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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캐나다의 Focus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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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6
유튜브 강좌를 시작합니다-한인 시니어분들의 많은 참여를


이민
(전 MBC 사진기자)

 

 저의 친한 벗, 마인즈 프러덕션의 황현수 씨와 부동산캐나다 이용우 사장과 함께 토바구(‘토론토 이바구’)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토론토에서 활동하시는 화제의 인물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첫 편을 제작한 후 코로나가 창궐해 시작과 동시에 휴면에 들어갔습니다. 한두 달이면 끝나겠지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활동을 재개할 때까지 ‘토바구 유튜브 강좌’를 해볼까 합니다.

 

 몇 달 전, 토론토에서 활동하시는 유튜버들의 모임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립행사도 성황리에 가진 것으로 들었습니다. 같은 유튜버로서 축하드릴 일입니다. 그런데 그 모임을 알고 조금 놀랐던 점이 세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유튜브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 두번 째는 회원분들 중에 연배가 되시는 분들이 꽤 많다는 사실, 세번 째는, 모임에 참석하시는 몇 분을 만나뵙고 안 사실이지만, 관심만큼 유튜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마 토론토에 사시는 시니어분들 중에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지만 유튜브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이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만든 비디오를 많이 보기도 하고 본인 것도 많이 올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셀폰 하나로 찍고 편집하고 올리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유튜버로 활동하며 백여개가 넘는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그중 방문자수 200~300을 넘는 비디오는 극히 일부입니다. 그러니까 완전 허당인 유튜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강좌를 해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국과 캐나다에서 방송국 생활을 20년 넘게 했기 때문에 비디오 제작에 관해선 ABC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심은 많지만 지식이 부족한 시니어분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 지식이 모든 계층에게 도움이 될만큼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니어 분들의 유튜브 입문을 안내시켜드릴 만큼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유튜버 활동을 하고 계시는 몇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후 느낀 점입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같이 하고 싶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튜브 구조와 운영

-비디오 잘 찍는 법

-비디오 편집(openshot 사용 예정)

-비디오에 필요한 컴퓨터 그래픽 두개(gimp와 inkscape),

-음성녹음 및 편집(audacity) 등

 

 제가 시니어분들에게 유튜브를 권하고 싶은 이유는 첫째,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습니다. 둘째, 요모 조모 머리쓰며 할일이 많아 두뇌운동이 됩니다. 셋째, 좋은 비디오를 위해 많이 움직이게 됩니다. 넷째, 여러분의 삶이 기록으로 남습니다.

 

 그외 좋은 점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수익창출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우고 싶은데 마땅히 배울 곳이 없는 시니어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시작합니다. 

 

 저도 토론토에 거주하는 시니어이기 때문에 여러분과 의견을 나누며 이루어지는 강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강좌는 매주 한두 개씩 <부동산캐나다> 웹사이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카톡아이디 hifi8899)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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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북으로 개인 여행 허용해 비정부 민간 교류 시작하자


박진동 (토론토 민주평통자문위원)
[email protected]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누며 휴전선 경계를 함께 넘나들고, 북한의 군중들 앞에서 남한 대통령이 연설도 하고,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지도자와 만나 정상회담을 하며 엄지 척을 하던 한두 해 전만 해도 한반도는 평화를 넘어 통일도 멀지 않은 듯이 보였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간 협상을 미국내 자기 홍보용으로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로 그 희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왜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에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가? 남북을 적대적 상태로 만든 70년전 6.25전쟁은 현재 휴전 상태이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전쟁 상대국 사이에 평화협정과 외교적 관계를 만들어야 진정으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6.25 전쟁이 남과 북이 싸운 것이라 알고 있지만 군사 지휘권을 기준으로는 북한과 미국이 했고, 휴전협정도 북한 김일성, 중간에 참전한 중국군과 미군 사령관이 서명했다.

