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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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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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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3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상에 맡은 일과 나만이 존재하는 듯 설레발을 치던 일상에서 잠깐 숨을 고르게 한 것은 순전히 ‘발렌타인 데이(Valentine's Day)’ 덕분이다. 


 ‘사랑해요’ 전화에 이어 'Be My Valentine!' 이라는 카드와 함께 화분이 배달되고, 초콜릿을 받게 되면 정말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주제넘은 생각까지 하게 된다.


 기독교의 순교자 ‘발렌타인’의 축일이 ‘숨은 흠모자’(Secret Admirer)의 사랑의 표시일로 전해진 것은 그 사랑의 깊이가 유별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 축제를 주제로 한 영화 ‘발렌티노’에서 여주인공은 해마다 발렌티노의 무덤에 장미꽃 한 송이를 바치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곤 하였다.


 이제는 거의 내용도 다 잊었지만 한 여인이 40여 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해마다 발렌타인 카드를 받아왔다며 40여 장의 카드를 펼쳐 보이는 특별취재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50이 되었을까 그의 나이로 봐선 10대부터 누군가 보이지 않는 찬미자가 있어 왔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둥실하고 순박한 여인의 얼굴은 온통 기쁨으로 반짝였다. 어느 해는 여행 중이었는지 외국에서 보내온 것도 있는데 카드를 받고 처음에는 발신인을 수소문 해 보려는 노력도 했었으나 ‘아무면 어떠랴?’ 이제는 단념하였다고 하였다.


 일평생 카드를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가졌으면 싶은 마음에 ‘롱펠로우’의 시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바람으로 스쳐 만나도 마음이 편안한 사람/...밤하늘의 별과 같은 사람/...흔들림 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의연한 사람/...거친 삶의 벌판에서..사슴 같은 사람/...화해와 평화스런 얼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카드를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받을 수 있는 ‘누구’가 되기 위해서 ‘...사람이 되고 싶다.’로 고쳐가며 수도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읽곤 했다.


 오늘 나이아가라합창단의 발렌타인 특별공연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장장 5시간의 싱-어-톤(Sing-A-Thon)이었다. 끝 무렵 순서에서 100여명의 합창단원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Somebody to love)를 부를 때였다. 한 청년이 소프라노와 테너가 한창 듀엣을 부르는 무대로 걸어 나오더니 테너의 마이크를 빼앗아 자기가 부르는 것이었다. 


합창단원은 물론 지휘자도 청중도 ‘어!’ 하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 청년이 테너파트를 아주 훌륭하게 부르는 데 놀랐고, 그의 노래가 소프라노에게 주는 사랑의 고백이라는데 더욱 놀라워한 청중들은 그가 무릎 꿇어 프로포즈하고 소프라노가 손들 들어 약혼반지를 보여줄 때에서야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쏟아내며 즐거워하였다. 


엉겁결에 중단되었던 합창은 다시 시작되고 지휘자는 이 노래를 그들에게 선사하였다. 엄연히 공적인 행사를 훼방하였는데도 불평은커녕 축하하며 열광하는 이들을 보면서 내 마음엔 전율처럼 파장이 일며 깊은 상념에 빠져 들었다. 


될수록 감추려하고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은밀한 사랑이라 믿는 우리는 사랑을 표현할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받는데도 서투른 것이 아닌가. 


 받는 ‘누구’가 되고 싶다는 바람(願)은 빛 잃은 계명처럼 흐려졌다. 되고 싶다’ 에서 ‘만나고 싶다’로 되돌아와 절망적으로 갈 길을 찾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온화한 미소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들어가고 싶은 마음, 편안하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보이지 않게 항상 나에게 사랑의 카드를 보내주는 사람. 삶의 현장에서 절망의 파도가 덮칠 때, 외로움과 고난의 회오리바람이 돌풍처럼 몰아칠 때 안길 수 있는 편안한 마음. 그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거하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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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다리 긴 아저씨(Daddy long leggs)


 
 지난 한 주일간 교육주변의 여러 기사가 머릿속을 뱅뱅 돌며 상념에 젖게 한다. 슈거 대디(부유층 중년, 노년남성)와 데이트를 하는 대가로 생활비와 용돈을 받는 여자(슈거 베이비)가 전 캐나다대학에 7만 여명인데 그 중 1158명이 토론토대학에 재학 중이고 웨스턴대학이 777명으로 2위라고 한다. 


웨스턴대학은 남편이 은퇴하고, 나와 아이들 모두 거친 삶의 현장이고 40여 년 뿌리 박힌 고향이다. 절박한 여대생들을 도와주는 따뜻한 손길에 우선 감사하는 마음 한 모퉁이로 이성과 감성이 엇갈리며 착잡하게 흐른다. 


엉뚱하게 오래 전에 읽어 내용조차 가물가물한 동화가 떠올랐다. 다리긴 아저씨의 원제목은 ‘대디 롱 렉스’(Daddy long leggs)’이다. 진 웹스터(1876-1916)가 1912년에 발표한 이 동화는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층마다 다른 감동을 주는 명작 고전동화라 불린다. 


뉴잉글랜드 ‘존 그리어 고아원’의 제루샤 에벗에게 후견인이 생겼다. 무명인이기를 원하는 후견인 존 스미스는 절대 누구인가를 알려고 하지 말 것과 한 달에 한번 씩 자기에게 편지를 보내 줄 것을 조건으로 당부했다.  


후견인통보를 받던 날 검은 복장에 높은 중절모를 쓴 신사가 역광을 받아 기다란 그림자를 끌며 현관문을 나가는 것을 본 제루샤는 그를 ‘다리긴 아저씨’ 혹은 ‘다리긴 거미’ 라고 별명을 붙였다. 


