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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봉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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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http://skang3441.tistory.com/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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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3
짜장면집 아줌마

<짜장면집 아줌마>

 

해가 질 무렵날씨가 쌀쌀한 어느 날짜장면집 미닫이 문이 스르르 열렸다아홉살일곱살그리고 댓살 쯤 되여 보이는 세 아이들이 쪼르르 들어 왔다문간에 서서 어데에 앉을가를 살피던 큰 아이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며 주방 까까이 있는 자리로 동생들을 안내하였다자신들의 모습이 좀 초라하고 지저분하다는 것을 알아 차렸는지 아이들은 다소 주뭇주뭇 하면서 주방옆 구석 자리를 택한 것이다.

 

웨이트레스로 일을 하는 복순 아줌마가 닥아 가서 이야기를 부첬다.

 애기들은 식사를 할 것인가요?”

 

 “네그런데 두 그릇만 주문을 해도 되나요저는 낮에 먹은 것이 체했는지 속이 좀 불편해서요

상관 없어요그런데 이 남동생은 몸이 좀 불편하군요.”

“네소아마비로 말도 잘 못해요오늘이 우리 동생 철수의 생일날이예요.”

 

 

 

 

 

아 그래요축하 해요엄마 아빠는 않계셔요?”

우리 세 남매가 그냥 살고 있어요엄마는 돌아 가셨고요아빠는 술을 많이드셨는데 집을 나가셨어요.”

참으로 착한 누나이네요동생의 생일날이라 저녘식사를 사 줄려고 여기 왔나요?

 

 이름이 뭐예요?

저는 인숙이고요 이 남동생은 철수그리고 저 꼬맹이 여동생은 애자예요.”

 

무엇을 들겠냐고 복순 아줌마가 물으니 난 짜장면” 하고 철수가 불편한 입으로 얼른 대답을 하였다세째는 물어 보기도 전에 나두짜장면” 하면서 벌써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인숙이가 아줌마짜장면 둘 만 주문해도 되겠죠저는 속이 아퍼서 않먹어도 돼요

그렇지만 동생들과 같이 들어야죠내가 한 그릇을 대접할 터이니 같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얼른 일어나서 복순 아줌마에게 허리를 굽히고 감사를 표시하는 인숙이돈이 모자라서 두 그릇만 시키겠다는 인숙이의 얼굴을 처다 본 복순 아줌마는 눈치로 그 아이의 그 착한 마음씨의 모습을 읽고 있었다.

 

   이 때에 그 짜장면 집 주인 아줌마도 그들의 대화를 주방 안에서 듣고 있었다딸 아이 하나를 키우다가 불행하게도 자동차 사고로 잃어 버리고나이가 들어 감에 자식이 없는 주인 아줌마는 그 아이들의 그 서글픈 인생살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연민의 정이 가슴속에서 울컥하고 솓구처 올라 왔다.

 

세 식구의 열살짜리 가장 인숙이?  그 이름도 자기의 잃어버린 딸의 이름이 아닌가아무래도 자기의 딸이 죽어 다시 환생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때에 엄마 아빠와 같이 와서 짜장면을 먹으며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저 쪽편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처다 보며선망의 눈망울을 굴리던  망내가 입을 열었다.

 

 언니 언니저기 저 사람들은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네.”

 그래우리도 아빠가 곧 돌아 올거야그 쪽 자꾸 처다 보지 말어.”

 

엄마 아빠랑 저녘식사를 하고 있는 제 또래의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동생에게 인숙은 엄격하게 처다 보지도 말라는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운 엄마 아빠이던가!

 

 잠시 후에 음식이 나왔다상상외로 다양한 음식이었다주문을 하지도 않은 탕수육과 볶음만두까지 나왔다생각지도 않은 그렇게 많은 음식을 내 놓고 돈을 더 내라고 하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 하고 인숙이는 은근히 겁이 났다바로 그 때에 주인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나와서 인숙이에게 닥아 와 인숙이의 얼굴을 한 참이나 처다 보드니

 

너의 이름이 인숙이냐?”

헌데 저의 이름을 어떻게 아시나요?”

너 나의 얼굴이 기억 나지 않냐내가 너의 엄마 친구 재룡이 엄마야.”

재룡이요재룡이가 누군가요생각이 잘 않나는데요

 

그렇겠지네가 어렸을 때에 내가 너의 엄마와 헤여젔으니까!.... 어서 이거 많이 먹어라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어  내가 너의 엄마와 헤어질 때에 이 동생은 아주 갓난 애기였으니까 어찌 너희들이 나를 알아 보겠냐이야기는 나종에 하고 어서 식사들을 하여라.”

 

식당 주인 아줌마는비록 깨끗하지는 못하였지만오목 조목 귀엽게 생긴 어린 아이들의 얼굴을 어루 만지면서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 보았다그리고그들의 이모나 되는 듯이엄마 친구로서의 다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실컷 먹어라내 오늘은 너희들에게 돈은 아니 받을 것이니 많이 먹고 가라.”

아녜요.  돈을 받으세요우리 엄마와 친구분이라시니 저희들도 한없이 기뻐요.”

 

오늘은 손님이 저렇게 많이 들어 오셔서 너무 바쁘니 이야기 할 시간이 없구나. 이거 다 먹고 내가 만두를 더 싸 줄 터이니 집에 가지고 가거라그리고 잊지말고 다음 주일에 또 와그 때는 오늘 않쓴 돈으로 사서 먹어라 꼭 와야 해알었지?”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문을 나갈 때에 주인 아줌마는 총총히 어둠속에 사라지는 아이들에게 어서 돌아 가라고 손사례를 치고 있었다.

 

주방안으로 돌아온 마나님에게 남편 주방장이 물었다.

누구네 집 애들이지나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실은 나도 모르는 애들이이예요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라서 무턱대고 음식을 그냥 주면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잖아요.그래서 엄마의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편하겠어요그래야 아이들이 또 올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랬군그런데 아이들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이들이 복순 아줌마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어요주방 바로 앞이라 잘 들리더군요.”

이름까지 알고 있어서 나는 진짜로 아는 줄 알았지.”

 

오늘이 그 소아마비를 앓은 남동생의 생일날이었나봐요자기가 먹고 싶어도, 돈이 모자라니까 자기는 속이 불편하여 못먹는 체를 하고참으면서 그 동생의 생일 짜장면을 사 주는 그 아이인숙이를 생각하니 제 가슴이 미여 올라 왔어요.