 

지금도 남한의 전시작전권은 미군이 갖고 있고, 한국정부는 전쟁을 종식하는데 권한이 없으며 평화체제를 만들 수 있는 당사자가 아니다. 그 평화를 만들 당사자가 미국과 북한인 것이고 그것이 바로 북미정상회담을 하는 이유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한 이유는 미국과의 협상능력(위협할 수 있는 존재 증명)을 갖고자 하는 것이었고 핵폐기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그 평화와 북미 수교이다. 북미 양측의 협상 주장을 요약하면, 미국은 ‘핵폐기 먼저 북미 수교 나중’, 북한은 ‘평화협정과 핵폐기 동시 진행’이라 할 수 있다.

 

핵시설 및 핵물질의 물리적인 폐기를 전제로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미국에 불리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동안의 북미 관계를 보면 미국은 평화보다는 미국에 위협처럼 보이는 북한이 동북아 전략에 오히려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간 후 답답한 사람들은 평화와 교류의 당사자인 남북한 정부와 국민들이다. 북한은 그 답답함을 남한에 원성으로 퍼붓고 있다. 미국은 UN을 움직여 대북제재를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고 남북간 경제교류도 막고 있다. 남한은 한미동맹을 굳게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라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제교류를 강행하기 어렵다. 때문에 곧 재개될 것이라 기대했던 개성공단도 언제 열릴지 요원해졌다.

 

이 교착상태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서 휴전선에서의 민간 왕래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한다. 차량이 UN제재의 대상이라면 차량 이용하지 않고 도보 또는 자전거 자유왕래를 허가해주면 좋겠다.

 

 배낭을 메고 설악산에서 비무장지대 (DMZ)을 거쳐 금강산에 걸어서 가고, 개성까지 자전거 여행으로 다녀오고, 도보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건너가 북한의 교통 수단으로 평양을 다녀오고 하는 것을 남북 정부가 허용해 줄 수는 없을까?

 

 막연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방법으로라도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한국민의 북한 방문이 어렵다면 외국인의 판문점 통과 방북을 허용해주면 좋겠다. 북한관광을 원하는 많은 해외동포들과 미지의 나라를 보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그 길을 이용할 것이다. 남과 북은 해외 관광객 유입으로 경제적인 효과도 얻게되고 민간의 왕래가 많아지면 남북간의 적대감이 줄어들고 서로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회들이 생길 것이다.

 

많은 민간 왕래가 휴전선의 군사적 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그러한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져 평화에 대한 세계 여론을 형성한다면 그것이 북미 회담이나 주변 강대국, 즉 미일중러 등에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정치인이나 정부는 복잡한 외교적 정치적 입장에서 앞으로 나가기 어렵고 오히려 시민들이 진보적이 되기도 한다. 남과 북의 시민들은 평화를 갈구한다. 그들이 직접 그것을 이루도록 허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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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2
은퇴 후의 삶(2)

독자 기고

레이 강(Ray Ghang)

 

 65세에 은퇴 후 아파트로 이사하였다. 아파트 안에서 새 이웃을 만나면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관심있게 보면 특별한 사정이 있는 분이 많다. 어느 그리스계 노부부는 고국과 이곳에 집이 있는 부자인데 이 작은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말년을 보내고 있으며, 80세가 넘은 백인 A여사는 군공무원으로 은퇴한 수준높은 엘리트인데 몸이 불편하여 항상 벤치에 앉아 있는데 60세 알콜중독 아들이 가끔 구타하는 불행한 여인이다. 귀가시 커피를 자주 사드린다.

 