동화는 제루샤가 대학생활 4년간에 쓴 편지묶음이다. 발랄하고 명랑한 여대생 제루샤의 작가의 꿈과 이상을 가능하게 해준 존 스미스의 후견역할은 아름다운 만남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적인 도움이 얼굴 없는 미담이기를 기대하는 마음바닥엔 너무도 흔한 ‘미 투’( ME TOO)의 기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폭로와 몰락을 보아왔는가. 존경하고 숭배하던 스승이, 문학인이, 예술인이 심지어 성직자까지 가해자로 변모하는 순간 선의의 자선행위는 추악한 모습으로 사회윤리를 흐리게 하였다. 


자기계발과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삶의 질을 향상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성취하려는 인간 본연의 소망이 난관에 부딪치는 큰 원인은 비싼 학비 때문이라 변호한다. 며칠 후 신문에는 교사들의 순환스트라이크사진과 기사가 첫 면을 장식하였다. 교사처우와 교육환경개선을 위하여 주정부의 교육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데모라 한다. 학생들에게 삶의 규범과 지표가 되어야 할 스승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스트라이크를 하는 세태가 가슴 아프다. 


오래 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는 신입생 전원에게 국비장학금을 지급하였다. 액수의 다소보다는 나라가 인정하는 스승이라는 존재감에 더 큰 자부심을 가졌었다. 2학년부터는 A학점취득자에게 장학금을 수여하였는데 교육학박사 성 래운 교수에게는 학업을 잇게 해주는 생명선과 같았다고 한다. 


성적A학점을 얻기 위해 그는 기숙사 소등 후에 오직 한 군데 켜있는 희미한 화장실 불빛아래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교수님은 학문연마는 바른 지식과 지혜와 인생철학의 탐구라며 상아탑의 성취가 지고한 목표인 만큼 과정도 진지하여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낳으시고 가르치시고 다스리시는 아버지와 스승과 임금님의 존귀함이 똑같다 하여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배웠다. 군사부일체의 교육질서가 흔들릴 때 사회적 기강도 흐트러지는 현상을 수없이 보아왔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순위에 캐나다가 2위라고 한다. 


같은 지면엔 누군가가 거액의 기부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감동의 소식도 있었다. 요즘은 거의 모든 대학마다 장학제도가 있고 단체나 대 부호재단의 장학금도 많이 있다. 하지만 늘 부족하여 동창회에서는 기금조성에 동참해주기를 호소하는 서신이 자주 온다. 


한때 남편의 의대동창회에서는 사후재산을 모교에 전납한다는 유언장쓰기캠페인도 있었다. 오늘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전 세계 억만장자 2153명이 가진 돈이 하위 46억 명(46%)의 돈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빈곤한 대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으려면 그 중 몇% 만 있으면 될까. ‘돈이란 육감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없으면 다른 감각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된다.’는 섬머셋 몸의 명언이 떠오른다. 동시에 학교교육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웅변하는 표어가 있다.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돈이던 지식이던 아무리 풍요로워도 삶에 긍정적인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많고 적음이 하등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스친다. 스승이 존경받고 임금이 덕으로 다스리며 부모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있을까. 아무래도 인간의 힘으로는 난제 중 난제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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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9
겨울 밤 폭포에 걸린 무지개


 

 

 

성탄절 밤에 나이아가라폭포에 갔다. 장식전등이 점화된 나이아가라폭포와 ‘겨울 원더랜드’(Winter Wonder land)가 보고 싶던 차에 ‘말하는 머리’(Talking Head)라는 조형물이 새로 설치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용기를 내었다. 


깜깜한 들길은 얼음 눈 위에 차 바퀴자국만 두 줄로 길게 패였을 뿐 매운바람이 길바닥을 훑으며 쓰레질을 하고 있었다. 황량한 겨울벌판의 추위가 차 안에까지 스며드는 듯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수 만개의 작은 전등으로 점철된 폭포주변은 휘황찬란한 불야성이었다. 성탄절과 송구영신 이야기로 형상화된 전광조형들이 하얀 수정꽃 핀 나무들과, 얼음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를 배경으로 환상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나이아가라 강물은 낭떠러지로 쏟아지면서 폭포를 이루고 수력발전을 하여 전기를 출력하고, 이로 말미암아 세계에서 가장 큰 ‘꽃시계’를 만들 수 있고 ‘겨울 원더랜드’를 가능케 하였다. 외형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꽃시계’는 장애인을 위하여 시계의 초침은 목발로 만들어지고 ‘겨울 원더랜드’는 자연생태계를 보호육성하기 위한 기금모금의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새로 설치하였다는 조형물은 예술적 교육적 가치와 기여도가 크다는 평이다.


육중한 수력발전소 건물 앞에 시커먼 두 개의 철제흉상(胸像)이 있었다. ‘그 대가리 참 크다’. 누군가 첫 인상을 큰소리로 외쳐 폭소를 터뜨렸다. 헝가리예술가 빅토르 비세크(Victor Vieseck) 작품으로 얼굴전면에 지압표시 같은 작은 점들이 파란빛으로 명멸하면서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사람은 얼굴표정을 나타내기 위해 근육을 사용하지만 이 얼굴은 빛의 가능성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각각 개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4000여 개의 LED에 의해 다른 얼굴표정을 지어낸다는 설명이었다. 


점점이 파란 빛이 웃는 모습, 화난 표정 등을 계속적으로 그려내고 있었지만 보는 이에게 전해지는 깊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너무 큰 것을 기대한 때문일까 약간은 허한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때마침 폭포 위에 무지개가 흘러갔다. 5색 7색 조명등이 천둥소리를 지르며 부서져 내리는 폭포와 어우러져 출렁댔다. 용트림하는 청룡이 하늘로 치솟는가 하면 순식간에 뛰놀던 백조들이 푸드득 날기도 하였다.