 

그 큰 애의 이름이 인숙이래요우리가 우리의 인숙이를 잃은지 벌써 십년이 흘렀네요내가 저 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너무도 귀엽게 생긴 아이였어요여보우리 딸이 환생을 하여 다시 찾아 온 것 아닌가요?”

 

  주방에서 남편과 이야기하는 아줌마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하염없이 천정을 바라보며 서 있는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이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여보그 아이들이 다시 오면 우리 그 아이들을 양자로 들입시다.”

   그게 정말예요당신너무 고마워요.”

 

  식당에서는 많은 손님들이 들어와 바글바글 한데두 부부는 음식 장만할 생각도 잊은채,  주방안에서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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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3
왕(王)씨를 모두 죽여라

<()씨를 모두 죽여라> 

 

 

 

 

우리 나라의 반만년 역사상 임금이 자기의 백성을 많이 학살한 사건들은 여러차례가 있었다.  1990년대부터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정권이300만을 굶어 죽게 하였고정권의 반동분자로 낙인 찍힌 사람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잡아 넣고 약 50여년 동안 숙청한 인원은 아마도 50만명쯤 될 것이다.

 

 15개소의 정치범 수용소는 한번 들어 가면 다시 살아 나오기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희망이 없고,굶주림과 극심한 육체노동으로 병들고영양실조로 시들어 죽게하는 정책이다산주의 국가들이 시행하는 관례적인 숙청방법이다.

 

그 다음으로는 1392년 이성계가 이씨조선을 건국하고 나서 고려에 충성하는 왕씨들을 모두 잡아 죽인 것이 그 다음의 기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멸족된 확실한 숫자는 기록이 없지만 아마도 십만명은 훨씬 넘었을 것으로 추산이 된다.

 

실제로 멸족대상의 숫자는 그 보다 훨씬 많었겠지만 왕씨들의 자에 몇 혹을 더 넣어 全씨田씨龍씨玉씨등으로 창씨개명을 하고산속으로 들어 가서 은둔생활을 함으로 죽음을 피하였든 것이다 세번째로 큰 살인비극은 22대 정조이후 26대 고종때 까지 수 차에 걸처 천주교인들을 박해한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5,000명 이상이 순교를 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네번째로는 사대사화(무오갑자기묘을사 사화)로써 10대 연산군을 비롯하여 중종 명종 때에 사화를 통하여 3족 또는 9족을 멸하는 참극의 숫자가 그 다음의 순위가 될 것이다. 

 

   근간의 북한정부가 하는 살인극은 바야흐로 우리 세대가 현실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처지이기에 그 비극의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지만지금으로 부터 약 600여년 전에 이성계가 정도전으로 하여금 전국적으로 왕씨들에게 펼친 왕씨몰살정책을 요즈음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오늘은 그 때의 그 왕씨몰살작전의 모습을 한 번 더듬어 보고저 한다.

 

 

 

(1)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한 위대한 임금으로 알려저 있지만 고려왕조의 왕씨들의 씨를 말린잔학무도한 살인행위는영원히 씻을 수 없는 천추의 한으로 남겨저 있는 것이다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여 권좌에 오른후 그는 고려의 34대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부자(父子)들을 강원도로 유배시켰다그러다가 드디어 죽임을 하사하였다.

 

실로 이성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이 들었지만 정도전 이하 많은 신하들이 고려왕조의 씨를 남겨 둠은 후한의 근거가 되고 자칫하면 음모의 조건이 되니까 아예 초장에 쓸어 버리자고 하였다그래서 이성계는 사형의 어명을 내린 것이다어명을 받은 사령들은 강원도 유배지를 찾아가 아들들이 보는 자리에서 공양왕의 목에 오랏줄을 묶어 잡어 당겼고두 아들도 그렇게 모두 죽였다.  이 때부터 고려왕조의 왕씨 멸족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이성계의 왕씨 멸족 살인극은 아주 잔학무도하였든 것이 특징이다왜냐하면 공양왕 일가를 그렇게 무참히 오랏줄로 목을 매어 잡아 당겨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니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젔고 이에 반하여 이성계의 살인극은 더욱 무참한 방법으로 돌변하였든 것이다. 

 

 

(2)두 번째로 저지른 살인극은 고려에 충성을 하는 신하들과 학자와 무인들을 불로 태워 죽인 소위 두문동 화형 사건이다이성계가 새 왕조의 위엄과 체계를 잡기 위하여 첫 과거시험을 선포하였다헌데 과거 날자가 되니 임금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과장에 나갔으나 수험생은 겨우 지방에서 올라 온 몇명의 유생이 있을 뿐고려의 수도 개경의 학자와 무인들은 아무도 나타나지를 아니 하고 오히려 송악산 두문동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에 격노한 이성계는 이들이 모여 있는 두문동을 볏집으로 둘러 쌓아 막아 놓게 하고 불을 지르기 전에 회개하고 나올 것을 종용하였다.하지만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가 투철한 고려의 충신들은 고개 하나도 끄덕을 하지 아니 하였다.  드디어 불을 질렀다고려에 충성을 맹세하고 둘러 앉아 있던 72명의 학자 유생들과 48명의 무인들은 꼼작을 아니 하고 앉은 자리에서 모두 불에 타 죽었다.

 

 

   (3) 세상이 이렇게 돌아 가니 이성계는 물론그의 심복 정도전과 형조판서 윤나경대장군 오을몽등이 본격적인 왕씨 몰살작업을 꾸미기 시작하였다그것이 소위 거제도와 강화도에 귀양가 있는 왕씨들을 수장시킨 사건이다실로 무고한 사람들이었지만 왕씨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고관대작을 차지하고 있다는 탓으로 거제와 강화로 귀양을 보냈는데 숫자가 너무 많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모두 물에 던저 죽이기로 한 것이다.

 

 

(4) 이렇게 되니 정도전등은 이왕에 죽일 바에야중요한 왕씨 일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왕씨 성을 가진 자 모두를 싹쓸이 해야 한다 하고 방을 써서 장안에 여러 곳에 부쳤다. 

이번에 위에서 왕씨 성바지들에게 새로 섬 하나를 마련하여 길이 영주의 고향을 삼아편안케 하고저 하니 왕씨들은 강화해안에 모두 모이라기일안에 모이지 않는 자는 크게 벌을 받으리라.”

 

불안에 벌벌 떨고 있던 왕씨들은  이제야 살았다.”하고 모두들 짐을 꾸리고 강화의 해안에 모여 들었다.  죽이지는 않고 섬 하나를 희사하여 농사를 지어 먹게 한다니 오히려 성은이 망극하다고 안도의 숨을 쉰 것이다

 

 

수 십척의 큰 배들이 등대를 하고 모여드는 왕씨들을 차례대로 수용하였다관리들의 대우도 좋왔다.  며칠 후에 바닷고기의 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들을 보내는 친지와 일가들의 환송하는 모습이 저 멀리서 아른 거렸다배가 바다의 한 복판에 이르렀을 때에 돌연 배 안에서 이상이 생겼다고 아우성이 났다.

