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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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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과 고흐의 ‘생일 선물’
Hwanghyunsoo

 

 아프리카 열대지방에 만년설이 덮여 있는 산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킬리만자로 산(Mount Kilimanjaro)이고, 또 하나는 케냐 산(Mount Kenya)이다. 1860년대만 해도 동아프리카는 어느 나라에도 귀속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후 1871년 독일의 빌헬름 1세가 황제에 오른다. 독일은 뒤늦게 식민지 진출에 나서 탄자니아(당시 탕가니카)를 독일 식민지로 만들었고, 영국은 케냐를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그때 킬리만자로는 케냐에 속해 영국령에 포함되었다.

 

 1889년 독일 등반가 한스 마이어(Hans Meyer)가 최초로 킬리만자로(5,895m) 정상 등반에 성공했다. 당시 독일 황제는 빌헬름 2세(Wilhelm II)였다. 빌헬름 2세의 어머니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맏딸인 빅토리아(Victoria) 공주였고, 따라서 빌헬름 2세는 영국 여왕의 외손자였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 지도. 킬리만자로에서 직선이 변한다.

 

 빌헬름 2세는 영국이 아프리카에서 두 곳의 설산을 가지고 있는데, 독일은 하나도 갖지 못해 아쉬워했다. 게다가 독일 등반대가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했으니 그 산은 독일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빌헬름 2세는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에게 편지를 보내 킬리만자로를 독일에게 달라고 요청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외손주의 청원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에 영국 여왕은 독일 황제의 생일 선물로 킬리만자로 산을 주었다.

 

 그 후 영국과 독일 외교관들은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선 협상을 다시 벌여 킬리만자로를 탄자니아 영토로 넘겨주었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탄자니아와 케냐가 접한 국경이 중간쯤에 꺾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꺾인 탄자니아 국경 내에 킬리만자로 산(Mount Kilimanjaro)이 있다. 결국 킬리만자로는 빅토리아 여왕이 외손자에게 준 통 큰 생일 선물인데, 남의 나라 땅을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한 꼴이다.

 

 며칠 전이 생일이었는데, 한국에 있는 다섯 살 외손녀가 이제 막 배운 한글 솜씨로 “캐나다 할아버지, 생일 축하해요”라는 그림인지 글인지 모를 손편지를 보내주어 기뻤다. 그리고 아들이 생일 선물로 ‘반 고흐(Van Gogh) 전시회’를 예매해 주어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눈 호강도 했다.

 


한국의 외손녀가 보내준 생일 축하 손편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년~1890년)는 네덜란드 화가로 일반적으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그의 700여 작품 전부를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하기 전의 10년 동안에 그린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아 보고 죽은 뒤에 비로소 알려졌는데, 특히 그의 사망 11년 후인 1901년 파리에서 71점의 반 고흐의 그림을 전시한 이후 세상에 유명해진다.

 

 고흐는 40여 점에 이르는 자화상을 남겼다. 사실주의적 자화상에서부터 자신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다양한 작품을 그렸는데, 반 고흐가 이렇듯 수많은 자화상을 그리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렘브란트와 같은 네덜란드 회화의 거장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오래전부터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꿔왔던 반 고흐는 아를(Arles)에 '노란 집'을 마련하여 친구인 고갱을 그곳으로 초대한다. 여기서 반 고흐와 고갱은 함께 살며 작품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함께 작품 제작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갱과 빈번히 성격 충돌을 일으켰고 서로를 불신하게 되자, 1888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반 고흐는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여 격분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왼쪽 귀를 면도칼로 잘라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갱은 파리로 떠났고 두 사람의 우정은 파국을 맞는다.

 

 1889년 9월 말에 완성된 작품인 <수염이 없는 자화상>은 그의 마지막 자화상이다. 당시 그는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끔하게 면도를 한 평온한 모습의 자화상을 그렸다. 고흐는 이 그림을 어머니의 70번째 생신 선물로 드린다. 하지만, 고흐는 몇 개월 뒤에 자살하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힘들고 불행하게 살다 갔다며 애통해 한다. <수염이 없는 자화상>은 1998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7,15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지금 시세로 850억 원이 넘는 가치다.

 

고흐가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드린 <수염 없는 자화상>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 가사에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라는 가사가 나온다. (*1980년 말까지 ‘고흐’가 아니라 ‘고호’로 교과서에 표기했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킬리만자로는 빅토리아 여왕이 외손주에게,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외롭게 살다 간 고흐의 마지막 자화상은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주었다. 둘 다 킬리만자로를 교차하는 어마어마한 생일 선물이지만, 나에게는 외손녀의 손편지가 더 귀하고 값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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