 날씨가 청명하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는 어김없이 폭포 위에 무지개가 떴다. 시간에 따라 이동하는 무지개는 온전한 반원형에서부터 길이가 길고 짧게, 색깔도 뚜렷한 것, 희미한 것 여러 모양이지만 신기하게도 색 띠의 순서는 언제나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이다. 무지개는 물 한두 방울에 의한 프리즘 현상이 아니라 수억 개의 물 입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막중한 질감과 부피를 가진 색의 집합체라 배웠다. 


무언가 머릿속에 풀리지 않는 덩어리들로 답답할 때 곧잘 폭포로 달려왔다. 무지개를 한참 바라보노라면 는개비처럼 촉촉한 색 입자가 특유의 전파를 보내는 듯 마음이 짜릿하게 흔들렸다. 튀어 오르며 산산이 부서지는 폭포의 우렛소리가 온 몸을 흔들어대어 마음구석에 끼여 있던 응어리들을 말끔하게 털어내는 듯 가슴이 후련하고 차분해지는 것이었다.


인간의 감정은 순전히 환경에 투사된 자신의 표정이라는 깨달음이 들자 빛에 의해서 이루어진 철제 표정과 비교되면서 상념에 젖게 하였다. 4000여 개의 LED의 가능성이 수 억 개 물입자의 힘을 따를 수 있을까. 4000여 개의 LED로 같은 표정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머리는 사색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머리가 아니라 단순한 철제 대가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주제로만 프로그램 된 동일한 내용의 방송 연설과 무엇이 다르랴. 눈에 보이지 않아도 희망의 약속을 증언하는 무지개를 따를 수 있을까. 


새해 경자년엔 지구촌 곳곳에 선거도 많고 자발적 결단을 내려야 할 중대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대가리 아닌 지각 있는 머리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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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9
호두까기인형의 계절

 

 


 
흰 눈으로 찾아온 겨울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덮여있었다. 그랙 프륀(Greg Frewin)극장에 도착한 것은 시작20분 전이었다. 티켓을 사고 닫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장내는 깜깜하였다. ‘12월은 호두까기인형의 계절’ ‘아주 특별한 공연’이라는 대자제하에 나이아가라발레단의 공연기사가 있었다.  


나이아가라지역 발레학교를 주축으로 70여명의 학생들이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한다는 것이다. 겨울철눈길을 염려하여 택한 시간이 이틀간 공연 중 단 한번뿐인 정오공연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맑고 감미로운 선율이 음향기에서 울려나오면서 무대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호두까기인형은 토론토에서 내셔널발레를 본이래 벌써 3, 4년이 흘렀지만 한국에 체류하던 8년 동안 여러 번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발레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한국발레의 초석을 다진 명사로 불리며 한국예술원 원장이던 무용가 송 범씨 댁에 몇 년간 함께 기거하였다. 


남자가 발레를 하는 것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정작 그분의 발레공연은 영상으로 밖엔 볼 수 없었다. 이미 그는 20대의 날렵하고 힘이 다져진 예리한 모습에선 멀리 떠나와 있었던 것이다. 공부 못하는 건 가르치면 되지만 덜 생긴 건 도리가 없다. 일정한 키(168센치 정도), 몸무게(40~43kg)에 X자 다리, 미모여야 하는 이상형신체조건을 이때 알았다. 


발레리노(남자무용수)의 키는 발레리나와 20센티 정도 크고 날씬해야 되지만 발레리나와 파드되(2인 무)를 추고, 들어 올리고, 점프하고 회전시켜야 되는 에너지를 소유해야만 된다. 발레는 초등학교 3, 4학년, 혹은 늦어도 5학년 때부터는 수련을 시작하여야 됨으로 이 시기에 지망한 학생이 끝까지 열거한 조건대로 자라야 하는데 성장과정에서 이상변화가 나타나면 가차 없이 탈락시켜버린다고 한다. 


토슈즈를 신고 나비처럼 백조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춤을 추는 발레리나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속속들이 보고 들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름답게 장식된 방에 유모, 클라라와 동생 프리츠가 춤추며 나오고 파티손님들과 대부 도로셀마이어가 무대를 채운다. 클라라가 받은 선물은 호두까기인형, 프리츠가 심술궂게 장난치다 망가뜨린다. 대부가 인형을 고쳐주고 슬퍼하는 클라라를 위로한다. 


자정이 되어 손님들은 다 떠나고 클라라는 호두까기 인형을 끌어안고 잠이 든다.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깬 클라라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앞에서 커지고 호두까기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된다. 갑자기 생쥐들의 공격을 받게 되고 호두까기인형이 인도하는 꼬마병정들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클라라가 생쥐대장에게 슬리퍼를 던져 위기에 몰린 호두까기인형대장을 구해주는 찰라 갑자기 그가 왕자로 변화되어 신비한 나라로 함께 여행한다.


흰 눈 나라 왕과 왕비가 둘을 안내하여 과자나라로 도착하는 것에서 제1막은 끝이 난다. 전등이 켜지고, 주위를 돌아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학생들로 장내는 꽉 차있었다. 


기계에서 울리던 오케스트라보다 더 큰 왕 왕 소리가 생동의 교향곡으로 진동하였다. 


2막 과자의 나라, 스페인의 초콜릿, 아라비아의 커피, 중국의 차, 러시아의 캔디케인들이 즐겁게 군무를 추고 덴마크의 피리 부는 소녀들이 피리를 불며 춤을 춘다. 피날레는 70여명의 왈츠로 무대를 덮고 클라라는 잠에서 깨어나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꿈은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기억할 꿈이 되었다는 한 시간 40여분의 춤이 줄거리다. 


