 않은가. 이 한 소절에서 이미 심오한 철학이 겹겹이 묻어 나온다. 그냥 흥얼거리며 지나쳤던 가사에서 보석을 만났다.


지나간 일에 연연해 하기보다는 지금이라는 시간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오늘이 쌓이고 켜켜이 그 자리에 걸맞은 새로운 공간들이 순차적으로 형성되리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공간의 연속이다.


이제는 타임머신을 타고 수시로 우주를 넘나들 생각이다. 시차라는 시련은 곧 시공을 뛰어넘는 원심력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나는 잠자고 있던 자유로운 영혼을 깨워 훨훨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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