 70세 백인 B여사는 무릎 관절병이 있어 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항상 벤치에 앉아 있다. C여사는 아직 젊은 50대인데 복부에 큰 혹이 있는 환자로 보행보조기를 끌고 이동한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병 문안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로비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아 귀가시 그들을 만나면 들고 오던 과일을 나누어 주면 허물없이 받아들인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주고받는 행위를 자연스럽고 평범히 여긴다. 뒤끝도 없어 이런 일이 오래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혹으로 고생하는 50대 여인은 기력이 너무 없어 어쩌다 장을 보고 카트를 밀고 올 때 아주 낮은 경사길인데도 밀고 올 힘이 없어 멈춰서 있기도 한다. 무거운 수박이나 쌀, 우유 등은 쇼핑하지 못한다. 내가 도와주어야 할 때가 많다. 해가 갈수록 건강이 나빠져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면 한 2개월 외출과 쇼핑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사나? 쇼핑을 못하는데… 경제사정도 어려워 가끔 버스티켓도 요구하고 찾아오는 가족친지도 없는 것 같고.. 이런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 여인에게 지원을 집중하기로 했다. 몸이 불편하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 쉽다. 먼저 쌀을 한 포대 사주니 감사히 받는데 절망과 슬픔이 가득한 목소리다. 주식이 빵이란 생각에 식빵을 사주니 또 매우 슬픈 목소리로 “Thanks” 한다. 요리에 필요한 올리브 오일, 신안 바다 소금, 한국 간장, 국산 고추가루 등을 사주었다. 또 환자이기 때문에 신선한 각종 채소와 과일 고기, 닭을 사주었다. 손힘이 없으므로 고기는 간고기로 샀다.

 

 무엇이 필요한지 물으니 ‘AA배터리’ 2개와 우유를 요구한다. 우유에 계란 꾸러미를 더해 사주었다. 그런데 채소 등은 어떻게 소비하는지 몰라 며칠 간격으로 또 사주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우유와 계란은 월 2회 공급하고 있다. 젊기 때문에 군것질로 초콜릿과 쿠키 등을 사주고 수박은 반 나눠주고 아이스크림은 1리터짜리 사서 반을 덜어내고 남은 반은 통째로 주면서 나누어 먹자고 말해준다. 바나나와 과일도 끊임없이 공급하고 있다. 옥수수, 흰감자, 단호박 등도 골고루 공급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 몇 달 후에는 식품을 받을 때 모기소리 같은 작은 목소리로 “Thanks” 하더니 몇달 후에는 맑은 목소리로 “Thanks” 한다. 그 몇달 후엔 힘있고 청아한 목소리로 무어라고 몇마디 하면서 “Thanks” 한다.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목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다.

 

 Ginger ale과 Red Rose Tea를 요구한다. 요즘은 단정히 차려입고 보행보조기를 끌고 나오기도 한다. 식품을 건네주고 돌아서 오면 내 뒷모습을 오래 쳐다보다가 내가 돌아보면 쏙 들어간다. 오후에 귀가할 때면 발코니에 나와 한쪽 눈만 내밀고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어느날 한통의 전문이 배달되었다. 몇날 몇시에 집에 방문(Wellness Check)하겠다는 것이다. 아니 노인과 환자도 있는데 그들한테는 한번도 안 나오면서 나에게 무슨 문안을…

 

 정말 그날 아침, 그것도 이른 9시에 젊은 백인 남녀 2명이 방문나와서 몇가지 문의한 후 그 50대 여인에게 Food Support를 하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그 문제로 문안 확인차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회의 시스템과 깊이를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이 여인을 포함하여 연고가 없는 몇 분을 위해 크리스마스 연말에는 간소하게 송년의 밤 행사를 마련했으나 일이 벅차서 몇번 한 후 중단하였다. 이런 분들을 위해 다소 위안을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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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1
(독자기고)은퇴 후의 삶(1)

 

레이 강
(Ray Ghang. 토론토 댄포스)

 

 정년 퇴직 후 아파트로 이사했다. 연금이 나오면서 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생각하게 되어 우선 내 주위의 작은 일부터 관심을 갖기로 하고 아파트 자치위원들이 하는 연중행사에 참여하였다. 봄부터 시작하는 화단 가꾸기와 공원과 냇가 청소 등을 하였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트리 장식과 소품전시를 하였는데 자치위원들과 함께 하다보니 금새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40여년 전에 기부받은 소품들을 매해 재사용하다보니 고물이 되어 보기가 너무 좋지 않아 내가 사비를 들여 요즘 새로나운 신제품들로 새로 장식하고 라디오도 구입하여 캐롤을 듣게 하고 색 전구도 보강하여 더 환하게 해놓으니 전혀 새로운 분위기가 되어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주위에 앉아 성탄 분위기를 즐긴다.