처음 음향기에서 차이코프스키 오케스트라가 울려나올 때부터 내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다. 클라라와 프리츠 남매의 다투는 장면이나 생쥐 떼들, 꼬마병정들의 춤사위가 정말로 실감이 났다. 파드되를 추는 클라라와 왕자, 무용수들이 점프하고 회전하고 들어 올리는 동작에서 표출되는 작은 실수와 미숙함이 어린 학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귀엽게 보였던 것이다.


지난 4개월 여 동안 아름답고 완전한 미를 성취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수련을 거듭한 열성과 노력이 가상하였다. 문득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마음으로 보아야 더 잘 보이는 거야.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어린 학생들이 추는 호두까기인형을 어린아이들과 함께 본 올해의 호두까기인형 발레공연은 나에게도 해마다 기억되는 즐거운 꿈이 될 것이다. 성탄절의 참 뜻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교훈으로. 밖에는 줄지어 기다리는 노란 스쿨버스 위에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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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7
어떤 악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얼굴표정이 갈팡질팡하다가 굳어버린다. 까슬한 두 손에 맞잡힌 채 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니 웃는 듯 주름 잡힌 눈가에 어둔 시름이 스친다.

‘이게 마지막일 것 같아요.’ 철벽같은 병마와 사투를 벌이다 문득 가지에 붙어있을 때 꽃다운 인사를 하고 싶어진 거였다. 


자신의 생각과 꿈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빚어내던 뜨거운 열정의 손, 많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고 쓰다듬어 주던 부드러운 손, 위로와 사랑을 전해주던 따뜻한 손길이었는데 온기가 빠져나가는 듯 딱딱한 막대기처럼 차가움마저 느껴진다. 이 손으로 전하려는 의미는 무엇일까. 


몇 해 전, 생전 이별 식을 가졌던 내과의사 이 박사가 떠오른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그는 의식이 창창한 동안에 정다웠던 친구들을 불러 고마웠던 인사도 전하고 지난 삶을 반추도 하면서 함께 웃고 즐거움을 나누다 잘 가, 잘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작별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내 손을 잡고 흔들어대던 그의 반가움은 나이보다 더 뒤로 물러선 관조의 모습으로 비쳐 마음 한 구석이 저렸었다. 그 때 100여명을 예상했던 그의 잔치에는 세 곱절이나 되는 인파가 몰려들어 웃음이 넘치는 이별 식을 하였다. 참신한 생각, 바람직한 종결이라고 저마다 긍정적인 찬사를 보내며 발길도 가볍게 헤어졌다.


바람직한 종결이라니 바람직한 인생이란 또 무엇일까. 인터넷으로 받은 어느 글에 이런 것이 있었다. ‘50대 중반쯤 인생의 정점에 서고 60대에는 관록으로 대접을 받고, 그 이후에는 원로로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생이라 하였다.


백세시대에 대입하면 연령대 구분에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열성을 다해 이룩한 삶의 성취에 존경을 받은 후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기본 사조에는 동감이었다. 


희랍신화에는 상대적인 시간의 신(神) “카이로스”와 절대적인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있다. “카이로스”는 기회의 신이기도 하여 같은 일분의 시간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길게도 짧게도 포착되어지는 정신적이며 주관적인 시간인 반면 “크로노스”는 달력에 맞추어 시계의 초침과 함께 흘러가는 자연적이며 절대적인 시간을 말한다. 


인간은 나이나 병으로 인해 삶의 능동적 역할 면에서는 물러나더라도 살아내야 할 자연적 절대시간 “크로노스”는 똑 같이 맞이한다. 사색하는 인간의 바람직한 삶이라면 젊은이들에게 지혜와 교훈을 주고 존경심을 일으키는 것이어야 하지만 인위적으로 단절한 후의 시간이 과연 바람직한 종결일지는 모를 일이다. 


가을의 초입에 몇 분의 영결식이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길게 줄 서있는 조문객들을 바라보았다. 고인의 지난날이 영상사진에서 웃으며 활기차게 삶의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난데없이 바람직한 종결이란 무형의 형상이 슬며시 겹쳐 들었다. 진즉 생전이별 식을 거행하고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초라한 자신, 망가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생전 이별이나 존엄사 선택의 진짜 깊이 감춰진 이유라 한다. 끝까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런데 조문객이 적은 영결식장에 가면 어찌나 쓸쓸한지 망자의 감고 있는 눈자위에 외로운 그늘이 덮이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마지막 길을 전송해 줄 친구 친지가 별로 많지 않다는 반증이라도 되는 듯 눈물이 밴 한숨이 나온다.


살아생전에 함께 웃고 즐겁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머리를 맞대고 서로 가슴 아파하며 고뇌하던 정다운 동료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멀리 서서 ‘잘 가라’ 손짓만 하는 친구들을 그려보았다.


영결식은 산자들의 예식이다. 소중한 삶을 살아낸 한 생명에 대한 경의의 표시인 것이다. 한 인간의 인생역전은 산자들 자신의 삶을 비쳐보게 하는 거울이 되고 간접 교훈을 남겨주기도 한다. 복잡한 찻길을 가다가도 까만 깃발을 달고 천천히 움직이는 장례행렬을 만나면 길가에 비켜서야 되는 것은 떠나는 분에 대한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알던 모르던 그렇게 하는 것은 인간 공통의 존엄성을 인정해 주는 예절인 것이다. 


이 박사는 생전이별 식후 6개월을 더 살았다. 그의 장례식엔 십 여 명 가족 친지뿐이었다. 어쩌면 가장 외롭고 고통스럽고 두려운 시간, 친구가 가장 필요한 그 시간에 혼자가 아니었을까. 문득 내 손 잡은 단단한 손은 놓을 손이 아니라 붙잡아주기를 원하는 간절한 호소처럼 전해왔다.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세태에 개인의 자존심이나 인간의 존엄성은 본연의 사랑으로 엮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악수하는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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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7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하필 그 외진 곳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느냐 힐난하는 표정들이다. 옥빌 동신교회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려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강의도하며 수강도하며 동신 늘푸른 시니어대학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4, 5년은 된 듯하다. 