 

누가 그렇게 했는지 배 밑창의 널판이 여러장 떼어저서 바닷물이 용솟음을 치고 올라 온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배안은 단숨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배는 서서히 가라 앉기를 시작하였다이렇게 왕씨들을 실은 모든 배는 강화도 앞 바다에 수장되였다.

 

그날 밤고려의 태조 왕건이 칠장의 공룡포를 입고 선명하게 이성계의 앞에 나타나서  엄중한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삼한을 통합함에 공이 이백성들 위에 크게 내려저 있거늘 네가 내후예를 모조리 없애려 하고 있으니 내 반드시 보복하리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지는지라이성계 태조는 크게 두려워 하여아들 방번의 장인인 왕우로 하여금 고려 왕씨의 제사를 받들게 함으로 오직 왕씨 장인만의 목숨을 부지케 하였다.

 

 오늘날 全씨田씨玉씨龍씨虛씨등은 실로 왕씨들이 개명한 성이 많아한 때는 이러한 성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王씨의 후손이라 하여 서로 결혼도 아니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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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3
일본이 일어난다 ?

60여년전,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 이런 말이 있었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게 속지 마라. 일본이 일어 나면 중국은 주뭇댄다.” 그 때에 어른들이 하시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는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그 말을 씹어 보니 뭔가 의미가 있는 듯 하다. 왜냐고요? 앞으로 세상이 그렇게 돌아 갈 법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속에서  우리는 820번 외세의 침략을 받았지만 우리가 남의 나라를 정복할려고 처 들어 간 것은 한 번번도 없었다고 하였다. 그 말씀이 맞는 말이라면 우리의 선조들은 양같이 착한 분들이었다고 평가를 해야 옳을가, 아니면 그렇게 기개가 없는 약소민족이었다고 과소평가를 해야 옳을가?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 우리는 UN에 가입하는 나라가 되고 싶어서 10월 24일, UN Day를 국경일로 하고 그 날을 경축하던 일을 기억한다.그런데 어느 때에 없어젔는지 그 날을 경축하는 일은 없어젔다. 오늘날 한국인이 UN 사무총장이 되고, 세계은행장도 한국인이 되고…

 

유수한 인재들이 여기 저기에서 세계의 정상에서 활약을 하는 것을 보면, 오늘날을 살아 가는 내 자신이 행복한 세대에 살고 있음을 늘 깊이 감사하고, 그러한 유수한 사람들이 자랑스럽기 그지 없다. 헌데 똥 누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왜 UN day를 잊어바린 것일가?

 

선진국 문턱에 들어 섰다고 자부하다 보니, UN의 날도 잊어 버렸고, 일본에게 압박을 받고 살던 그 36년의 아픔도 다 잊어 버린 것인가?.망각증이 심한 것이 우리 민족이라고 한탄하는 사람은 많지만, 바로 잡으겠다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그저 남의 이야기 하듯 한다.

 

그런데 요즈음 일본이 다시 일어 난다는 언론의 다양한 기사를 읽을 때면 왠지 입맛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역사적인 고찰에서 생각해 볼 때에 일본은 우리 나라의 숙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우리의 숙적이라고 생각을 하는 분도 있겠지만 실로 제일의 숙적은 북한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고 바로 일본이다.

 

반만년 역사속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가장 더럽히고, 우리 한반도의 유구한 기맥을  말살하고 자기 나라에 귀속시키려고 한 것은 오직 일본뿐이기 때문이다. 이 일본이 다시 욱일승천(旭日昇天)의 붉은 깃발을 처들고 살아 난다면, 어느 쪽에서 바라보던, 우리의 미래는 크건 작건 또 괴로울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일본군이 7년간 우리 땅에 머물면서, 얼마나 많은 별별 쑥덕질을 다 하였고, 우리 백성들을 괴롭혔든가? 1905년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고, 황후를 살해하고,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드니, 1910년 아예 나라를 병탄하였다.

 

유구한 반만년 역사를 지켜온 조선 백성들이 36년간 일본국 천황의 백성행세를 하여야 했던 괴로움과 아픔을 생각하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영원히 경계를 늦추어서는 아니 되는 이웃이다. 중국도 우리를 많이 괴롭렸지만, 그들은 우리를 통채로 삼킨 적은 없으며, 그래도 형님과 동생이라는 유대속에서 어떤 때는 사랑을 베풀기도 하였다.

 

1945년, 세계제2차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맥아더 장군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을 하였지만, 이후 미국은 일본에게 항상 후덕하고 느슨한 정책을 펴 왔다. 일본이 재생하여 미국의 이념전쟁에서 일익이 되도록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키워 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적으로 세계제2의 대국이 되니 미국경제가 위축되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존재로 부상한 것이다.

 

1950년, 한국에서 남북간 피나는 전쟁이 일어나니 일본은 재빠르게 미국을 등에 업고 돈벌이 가방을 챙겼다. 한국전에서 긴급하게 터지고 파괴되고 부숴지는 군수물자를 미국에서 완제품을 가저 오는 것 보다는, 가까운 일본에게 부속품을 주어 조립하게 함으로 일본의 기업들이 생기를 잡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토요다 미츠부시 회사들이 자라났다. 우리가 희생되는 동안 일본은 부자가 되었지만 그들이 그런 공로를 생각이나 하는가?아니 오히려 자기들이 일제 36년간 조선을 지배하였기에 몽매한 조선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되였다고 엉떼를 부리고 있지 아니 한가?

 

오늘날 일본과 중국, 일본과 미국, 일본과 남북한, 일본과 동남아 제국들의 관게를 요약해 보면 우리 한국의 미래와 위상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윤곽이 나온다. 이제부터 그러한 차원에서 이야기를 해 보고저 한다.