 

 또 별도로 작은 탁자를 놓고 개인적으로 수집한 10여 점의 한국 전통 인형을 전시하였는데 여성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9월 말이 되어 Thanksgiving Day 분위기가 고조되면 대형 국화 화분 2개를 구입하여 로비 안에 탁자를 놓고 전시하였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휴게실 등에는 벽시계가 있으나 로비 출입구에는 없어서 벽시계를 구입하여 공시판 위 중앙에 걸어 놓았다. 그런데 며칠 후 수리를 위해 잠깐 방에 갖고 간 사이 어느 분이 자기의 크고 더 좋은 것을 걸어 놓고 사라졌다. 공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것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것 같아 내 개인적인 튄 행동이 아니었나 하는 우려를 안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는 국경일에 국기를 거는 집이 한 곳도 없다. 그래서 대형 국기를 구입하여 국경일이 오면 정문 밖의 두 기둥에 줄로 연결하여 횡으로 길게 걸었다. 그런데 바람에 들떠서 항상 잘 보이지 않는다. 다음날 어느 분이 가는 줄로 기 한쪽 하단과 기둥 아래를 연결하여 묶으니 똑바로 펴져서 항상 잘보인다.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아이디어를 내서 동참해주니 나의 독단 행동이 아닌가 하던 걱정을 안하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백인 주류의 리더 그룹이 있어서 자치회장도 그들이 하고 연중 여러 행사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식품을 구입하여 로비 안 실내에서 판매하는 선행도 하고 있다.

 

 국경일마다 착오없이 국기 하강을 철저히 이행하는 이 동양인에 대해 백인 여성 리더들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No.1이라고 치켜세워 주지만 나이 듬직하고 말이없는 백인 남성 리더들의 속마음은 알 수가 없다. 그들 백인들이 해야 할 일을 내가 묻지도 않고 했기 때문이다. 항상 무관심하게 행동하던 흑인 여성도 한 팔을 휘저으며 지지의 환호를 보낸다. 의외의 일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 무슨 잘못된 일이 생기면 차이니스가 했다고 백인들끼리 귓속말을 한다. 내가 보기엔 몇몇 중국인 부부는 나이도 많고 점잖아서 그들이 했다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나도 같은 동양인이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차별적인 귓속말을 소홀히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잘못된 관념을 타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인 노인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의식들, 싸이클링을 하거나 기타를 들고 가든에서 연습하며 과시하고 조킹을 하면서 로비에서 그들을 만나면 큰소리로 인사를 나누며 우정과 평등감을 갖도록 노력하였다. 싸이클링을 하니 벌써 그들이 먼저 말을건다. 백인들은 스포츠나 연예활동에 민감하고 존중하는 편이다.

 

 몇년 전 어느 중국 청년이 버스에서 백인 청년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 바로 후에 오타와에서 백인 청년이 중국 청년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이곳 주류 신문기사는 중국인 사건에 대해 ‘야만적인…’이라고 기사가 시작되고 백인건에 대해서는 ‘oo병 환자로 추측되는…’이라고 기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똑같은 사건이지만 이 사회의 인종차별은 구조적으로 뿌리깊게 형성되어 있다. 그 후 이 사건의 재판은 백인은 무죄(병자이므로) 중국인은 중형이 선고되었다.

 

 이처럼 인종에 대해 차별받는 소수민족은 연합된 파워를 갖고 필요할 때마다 차원높고 효과가 있는 대처를 할 수 있는 전담조직이 필요할 것 같다. 또 활성화한 홍보와 교육을 꾸준히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매스컴 운영부서가 있으면 좋을까 생각한다. 소수민족이 결집하여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신들이 무심코 한 차별적인 한마디가 마음의 큰 상처를 준다는 인식을 확신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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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1
추석 오빠


박순애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 왔어요. 일년을 쉼없이 걷고 또 걸어 머나먼 길 피로도 가실 새 없이 잠깐 뵈고 다시 가실 길. 먼 타국의 태평양을 건너서 또 찾아 왔네요.