노인인구가 갑자기 늘어날 이유가 없으니 대개 처음 시작할 때 등록한 학생들이 그대로 계속 진학 진급을 하면서 여일하게 정분을 쌓아 왔다. 엄격히 말하자면 진급이란 게 있을 수없이 다 똑같은 형편과 수준이지만 수강 햇수에 따라 학사, 석사가 있고 지난해에는 박사도 배출하였다. 


어언 창립 10주년, 20회기 개강을 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로든 시니어대학에 나올 수 있는 학생들은 시니어 중에서도 건강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 건강도 우수하여 판단력이나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강하다. 연륜에서 풍겨오는 지혜의 향기와 너그러운 인생의 관조를 고르게 지니고 있는 데다 제 2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자기발전의 목적이 투철하다.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한마디로 자아개발의 의욕은 왕성하나 행동반경이 전보다 좁아진 분들이라고 정의하면 가장 알맞은 표현일 듯하다. 정신적 감성적 육신적인 능력은 고루 갖추고 있으나 강력하고 예민한 순발력이 떨어지는 시기라고도 한다. 


지난 주 교내 노래자랑에서는 90세의 어르신이 목소리도 낭랑하게 한 곡 뽑으셨다. /강 건너 남촌에는 누가 살 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 젊어서는 육척 장신이었을 껑충한 키를 앞뒤로 제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어느새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합창에 무대 앞은 덩실거리는 어르신들로 꽉 차 흔들거렸다. 


우열을 가리는 장기자랑이고, 상품이 걸린 경연대회인데 그런 것 아랑곳없이 신나고 흥겹게 어깨춤을 추는 학생들이 시니어대학생들인 것이다. 송세훈씨의 시집을 저자보다 먼저 들고 온 분도 80세가 넘은 사군자 강사였다. 한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해 가지고 와서 소문을 내 버렸다. 


여름내 출판기념회 채근을 받으며 차일피일 미루어오던 터였다. 머리 위에서 맴돌던 하늘이 새파랗게 올라가버린 황금들판에 서니 갑자기 하나 둘 떠나는 이별의 소리가 사방에서 바스락거렸다. 눈만 뜨면 햇빛 따라 눈맞춤 하던 해바라기는 아예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청청하게 앞뜰을 지켜주던 단풍나무는 먼 길 떠날 채비에 빨갛게 노랗게 몸치장하느라 바쁘다. 


시간들이 어디론가 나를 지나쳐 떠나간다는 생각이 온 몸에 찬물을 끼얹는 듯 오싹하게 하였다. 년 말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에 마무리 속력을 넣을 때가 닥쳤다는 긴장감이 조급함을 몰고 왔다. 


미루기만 하던 시집출판기념회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시니어대학 특강시간에 이어서 간략한 출판자축연을 할 계획이 뜻밖의 탈바꿈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바이올린 연주자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여느 다른 시인들과는 별도로 손넽(Sonnet) 형식의 시집을 냈다고 밝힌 시인은 80대에 첫 시집을 출간한 수줍음도 있어 대도시의 행사를 기피하였다. 


마음은 있어도 먼 도시까지 출판기념회에 참석 할 수 없을 것 같은 시니어 친구들과 함께 조촐한 자축연을 하려고 생각했다. 외진 곳, 무명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라면 올 사람이 있으랴 가늠하였는데 신문기사를 보고 제일 먼저 전화 한 분이 저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것이다. 


피아노반주자만 구해달라는 주문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교회 반주자가 자원하고 나서자 먼 거리를 오겠다는 연락이 사방에서 이어졌다. 주방봉사 팀의 고충 등 사소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매듭을 지었다. 순수하고 따뜻한 시어로 풀어낸 시집 ‘외계인’의 출판기념회는 시니어 대학 친구 분들께 드리는 아주 소박한 가을의 선물로 포장하게 되었다. 


시니어대학 강의에 갑자기 끼어든 출판기념회를 더욱 뜻있는 행사로 만들기 위해 곱절의 수고를 해주신 상담학 박사 양미원 목사님, 바이올린연주를 자청하여주신 오경희님, 피아노 반주를 지원해주신 이진영님 그리고 주방봉사를 맡고 계신 피아니스트 고선주 권사님(故 고학환 한인노인회장님의 따님). 


이분들이 보통 바쁘신 분들인가. 오늘 바이올린 연주자가 곡명을 보내 왔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부드러운 바이올린의 숨소리가 흘러 넘친다. 가을이 바야흐로 아름답게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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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송세훈 시집 ‘외계인’ 서평

 

 

생명의 본체를 알고, 인생의 여정을 섭리로 믿는 사람의 시는 어떤 것일까 


표현의 도구 얼개, 시어(詩語)는 또 어떤 것일까 궁금하였다. 흔히들 ‘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말을 많이 한다. 미지의 형체를 표현할 때 자기가 만져 본대로 밖에는 그려 보일 수가 없는 이치를 단적으로 웅변하는 말이다. 


그런데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상황, 형이상학적 감상으로 가득 찬 우주 공간에서 감성을 표출해 내는 시(詩)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예민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시집 ‘외계인’때문이다. 


시인이 80대의 의학박사라는데 더 큰 이유가 있다. 송세훈 시인은 책을 많이 읽는 독서가다. 그리고 굉장한 속독가다. 일어, 영어 책을 원본으로 읽고 번역을 한다. 의과대학생일 때 두꺼운 일어 해부학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교재로 채택 될 정도로 유창하다. 


그가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것도 이런 바탕에서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이시환 님의 시 약 40여 편을 영어로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이중 몇 편(Standing on the prairie and other nineteen works) 으로 인터내셔널 포엣 아카데미에서 포엣 오브 밀레니엄 어 워드(POET OF MILLENIUM AWARD)를 받았다. 