 

 

 

  1.     일본과 중국은 오래전 부터 아웅다웅이다. 그것도 일본 땅이나 중국 땅이 아니라 조선땅에서 그러 하였다. 1592년 4월 13 일,

임진왜란 때에 일본이 조선을 처들어 옴에 의주로 불야불야 몽진길에 오른 선조가 명나라에 원병을 청하였다. 명나라의   군대와 일본군이 평양에서 한 판 싸움을 벌렸다. 명군이 이겼다. 다시 황해도에서 또 붙었다. 이번에는 일본군이 이겼다. 이렇게 옥신

각신 임진왜란은 7년을 끌었다. 1894-5년, 이조말엽 조선을 누가 지배하느냐 하는 욕심으로 청일 전쟁이 또 일어 났다. 이번에도

 평양에서 붙었다. 일본이 또 이겼다. 승승장구한 일본은 만주를 먹고 중국 본토로 들어가 남경대학살등 중국인들을 마구 죽이고

  • . 그래서 중국과 일본은 조선이라는 고기 덩어리를 놓고 숙적이 된 것이다.

 

 

        요즈음에는 중국과 대만 오끼나와 중간쯤에 있는 무인도 “ 센카쿠열도(일본명)/댜오위다오(중국명) ”라는 섬을 놓고 중국과 일본이 일촉즉발의 위기속에 으르 렁    대고 있다. 경제부흥과 무력팽창이 한참 고조된 중국이 일본에게 숙적의 앙가품을 벼르고 있는 것이다. 헌데 만일 중국과   일본이 미사일 전쟁을 한다면 소위 anti-missile 화염이 한반도에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또 앉은 자리에서 중-일 전쟁의 불덩어리를 맞이 하게 된다.

 

 

  1.     일본과 미국은 1945년까지는세계제2차대전을 한 적국이였지만, 일본이 원자탄 두 방에 항복을 하고 나서는 미국의 우방국이 되였다. 지난 68년간 맥아더의 항복문서에 따라 자위대란 이름으로 국방을 유지해온 일본이지마는, 북한이 원자탄을 만들어 일본을 겨냥하고, 중국의 군사력이 극동지구를 지배하게 되니, 미국이나 일본은 어깨가 근질근질하게 되였다.

 

     더욱이 이번 아베정권이 선거에서 대승을 하게 되니 다시금 일본의 소위 평화헌법을 고처서 옛날의 군국주의적 힘을 발휘해야겠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 미군을 유지하기 위하여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을 느끼는 미국에게, 일본은 자기들의 경제력을 과시하며, 일본이 그 부담의 일익을 담당하겠으니 미국과 약속한 평화헌법을 풀어 달라는 것이다. 미국에게는 쏠깃한 추파일 것이다. 이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곧 그렇게 풀려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재무장이 눈 앞에 보인다.

 

 

  1.     다음은 일본과 한국 및 북한 관계이다. 애당초 한반도와 일본땅은 역사적인 숙적의 관계였다. 바야흐로 북한의 원자탄, 남한의 독도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난제로 되여 있기에 일본과의 화해라는 말은 겉으로 기름바르는 정도일 뿐이다. 우리 한국인들이 멍청하게 행동을 하는 날 우리는 또 다시 일본의 먹이가 될지도 모른다. 오늘날 한국국민의 국혼(國魂)없는 처세가 몹시 염려 된다. 일본은 한국과 유대를 갖을려고 노력을 하는 척을 하겠지만 수시로 남북간을 이간시켜 통일의 길을 방해할 것이다.

 

 

  1.     끝으로 일본과 동남아 제국의 관계이다. 필립핀을 비롯한 동남아 제국들은 일본의 침략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중국의 팽창세력으로 골치가 아픈 일이 생겼다. 남지나해의 무인도 섬을 놓고 필립핀 월남 중국등이 영토권 분쟁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들이 중국과의 사이가 나쁜 틈을 타서 일본의 아베정권이 약은 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빈곤을 면치 못하는 이 나라들에게 경제적인 선심공세를 퍼 부어, 그 동안 외롭기만 하던 세계 여론속에서, 자기편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얼마전에 일본은 필립핀에게 해양순시선 10여척을 무상으로 제공하였다. 이러한 물질공세로 세계여론에서 자기 편을 만들어  한국과 중국을 아세아권에서 고립시키려는 정책인 것이다.

 

자, 이렇게 세계정세가 풀려 가는데 우리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무었인가? 현제 미국이 우리 편이지만 일본과 우리가 대결

 하게 되면 미국은 최소한 중립이 아니면 일본편이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

고 있는가?  참으로 착잡한 세상이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게 속지 말며, 일본은 일어 난다던 옛 말이 다시 떠오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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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2
2013-08-13
국치(國恥), 광복(光復), 건국(建國)의 달

 8월은

                    국치(國恥), 광복(光復), 건국(建國)의 달

 

팔월은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할 세 가지 역사적 사건이 있는 달이다. 8.15 광복절만을 기념하니까 다른 두 가지 국치일(國恥日)과 건국일(建國日)은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저 가고 있다실로 광복절 보다 이 다른 두 날을 더 열심히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것인데 어찌 된 것인지 그 의의가 사뭇 잘 못되여 있음을 차제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과거를 앎으로 해서 미래를 엿볼 수가 있기 때이요즈음 한국에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프래카드를 치켜 들고 역사의 중요성을 계몽하고 있다왜 이러한 운동이 벌어저야 하는가? 

 

한국 국민들이 그만큼 우리 나라의 역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였고그래서 우리 나라의 역사를 모르게 되였으니 미래를 보는 눈이 희미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통탄하고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16년간 대한민국의 문교정책이 역사과목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는 것을 이제서 알아 차린 모양이다일본이나 중국의 역사교육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비추어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소홀히 하였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는 까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사교육 강화를 위한 특별담화까지 발표한 것을 보면 그래도 뒤늦게나마 철이 나게 되였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1910 8 29이 날이 우리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날이다그래서 부끄러운 날이라 하여 국치일이라고 부른다그런데 부끄럽게도 이 부끄러운 날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 잊어 버렸다그래서 또 부끄러운 일이 생긴 것이다.

 

역사공부를 하는 목적은 즐겁고 통쾌하고 신나는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슬프고아프고 억울한 일을 기어해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데에 그 뜻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왜 광복절은 그렇게 찬란하게 기념을 하면서 국치일은 잊혀 온 것인가?  우리 나라에서는 역사공부를 하는 목적이 잘 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지금도 내 머리를 긁적인다.

 

기쁘고 즐겁고 자랑스러운 것을 기념하기 보다는 아프고 쓰라리고 억울하고 통곡을 하던 역사를 기억하도록 국민을 지도해야 한다.그러한 교육과 사상과 이념을 통해서 국민이 결속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반대로 역사의식을 키워 온 셈이다.