시인은 이로 인해 국제 PEN 외국문학으로 회원이 되었다. 시를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남의 시를 번역하다가 내 시도 써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등단시인이 된 것은 10여 년 전, 한 문예지에 시인으로 등단하면서부터이다. 이때 그가 밝힌 말은 정식으로 원칙에 따른 자격을 얻기 위해서라 하였다. 


거의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그간의 시들을 모아 작은 시집을 출간하였다. 시인자신의 변증에서 그의 시는 손넽(Sonnet, 작은 노래)이라고 밝히고 있다. 


“. 영시를 즐겨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희곡, 장시를 즐겼던 때가 있습니다. 특히 ‘손 넷’ 형태의 14행시를 좋아했습니다. 시집 ‘외계인’에서 2부 달 속의 계수나무, 4부 평화가 오기를, 6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가 손 넷 형식의 장시입니다. 여러 시제를 한데 엮어 한국어식 라임을 따라 시 묶음을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시인들의 시집에서와는 별도의 시집을 만들었다고 특별한 해명을 붙입니다.” 


 시인 신광호님의 발문과 소설가 김외숙님의 독후감에는 시어의 순수함과 따뜻한 인간애, 인생의 깊은 관조가 공통되는 평이었다. 단순 명료한 시어로서 전달하는 그의 시 세계는 의학자의, 그리고 신앙인의 깊은 은유가 있어 밝힌 대로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 죽었던 꽃들이 다시 돋아나 / 새 생명인가 아니면 영생인가 / 화려한 꽃들의 결혼식이 이어집니다. / . 나비가 없어도 뿌리로 아들 딸 만들고. (꽃들의 축제에서)


인공수정, 줄기세포 복제양을 상상하게 한다. 시집6부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10장의 장시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죽은 자 끼리는 말이 통한다. 그러나 자유롭다. 그러나 산자의 꿈속에서 살아난다. 그러나 유적과 유물들의 입을 통하여 말한다. 그러나 산자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러나 역사기록이 증인이 된다… 시인은 죽어서도 시를 쓸 것이다. 시집은 이렇게 마무리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손 넷이다. 


인간은 긴 역사의 흐름에 한 점으로 생멸한다. 그 흔적은 지금이 아닌 미래에, 지구가 아닌 외계에서 평가될 것이다. 

 

*출판기념회: 10월 29일(화요일) 오전 11시 캐나다동신교회(The East Faith Presbyterian Church, 1126 Invicta Dr, Oakville, ON.). 전화 905 -338-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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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새벽별 물레방아(Morningstar Mills)

 

 

빨간 목조 방앗간과 하얀 물레방아를 보는 순간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옛 친구와 맞닥뜨린 듯 놀라움과 반가움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캐나다에서도 물레방아를 돌렸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차를 세웠다. 


새벽별 물레방아는 원위치에 보존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방앗간의 하나로 ‘데 큐’폭포(Decew Fall)에서 떨어지는 물 힘을 이용한 물레방아다. 1872년 윌슨 모닝스타가 세우고 1932년에 복원되어 지금은 ‘세인트 캐서린’시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세인트 캐서린을 비롯하여 나이아가라지역은 이리(Erie) 호수와 온타리오(Ontario) 호수의 단차(약 150m)로 인한 수력 의존 산업이 발달하였다. 나이아가라 수력발전소가 생기기 이전부터 많은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곡물을 가공하는 산업이 주를 이루었던 것이다. 빅토리아데이(5월 21일)부터 10월 중순까지 개관하며 매달 셋째 토요일에는 방아로 곡식을 찧는 시범행사를 갖는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오늘이 바로 방아찧기 일반 공개날이었다. 400파운드의 밀을 2시간 반 정도의 시간 안에 밀가루로 빻아내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쿵~덕 쿵~덕 낱알이 달아나는 방아 찧기가 아니라 맷돌로 갈아 가루를 만드는 제분소였다. 


물레방아는 수량(水量)이 적을 때만 사용하는 보조장치여서 오늘은 수력발전으로 방아를 움직인다고 하였다. 물레방아의 겉모양은 같았지만 고국의 산골마을 정취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수력발전 실에 들어서니 8m의 ‘데 큐’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에너지로 변화되어 전기가 들어오고 그 힘을 끌어올려 직경이 1.5m는 됨직한 바위덩이 맷돌을 돌려 밀을 빻고 있었다. 안내인이 작은 들창을 열고 내다보라고 해서 무심히 고개를 내밀다가 흐흑.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바로 폭포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이었다. 눈앞에서 흰 거품을 물고 요동치는 물줄기가 나마저 휩쓸어갈 듯이 포효하며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저 힘. 바위덩이 맷돌을 바람개비처럼 돌려 밀알들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 앞에 온 몸이 오싹하였다. 

 

 맷돌에서 갈아진 밀가루는 네 개의 체질 통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첫 번 통에서는 굵은 밀기울을 걷어낸 거친 가루를 내놓으며 다음으로 굴러가면서 고운 가루로 체질하는 작업이었다. 보통 빵을 굽는 데는 3번 통이 적당하다고 한다. 매일 아침 빵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가 자고 있던 가족들의 코를 간질이고 신선하고 맛있는 새아침을 열어주던 일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한 알의 밀알이 빻아지고 체 쳐지는 탈신의 과정을 지켜보니 빵을 얻기 위해 정력을 쏟는 인생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새롭게 되새겨진다. 한 개의 빵을 훔치다 19년간이나 옥중 삶을 살게 되는 장발장이 떠오르고 인간의 존엄성보다 생존의 기본조건이 우선하는 인간사 모든 고역이 빵으로 뭉쳐지면서 잠깐 마음을 어둡게 짓눌렀다.