 

우리 민족이 미래를 일으킬 수 있는 역사적 힘과 가치관은 8.15 해방의 정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는 8.29 국치일과 8.15 건국의 이념에서 찾아야 한다건국의 이념이 불확실 하다면 대한민국은 정통성을 상실한 국가라고 오도될 수가 있는 것이다그것이 바로 오늘날 전교조들이 학생들을 오도하는 빌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유치원에서 부터 3가지를 가르친다. “우리 유태인은 이천년간 방황한 민족우리 유태인은 핍박을 받은 민족우리 유태인은 육백만 학살 당한 민족이 그것이다유태인들이 이천년간이나 방황을 하고 나서 1948년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일으킨 것은 그렇게 강인한 비극의 역사의식을 불굴의 정신으로  2,000년간이나 지켜 왔기 때문이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았기고 36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미국의 원자탄 덕분에 나라를 되찾았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만세를 부르며 먹고 마시고 기쁘게 해방을 축하하자그것이 광복절의 의의가 아닌가?  잘 못되어도 한 참 잘못되었다.

 

나라를 빼앗긴 슬픔은 언제 그러한 일이 있었드냐 하고 벌써 다 잊어 버렸다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 버리고기억을 아니 해도 될 것은 기억하며 즐거운 것만을 추구하려는 자세는 역사를 지키려는 기본 자세가 아니다.

 

왜 국민을 그렇게 유도하는가대한민국의 학자와 역사가와 정치가들이 그렇게 식견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우리가 그렇게 역사를 유도해 온 한심한 민족이니 어찌 이스라엘 민족과 비교를 할 수가 있을가?

 

   1945 8 15해방이 된 날이다기쁜 날이다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낭아사끼에 원자탄 세례를 내리니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날이다그래서 우리는 며칠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해방이꿈이 아닌생시에 떨어진 날이다.

 

얼마나 기쁜 날이냐?  그 기쁨을 기념한 것이 벌써 68년이 지났다해방의 기쁨을 맛본 사람들은 거의 다 저 세상 사람들이 되여 가고 있다.이제는 그 기쁨이 무엇인지어떻게 얼마만큼 기쁜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관례적으로 그 날을 기념하고 있다.

 

역사의 과정속에서 이제는 별로 의의가 없는 국경일인데 아직도 대단한 일이나 되는 듯이 잔치를 벌리고 있다같은 날이지만 해방이 된 날 보다는 대한민국이 생긴 1948 8 15일을 건국절로 정하고 건국의 국경일을 기념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정도가 아닐가?

 

1948 8 15이 날이 무슨 날인가?  대한민국의 생일 날이다건국일이다.그런데 이 생일날을 기념하는 이는 없고떡국 한 그릇 먹자 하는 이도 없다. “생일 없는 소년이란 가련한 영화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생일날이 그러한 신세가 되여 있다자유와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이지만 국가의 생일을 찾아 주는 이가 왜 없는 것일가?  다른 나라에서는 건국일을 건국절이라하여 년중 최고의 국경일로 기념을 한다.

 

미국은 7 4일이 건국일이고 캐나다는 7 1일이며 중국은 10 10그리고 북한은 9 9일이다남의 나라들은 그 날을 최대의 잔칫날로 잡아 경축을 하는데 왜 대한민국은 제 생일도 없는 나라가 되였는가남의 생일은 잘 알고 있지만 내 나라의 생일(건국일)을 기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많지 않다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 아마도 거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의 이유를 찾아 본다면 8 15일이 광복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1945 8 15일을 경축하다 보니 진짜로 경축을 해야 하는 19488 15건국일은 광복절에 뭍혀 버린 채 관례적으로 그렇게 해 온 것이다. 

 

둘째의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역사의식의 무관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광복절이건 건국절이건 같은 날이니 뭐 그저 그렇게 지나면 되는 것이지 그걸 뭐라고 따저서 기념해야 하느냐 하는 적당주의 무관심이 빚어 낸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관이나 역사관에서 국민의식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닐가이제라도 늦지는 않았다.  광복절보다는 건국절을 제정하여 분명하게 대한민국의 생일날을 기념하는 확실한 역사의식을 온 국민에게 고취시켜야 한다그것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키켜 나가는 길이라는 것을 제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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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3
Detroit와 울산의 ‘희망버스’

Detroit와 울산의 희망버스

  

요즈음 언론에 떠 오르는 미국 “Detroit시의 파산” 뉴스는 참으로 충격적이다그러한 일이 왜 우리에게 충격적인가 하는 이유는그 도시가 세계의 자동차 메카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동차의 메카는 울산이다그런데 울산은 지금 소위 희망버스라고 하는 전문 데모꾼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어느 때는 데트로이트의 운명을 따라 갈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앞장을 서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자동차 공장의 중심지였던 데트로이트 시가 약 180억 달러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여 파산보호를 요청하였다이는 미국의 지방자치역사상 최대의 규모이다.

 

 

 

1950데트로이트는 인구 180만명으로 미국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였다.자동차 공업 “Big 3” 회사중 GM과 Chrysler 본사와 10개의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었고 자동차 부품을 비롯한 부대사업도 발달을 해서 제조분야의 일자리만 29만 6천개에 이르는 미국 최대의 공업도시였다.

   

 

   

 

 

2013지금은 인구 70만의 중소 도시로 전락을 하였고제조업 일자리는 2만 7천개로 1950년 당시의 규모에서 1/10로 축소되였다실업률은 16%로 미국의 평균 실업률 2배를 넘는 데다가 인구의 약 36%가 빈곤층이다.

 

 

 

데트로이트의 몰락은 무엇보다 자동차 산업에만 의존해 새로운 산업과 기업을 키우지 아니한 까닭이다. 1970년대 부터는 일본과 독일차에 밀려 데트로이트의 일자리가 급강하하기 시작하였다하지만 데트로이트는 무너저 가는 그 공백을 메울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고 빈 건물과 주택이 7만 채에 이르러 도시 전체가 황폐해 젔다.

 

 

 

공무원들에 대한 과잉 복지는 데트로이트 파산에 또 다른 원인의 하나이다퇴직한 공무원경찰소방관에 대한 연금건강보험등 지급해야 할 채무가 92억 달러로 파산부채의 절반을 차지한다자동차 산업은 급격히 줄어 가는데도 공무원들에 대한 복지혜택은 줄이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에만 편중한 구조조정에 실패한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기술적인 면에서도 일제와 독일제에 밀려 나기를 시작하였다노동자들이 성심성의 껏 일할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자기들의 임금과 복지혜택만을 주장하여 자동차생산의 질적향상에 기여하지 못하였든 것이다오늘날 이 북미땅에 굴러 다니는 미국차의 질은 수입차에 완전히 밀려 2등급 취급을 받게 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랄델피아볼티모어핏츠버그 같은 공업도시도 데트로이트와 비슷한 어려움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외국제 자동차에 밀려 아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정차했을 때에 앞과 옆에 있는 차종을 대충 훑어 보면 그 심각성을 금방 이해할 수가 있다앞과 옆에 있는 차 10대중 5대가 일본차이고 3대가 북미차이며 한 두대가 한국 아니면 독일제등이다이렇게 일본제가 북미의 모든 길위에 있는 차의 과반을 차지하였다어찌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견뎌 나겠는가?

 

 

 

그런데 걱정거리는 우리 나라의 자동차 도시 울산에서도 터저 나오고 있다노조의 노동자들이 지나친 요구행동으로 생산을 저하시키고 집단 무력시위를 벌림으로 산업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살이 찔대로 살이 찐 노동조합노동단체들의 집단적인 협박은 국력으로 저지하기조차 힘들어 가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지난 7월 20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주축으로한 3,000여 명이 전국 각지에서 이른바 희망버스를 타고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으로 몰려들었다현대차 사내의 하도급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바꾸라고 요구하며 100여명이 부상을 입는 폭력시위를 벌린 것이다.

 

 

 

이번까지 세 번째 벌어진 현대차 희망버스 시위는, 2011년 다섯번 있었던 한진 중공업 원정 폭력 시위를 본뜨고 있다한진 중공업은 그 해11월 시위대와 야당의 압박을 못이겨 정리해고자 94명을 복직시켰지만 일감이 없어 아직도 생산적 근로자 750명 가운데 300명이 돌아가며 집에서 놀고 있다고 한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비정규직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정규직 노조의 힘이 워낙에 쎄다 보니 경기변동에 맞춰 유연하게 생산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세계시장을 산대로 한 기업인데 어떤 아유로 시장의 판매가 저하되면 비정규직 인원을 감축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사정은 감안하지 아니 하고 모든 직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한다면 불경기시에는 결국 한진중공업 같은 현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노동조합은 자승자박의 행위가 된다는 것도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정규직 노조가 횡포를 부리고희망버스 같은 외부 노동자들이 처들어 와 압박을 가함으로 비정규직 고용마저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면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오직 한 길은 해외로 빠저 나가는 길 밖에 없다계산적으로 수치가 빤하게 입증한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해외공장 생산량(363만대)이 국내공장 생산량(349만대)을 초과하였다국내에서 강성노조 때문에 근무기강이 무너저서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데 소요시간이 31.3시간이었으나 중국 베이징의 공장에서는 19.5시간이었다사실이 그런데 왜 기업이 한국내에 머물러야 하는가?

 

 

 

민주 노총의 주축은 고용이 안정되고 높은 임금을 받는 공공부문과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다이들의 통상 임금에 수당상여금등을 합친 실수령액은 년 1억원이 넘는다캐나다 돈으로도 년봉 10불 이상이다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늘려 온 것은 바로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정규직 노조 탓이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위한다면 폭력 버스” 같은 시위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임금과 고용 유연성 등에서 자기들이 받고 있는 특권이나 혜택을 양보해야 한다노동조합이 비대해 저서 온 갖 행패를 다 부린다면 어느 기업이 온당하게 운영을 할 수가 있겠는가?

 

 

 

2011데모꾼들을 싣고 한진중공업에 처 들어 오던 희망버스를 부산 시민들은 절망버스라고 불렀다말이 희망버스이지 사실은절망버스이다현대자동차 공장에 처 들어 온 희망버스” 역시 국내 공장들을 해외로 밀어 내는 절망버스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대한민국의 울산이 미국의 데트로이트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고언을 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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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2

                     장외투쟁과 촛불시위 

                                

 
이 세상에 대한민국처럼 촛불시위가 유행하는 나라가 또 있을가?. 한국에는촛불시위를 할 사건들이 그렇게 많은 나라인가? 촛불을 켜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렇게 하는 것이 일을 해결하는 데에 최선책이라고 생각을 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재미가 있어서 인지, 해외에 살고 있는 나는, 도대체 툭하면 촛불집회를 하고 밤샘을 하러 나오는 대한민국의 촛불시위 사람들을 이해 할 수가 없다. 가정 주부는 물론 유모차까지 동원을 하여 몇 달을 두고 촛불집회를 하던 때도 있었다.
 
소위 광우병시위 때에 그러 하였다.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도 없고, 그런 병이 한국에 위협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했을가?  결론은 대한민국 내에서 반미사상을 고취하고 새로된 대통령(이명박)을 욱박 질러 길을 들이기 위해서 그러하였다고 한다. 이 것이 말이나 되는 말인가?
 
그 때에 국회의원이나 몽매한(?) 국민들 뿐만이 아니라 유식하다는 언론인들 마저도 가담을 하였으니 대한민국 국민들이 집단으로 미친 것인가? 아니면 치매가 걸린 것인가?  나는 지금도 대한민국의 그 때 그 증세를 진단 할 수가 없다.
 
서양사회에서 촛불을 켜고 모임을 갖는 이유는 대개 죽은 영혼을 위로 한다든가 가슴 아픈 추억을 회상한다든가 뭐 그러한 일에 촛불을 켜서 침묵적 분위기로 유도하는 것이 상례이다. 정치적인 목적이나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촛불집회는 비폭력 평화시위로서 참가자들의 강인한 소원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침묵시위 형태로 진행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그러한 조용한 목적보다는 정치적 투쟁방법으로 아니면 노동조합의 전투적 목적달성을 위하여,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고, 아우성을 치고, 때로는 파괴행사로 까지 군중을 유도하는 공격적 수단으로 촛불시위를 펼친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촛불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는 나라다. 세계 어데에도 없는 특수 민주주의 방식을 한국에서만이 그렇게 밤을 새워 가며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아니면 빗나가는 방법인지 알동 말동 한 것은 아마도 누구에게나 마찬 가지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있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있고, 합당한 민주방법으로 선출한 국회의원이 있고, 소위 집시법이라는 법도 있는데, 이러한 정당한 합법적인 절차를 다 집어 치우고 길거리로 뛰처 나가서 어느 마당에다가 천막을 치고 정치를 떠들어 제낀다. 불법이건 합법이건 상관할 것이 없다. 잡어 갈려면 잡어 가고 죽일려면 죽이라는 식으로 발악을 한다.
 
나가서 떠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켜고 사람들을 긁어 모아 밤이 새도록 농성을 벌린다. 노동조합이나 전문 데모꾼들은 거기에 한 수를 더 떠서 요즈음에는 높은 공사장 건물 꼭대기나 크레인 끝에 올라 가서 “내 요구를 들어 주지 아니하면 떨어저 죽을 것이다”하고 극단적인 협박까지 한다. 죽는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민주주의고 무엇이고 죽겠다는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Made in Korea 민주주의 진행 방식이다.
 