 농업이 국가의 대본(大本)이던 농경문화시대에 옛 우리 조상들은 씨를 심을 때 셋을 심는다고 하였다. 하나는 하늘을 위해, 하나는 땅을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인생을 위해서 라고 한다. 하늘이라 함은 공중의 새를, 땅은 벌레를 말함으로 모든 생물이 함께 나누며 공존한다는 삶의 원리를 깨우쳐줌과 동시에 햇빛과 토양과 사람의 수고가 합력하여 식물을 경작하는 깊은 의미가 있다 한다.


삼분의 일의 몫, 한 알의 밀이 썩어야 밀을 생산하고, 빻아져야 밀가루가 되며 빵이 되듯,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더불어 사는 민초들의 삶을 그리게 한다. 


방앗간 가득 새로 빻은 생밀가루향기가 넘실댄다. 윙~윙~기계소리가 천정을 치고 마음을 울린다. 일생에 필요한 건 오직 몇 개의 빵일 뿐일 텐데..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참 뜻을 깊이 헤아린다. 오랜만에 구수한 빵 냄새로 몸도 마음도 철철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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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행운의 빨강 금붕어

  
 
현관문 곁 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바람에 불려온 단풍나무 씨앗들이 젖은 바닥에 찰싹 깔려있을 뿐 빨간색 ‘재 구아’도 까만색 ‘엘란트라’도 없다. 어깨를 맞붙인 타운하우스니 바로 옆방이 빈 듯 허전하다. ‘에 레나’는 키가 자그마하고 서글서글한 성품에 붙임성이 좋아 친척집 조카처럼 정이 갔다. 내가 힘이 더 세다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잔디를 깎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과수원에서 사과나 복숭아 체리 같은걸 사오면 애들 방에 넣어주듯 스스럼없이 나누며 지내던 10년 이웃이었다. ‘브록’(Brock)대학에서 공부하는 딸을 위해 ‘썬더베이’에 사는 부모가 집을 사주었다. 졸업 후 두어 해 보조교사를 하다가 정규직장을 찾아 이곳 저곳 옮겨 다니는 눈치더니 근래에는 뉴욕까지 간 모양이었다.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면 결혼할거라며 웃기더니 재작년에 빨간색 ‘재 구아’를 탄 기사를 데리고 왔다. 남편 ‘폴’ 역시 보조교사인데 뉴욕의 아파트값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국경을 넘나들며 출퇴근을 하더니 한겨울 지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며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 직장을 찾아 아예 이사까지 결정을 한 것이다. 


가끔 주일에 교회에 가려고 나오다 마주치는 경우가 있었다. ‘폴’은 늦잠 자는 중이라며 ‘팀 호 튼’커피를 사들고 들어가는 ‘에 레나’의 모습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토론토지역으로 직장을 구하러 다닌다며 ‘기도 좀 해 주세요.’ 여전히 명랑한 목소리로 부탁하였다. 


저녁에 떠날 예정이라기에 서둘러 돌아왔는데 이미 다 떠나버린 후였다. 문 앞에 선물 봉투 하나, 굿 바이! 즐기세요(Good Bye! Enjoy it). 굵은 매직펜으로 박아 쓴 메모 한 장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침에 인사는 했지만 떠날 때 직접 배웅하지 못한 서운함이 안개처럼 눈앞을 가렸다. 직장을 구하려고 애쓰는 야윈 모습들이 한 없이 애처롭고 그들 앞에 요동치는 생존경쟁의 세찬 파도가 슬픔처럼 밀려왔다. 텅 빈 드라이브 웨이가 허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마음바닥을 훑고 지나간다. 


까만 화판에 까만 표구를 한 액자를 꺼내보았다. 열두 마리 빨강금붕어들이 먹이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모여 있다. 머리를 맞댄 붕어들의 수염이 하늘하늘 흔들린다. 지느러미가 부드러운 비단결처럼 살랑살랑 물결을 가르고 갈라진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유연한 힘을 발산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풀쩍 솟아올라 홰를 치며 물방울을 사방에 쏘아댈 듯 휘젓는 몸놀림이 팔팔하다. 


사진인데 어쩌면 저렇게 살아있는 듯 정교하고 입체적일 수 있을까 신기해서 자세히 드려다 보다 깜짝 놀랐다. 그것은 사진이 아니라 아주 가는 비단실로 수를 놓은 자수액자였다. 


뒷면의 설명으로 행운의 금붕어 ‘치 쑤’(Chi Xu. 持續 지속)라는 걸 알았다. 빨간 금붕어는 상서롭다고 하며, 12마리는 12달을 뜻한다고 하였다. 일 년 열두 달 내내 행운이 넘치라는 축복의 액자였다. 어느 유명한 수예가가 정성들여 수놓은 축원의 비손이었다. 순간 이 액자는 나보다 그들에게 더 필요한 액자라는 판단이 번쩍 스쳤다. 


‘돈 밀스’ 어디라는 그들의 새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다. 고운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손 사례를 칠 생각이었다. 오늘 옆집에서 탕탕 못질 소리가 난다. 아직도 떠난 이웃에 대한 감상에 연연해 있는 자신을 깨우다가 새로운 상념에 빠져 들었다. 


지난 일생 동안 있은 나의 이사행적을 되돌아보았다. 한국을 떠나 미국 ‘바 팔 로’, ‘바 팔로’에서 캐나다 ‘런던’, ‘런던’내에서 2번, 그리고 나이아가라 ‘폰 힐’로 오기까지 총 5번의 이사를 하였다. 