준법정신 보다는 무데뽀(?) 투쟁이 통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께임에는 꼭 정당이나 국회의원들이 뒷바침을 하고 있다. 허기사 국회에서도 제 고집대로 일이 진행되지 아니하면 의회정치를 다 집어 치우고, 길거리로 뛰처 나와 아전인수의 밥상을 차려 놓고 국민들에게 악을 쓴다  이런 것들이 한국에서 유행하는 장외투쟁이라고 하는 정치적 방식이고, 소위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촛불시위라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가 이런 식의 민주주의를 고집하고 있는가?
 
장외투쟁이란 단어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전용용어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하에서 결의가 이루어 지는 것이지만, 소수의 의견도 수렴을 해 주어야 하는, 소위 넓은 아량을 필요로 하는 정치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소수 정당들은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준수하기 보다는 아량을 더 베풀어야 한다는 요구가 원칙을 넘어 서서 행동하기 때문에 더 큰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럴때면 보따리를 싸들고 장외로 나가서 떠들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위하여 그리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근간에 한 참이나 떠들어 오던 NLL 사건과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과 저지른 비열한 대화와, NLL흥정 문제는 분명히 체통 없는 짓이었고, 반국가 행위였다. 그런데 그러한 근본문제는 제처 놓고, 누가 그런 비밀문서를 열람하였느냐? 왜 그 대화록이 없어젔느냐? 하는 지엽적인 문제들을 침소봉대하여 떠들고 있다.  
 
국정원 직원이 선거댓글을 달은 것이 불법이니 처벌하라고 아우성이다. 선거법위반도 아니었다는데 무엇이 위법이며 선거간섭이란 말인가? 선거 때에 아무 사람이 어떤 댓글을 수 천번 올린 것은 위법이 아닌데 국정원 직원이 같은 내용을 달은 것은 위법이요 선거간섭이라고?
 
검찰에서 이미 이 문제를 조사를 벌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합법절차를 제처 놓고 자기들 방식대로 국정감사를 꼭 해야 한다고 몇 달째 아우성을 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 국정감사를 한다고 여야가 합심하여 들어 덤비드니 제 뜻대로 풀리지가 않으니까 국회에서 깽판을 치고 드디어 장외투쟁의 판을 벌렸다. 사람들을 끌어 모아 또 촛불을 켜게 하는 것이다.
 
얼마나 성공적으로 패거리를 만들어 떠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런 정치방법은 좀 삼가하였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물고 늘어지는 정치 쇼나 장외투쟁 방식으로 본말을 뒤엎는 정치방해 공작은 민주주의 미래에 한 푼어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회정치하라고 국회의원을 뽑는 것인데 의회를 집어 치고 길거리로 나간다면 국회의원이라는 소임을 버린 것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꽤 큰 촛불집회가 여러번 있었다.  한 번 더듬어 보자.
 
 
1.    2002년, 동두천에서 미군의 장갑차가 훈련실시중 한국의 여학생 두 명을과실치사 하였다. 이 문제를 놓고 주한미군 사령관이 사과를 하였고 보상을 약속하였다. 허나 그것으로 만족치 않다고 미국 대통령이 사과 하라고 맨날 촛불시위를 하였다. 그래서 그렇게 하였다.
그래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받았으니 시원한가?  6.25전쟁 이후 1,800,000명의 미군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웠고 50,000여명의 목숨을 잃었다. 140여명의 미군장성의 아들들이 참전하였는데 34명이 대한민국 땅에서 죽었다. 허나 미국은 우리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를 아니 한다. 과실치사로 여학생이 죽었는데 우리가 그렇게 아우성을 치는 것이 과연 염치가 있는 국민들이 할 짓인가?
 
 
2..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에 노사모 사람들이 격렬한 촛불시위를 하였다. 노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의 결정에 따라 국회에서 통과한 탄핵안이 무효가 됨에 대통령직을 다시 수행할 수가 있게 되였다. 아마도 이러한 촛불시위로 인하여 헌법재판관이 마음을 돌렸는지 모른다.
 
 
3.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 촛불시위는 시위를 선동한 의도 자체가 애초부터 사기였다. 종북세력과 일부 언론과 야당이 야합을 하여 새로 선출된 대통령을 흔들기 시작한 촛불놀음이었다.
    사실도 아닌 광우병을 사실처럼 조작하여 국민을 혼돈시킨 것은 분명 사기죄로 유죄판결을 받아야 할 사실이지만 종북세력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어찌 어찌 하드니 유야무야 되어 버렸다. 사기 촛불시위 앞에서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허약함을 보여 준 사례였다. 이후 이명박 정권은  촛불시위만 벌어지면 꽁무니를 빼야하는 겁쟁이가 되여 버렸다.               
 
  
4.    2004년 11월 국가 보안법 반대 촛불시위:  2009년 용산 참사 촛불시위,
그리고 2013년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사건 촛불시위 등, 대소간의 시위가 계속되였고 지금도 서울시청 앞에서는 민주당 당수가 목소리를 높히고 있다. 무기한 투쟁이란다. 무엇을 위하여 산더미 같이 산적한 국회업무를 저버리고 무기한 장외투쟁을 하고 촛불을 켜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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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1
일본의 재무장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작성된 일본의 헌법 제9조는 일본의 재무장을 다음과 같이 포기하였다.

 

(1)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 해, 공군 기타의 전력을 보유하지 아니 한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아니 한다.    이러한 소위 평화헌법으로 68년을 유지하여 온 일본이 근래에 와서 다시 군국주의 패권주의 국가로 탈 바꿈을 하겠다고, 헌법을 개정하여 재무장을 하는 정치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정부는 일본 국민들의 의식을 개조하기 위하여, 세계 역사 앞에 치사하고 지저분한 변명을 하기 위하여, 온갖 광기를 다부리고 있다. 일본 아베 정권의 간사하고 얄팤한 행위를 더듬어 본다.

                                                   

 

1. 일본의 수상 아베는 “731”이란 번호가 붙은 비행기를 타고 일본자위대 조종석에 올라 쇼를 함으로 소위 731 정신을 고취하는 상징을 보였다. 그럼 그 731이 무었인가?  1942년, 일본이 만주에 설립운영한 소위 생체실험+화학무기 제조 부대의 번호이다.

중국인과 한국인 약 3,000명이 산채로 이 생체시험소에 들어가 희생되였으며, 화생방+세균전쟁의 폭탄제조창이 바로 여기 이 곳에 있었던 것이다. 세계의 여론이 비등하자 그 번호는 우연의 일치였다고 변명을 하였지만, 세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는데, 그렇게 수상이라는 자가 얄팤한 변명이나 하고 있으니 그 속셈을 알 수 있지 아니 한가?

 

2. 2013년 7월, 아베가 운동시합장에 나가서 시구를 하였는데 그의 등판 번호가 “96”이었다. 이는 일본 헌법 제96조를 의미한다. 그 때에 상원의원의 선거가 한 참 치열한 그 때였는지라 선거에서 헌법 96조를 개정할 수 있게끔 상원의석 2/3를 지지해 달라는 신호였다. 그러면 그 96조가 무었인가?

   

    (1)  이 헌법의 개정은 각 의원의 총 의원의 2/3이상의 찬성으로 국회가 이것를 발의하고, 국민에게
      제안하여 그 승인을  얻어야 한다. 특별한 국민투표 또는 국회가 정하는 선거시에 행하는
      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2) 헌법 개정에 대하여 전항의 승인을 얻은 때에는, 천황은 국민의 이름으로 이 헌법과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고 즉시 이를 공포한다.

 

3. 일본 아소 부수상은 독일의 히틀러거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시키고 비밀리에 헌법조항을 개정한 것처럼 일본헌법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도 않되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국제적인 봉변을 당하니까 그 말을 취소한다고 하였다. 취소가 아니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어야 할 일이다. 말은 아무렇게나 뱉어 놓고 겨우 취소한다고?
     
무데포로 떠들어 대는 일본 정객들의 미치개 소리를 가볍게 넘겨 버릴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3년간 선거 없이 진행될 일본의 정치판이기에 주변 국가들은 일본의 정치가들이 떠드는 군국주의 변모 과정을 반드시 주시해야 할 것이다.

 

4. 일본은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높히 치켜들고 군국주의 사상을 고취하고 있다. 이는 일본기 “히노마루”(태양)가 화기를 내뿜고 세계로 뻗어 가는 제2차대전시 군국사상의 상징이다. 영국이 세계 식민지를 끝없이 점령해 들어 갈 때의 상징인 Union Jack”의 모습을 답습하여 그려진 그 상징을 표절한 것이다.
     
아무튼 일본은 새로운 사기 진작책으로 이 기를 합법화 한다고 아베가 선언 하였다. 이 깃발이 벌써 한국땅에서 올라 간 적이 있고,젊은 아이들은 그 깃발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왜 입고 다니느냐고 물으니 그저 멋이 있어서 입고 다닌단다. 언제 누가 이 젊은이들에게 철이 들게 할 수가 있을가?


5. 지난 2013년 8월 6일, 바로 68년 전에 일본 히로시마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그 날, 일본은 “이즈마 함”이란 항공모함을 동해 바다애 진수하였다. 아직은 군국주의가 일본헌법에 합법화가 될 수 없으니까 뭐 그 항공모함이 호위함이라고 변명을 하여 발표하였다.  248m나 되는 긴 납작한 배가 호위함이란다?  그런 것 마저도 거짓말로 덮으려는 일본이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우리의 “독도”를 겨냥하여 움직이는 동해바다의 비행장이라는 것을 명지하여야 한다. 이즈모란 이름도 바로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선언한 시네마현의 옛 명칭이다. 이 항모에는 F-35B 스틸스기를 비롯하여 약 40여대의 전폭기와 헬기가 탑재될 것이다. 현재 일본은 이러한 항모를 1대 더 추가 제조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중국에서 서해 바다에 진수한 항모에 대항하여 일본이 움직여 가고 있음이 뚜렷하다.


6. 일본이 중국 한국 북한 및 동남아 제국에서 고립되는 외교전에서 벗어 나기 위하여 근래에 일본은 동남아 제국에게 경제적 유화작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센까꾸 열도에서 영토분쟁을 벌리고 있듯이 남지나해에서 팔립핀과 월남 및 중국이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일본이 필립핀을 비롯한 동남아 제국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이 나라들에게 경제적 물량작전을 써서 이 나라들이 중국의 그늘에서 일본편이 되도록 하는 작전이다. 영토전에서 중국에 대항하기 어려운 필립핀에게 고성능 해양순시선 10여척을 공짜로 희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아세아권에서 한국과 중국을 고립시키고 일본의 세력을 동남아 쪽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7. 만일에 센까꾸 열도의 영토 분쟁으로 인하여 피나는 중-일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 나라는 자칫 잘 못하면 생각이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느냐고?

중-일 양국간에 미사일 전쟁이 벌어젔다고 가정해 보자. 양국간에 분명코 Anti-Missile 전쟁으로 번질 것이다. 그 미사일들은 한국영토의 상공에서 폭발을 할 것이다. 핵무기가 그리 된다면 그 핵진은 한국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21년전, 임진왜란 때에 일본과 중국이 처음 싸웠다. 싸운 마당이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다. 조선 땅에서 싸운 것이다. 평양에서 붙었는데 처음에는 중국이 이겼다. 다시 황해도에서 싸웠는데 이번에는 일본이 이겼다. 그렇게 중-일군대는  7년이나 우리 땅에서 쑥덕질을 하였다.

지금으로 부터 118년전, 그러니까 1894-5년에 또 중-일 전쟁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중국 땅이 아니고 일본 땅도 아니었 다. 또 조선 땅 평양에서 붙었다. 일본이 또 이겼다. 그래서 우리는 드디어 일본에게 먹히는 운명이 되였고 이후 36년간 고초를 겪다가 미국의 원자탄 두 방 덕분으로 독립을 되찾는 행운을 맞은 것이다.


8. 일본이 저렇게 급작스럽게 날뛰는 것을 미국은 좌시할 것이다. 아니 동조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일에 지처 있다. 경제적으로 적자를 계속하는 상황인지라 현상유지 마저도 쉽지 않은 입장이다.

그런데 일본이 미국의 방위부담의 일부를 자청하는 입장이니 싫어 할 이유가 없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는 일에 일본이 군국주의 사상으로 앞장을 서겠다는데 미국은 은근히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한국이나 동남아 여러 나라들에게는 일본의 군국주의 사상에 대하여 위로의 말을 하겠지만 실로 내심은 우리의 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재무장을 위하여 날뛰는 일본을 멍하니 처다만 보고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가미까제 군국주의사상으로 무장을 해 가는 일본에게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의 국토를 지킬 것인가? 지금 이 때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지난 날 겪었던 역사속의 비극이 또 재연된다는 것을 상기하고 총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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