그런데 언제나 이사를 간다는 일은 벅차고 버겁고 힘이 들었다. 무사히 이사를 가는 일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를 떠나 보내는 이웃들의 감상 같은 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떠난다는 사실을 슬퍼할 겨를도 없었고. ‘에 레나’의 떠남을 섭섭해 하듯이 즐겁게 지내던 이웃이 우리를 떠나 보내면서 어떤 감상을 가졌을지는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이 좋게 머리를 맞댄 열두 마리 빨간 금붕어가 뽀르륵 날숨을 뿜어낼 것만 같다. 일 년 열두 달 서로 비비며 사이 좋게 둥글둥글 살아가는 삶의 풍요로움을 일깨워준다. 볼 때마다 ‘에 레나’와 ‘폴’의 소원성취와 행복을 기원하게 한다. 어느 곳에서 살던지 축원으로 교류하는 우리의 마음은 항상 평안하고 행복할 것이다. 


어느날, 홀연히 닥쳐올 이사를 위해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싶다. 나눌수록 많아지고 베풀수록 더 크게 돌아오는 사랑의 자취를 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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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달나라와 꿈

 

 

가마솥 더위가 찐득하게 휘감긴다. 섭씨41도. 금년 들어 최고의 더위라 한다. 국제펜클럽야유회를 불가불 ‘이 회장’ 자택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인간이 달에 착륙한 ‘달 정복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곳곳에서 흥겨운 축제로 박람회로 떠들썩하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발자국을 내던 그날의 감격과 환희가 얼마나 뜨거웠으면 아직까지도 이리 더울까 웃음 짓는 얼굴들에 땀이 번들거린다. 


1957년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를, 1961년엔 유인우주선 보스토크1호 발사에 성공하였다. 1969년7월20일,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은 우주경쟁에서 몇 발 뒤쳐가던 미국의 자존심을 기세 좋게 세워 준 승리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50년간 탐사한 달의 생태조건은 우선 숨 쉴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이며, 중력의 가속도가 적어 무게가 가벼워지고, 강력한 방사선 위험이 높다고 한다. 게다가 태양빛이 닿는 표면의 온도는 섭씨127도까지 뜨겁다가 해가 지면 섭씨영하173도까지 내려가는 한마디로 사람이 살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극한환경이라 한다. 


고금동서 시인묵객들이 읊어온 낭만이나 계수나무 밑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그런 동화의 달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며칠 전 영화관에서 ‘첫 사람’(First Man)영화를 보았다. 달에 첫발을 디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Niel Armstrong)의 생애를 담은 영화이다. 작년 10월에 첫 개봉된 141분짜리 영화는 67만 여명의 관객이 몰렸다고 한다. 


황금빛 실 낫 같은 초승달에 밀짚모자를 쓴 소년이 걸터앉아 낚시질을 한다. 거울같이 잔잔한 파란 물에 빨간 찌가 ‘퐁당’ 소리를 내며 물보라를 일으키면 “. 당신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될 것 입니다.” 자막이 떠오르며 영화는 시작된다. 


‘닐 암스트롱’이 우주비행사가 되기까지 받는 극기와 고난도의 훈련, 그리고 아폴로11호를 타기 전 3번이나 불시착을 하게 되는 역경과 고투, 아폴로11호의 발사에서 착륙까지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불시에 맞닥뜨리는 위험과 사투 등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시청각을 뒤흔들고 마음공동을 마구 휘젓고 다닌 영상들이 쉽게 일어설 수 없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암으로 죽어가는 딸을 안고 달을 보여주며 달래는 인간 암스트롱의 고뇌는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고 가벼운 걸음으로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착륙의 환희와는 또 다른 묵중한 무게로 오랫동안 마음을 짓눌렀다. 


“날 비추는 저 달빛 내 사랑하는 이에게도 비쳐주소서.” 우주복 품속에 간직해 온 딸의 팔찌를 달에 떨어뜨리는 장면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넋을 놓고 지구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중얼거리던 ‘닐 암스트롱’은 2012년 관상동맥 협착수술 합병증으로 별세하였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24년까지 첫 번째 여성을 달에 착륙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아폴로11호 사령선조종사였던 ‘마이클 콜린스’는 달에 다시 가는 대신 화성에 직접 가고 싶다고 했다. 캐나다도 합류한 우주정거장 ‘게이트웨이플랜’, 중국의 달 우주연구소 설치계획 등 달, 화성에 대한 우주탐색은 계속 열기를 더해갈 전망이다. 


막대한 시간과 천문학적 재정을 투자하는 우주탐험은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 ‘펠함의 소리’(VOICE OF PELHAM)에 ‘새로운 각도에서 달 보기’라는 롭 웨더비(Rob Weatherby) 목사의 글이 있었다. 지금까지 달에서 걸은 우주비행사는 12명, 그 중 4명은 생존해 있고, 4명중 가장 어린 ‘찰리 듀크 주니어’(Charlie Duke Jr.)가 지난해 한 나이아가라교회의 기도회에 참석하였다. 


‘찰리 듀크’는 1972년 나이36세에 아폴로16호로 달 탐사를 마치고 11일 만에 돌 샘플을 가지고 돌아와 국가영웅이 되었다. 처음엔 여행도 많이 하고 발표회, 연설출연도 많았다. 1975년에 은퇴할 때 명성과 가정과 재정적 안정. 모두 가졌다 생각했는데 무언가 빠진 듯하였다. 참 마음의 평화가 없었던 것이다.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그는 돈을 좇아 새로운 기업에 몰입하게 되었다. 부인 ‘도로시’와 결혼생활에 파탄이 오기 시작, 이혼직전까지 이른 이들은 마침내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달 위를 걸을 수는 없으나 주와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파랑 초록색의 공 같은 지구는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고 술회하였다.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르고 하모니카를 불어제친 글벗의 얼굴이 속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불그레하다. 마음 밑바닥까지 훑으며 흐르는 부드러운 단소소리가 이태백의 신선 못으로 이끌고 간다. 물에 잠긴 달을 건지려다 문득 깨달았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달이나 화성으로 가야만 할까.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지구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아름답게 살고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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