 

 고사리 나물, 생선 머리 정성껏 말려 제일 예쁜 것으로 사과 세 알, 배 세 알, 약과도 한 접시, 강정도 한 접시… ~아  맞다. 생전에 아버지 즐겨드시던 미역국! 잊지 말고 꼭 챙겨라~~

 

 파아란 하늘에 흰구름도 그대로, 산소에 울창한 나무숲도 그대로인데, 썰렁하니 지나치는  가을 바람에 까만머리 희어진 오빠와 나. 우리들 모습만  변해 있어요.

 

 부모님 봉분 위에 젖은 흙을 올리던 가녀린 13살 소녀의 손도, 시작도 못한 효도에 오열을 터트리던  17살 소년의 어깨도 어느새 눈물과 추억의  세월을 건너왔는데… 이제는 눈물도 말라  주름져가는 얼굴에 거친 볼 비비며 추석오빠 나에게 속삭이네요.  

 

 발이 닳고 뼈가 녹아 이 세상 모든것 잊혀진대도 여름 바다 겨울 산 넘고 넘어서 훨~훨~ 날으는 가을바람 되어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또 다음 해에도 늘 그랬듯이 반드시 널 찾아 또 올거야…

 

 아버지, 어머니, 너와 나 등에 정히 모시고 영원한 봄나라에 늘 함께 살자꾸나.  해마다  찾아오는  추석 오빠, 해마다 기다리는 추석 누이 되어, 꼬옥 올 것이라는 기다림의 믿음. 반드시 기다릴 것 이라는 기대의 믿음.  이 두 남매는 올해도 다시 만나 부둥켜 안고 운다. (2020년 10 월1일 추석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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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특별기고) 조성훈(Stan Cho) 온주의원 'Highway 401 Ramp'

 


*아래 글은 조성훈(Stan Cho)온주의원(MPP)지난 7일자 Toronto Sun기고한 칼럼으로 본지에 특별기고로 게재합니다.

 

 It’s easy to pass the buck in politics. If a problem is too hard or too costly to fix, sometimes the most politically expedient course of action is to blame another level of government.

 

 There’s a problem in my neighbourhood of Willowdale in North York that for more than a decade has been the perfect example of this all too common phenomenon.

 

 At the south end of my community, the world’s longest street, Yonge Street intersects with North America’s busiest highway, the 401. The results are predictably terrible. Long lines of traffic, both morning and night back up for miles as commuters from the 905 wait to ramp on to the 401.

 

 City planners will tell you that traffic is like water, it finds every crack and crevasse to run in to. And so, drivers, attempting to shave time of their commute speed down residential side-streets to avoid the lines. A reality that families living near the Yonge-401 Ramp know all too well and in one tragic case resulted in the death of a child.

 

 

 My community has been asking their elected leaders to fix this problem for over a decade. To re-design the interchange and ease the congestion from a poorly designed ramp system. So, why hasn’t anything been done?

 

 The frank answer is: that no one wanted to solve it. Highway 401 is a provincial highway, so the City of Toronto claimed the interchange was the province’s responsibility. But Yonge Street is a municipal road, so the provincial government under the Wynne Liberals passed the buck to the City.

 

 For 15 years nothing was done. That needs to change. Jurisdictions shouldn’t get in the way of solutions that people in our communities need. This provincial government believes that outcomes matter. It’s the retail, people-first politics embodied by Premier Ford.

 

 From my first day in office I’ve worked closely with the Ministry of Transportation to move the project forward, to bring the Province and City together to fix this long standing and dangerous problem.

 

 Ontarians don’t care how it gets done, or who gets it done. They count on their elected officials to get the job done for them. That’s exactly what I intend to do.

 

St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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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동행” 연재를 마치며

유홍선

 (성인장애인공동체 사무장)

 

 성인장애인공동체 회원들의 이야기를 묶어 발행한 책 “동행”의 개별 이야기들이 부동산캐나다를 통해 지난 몇 달간 연재가 되었습니다. 우선은 귀한 지면을 할애해주신 부동산캐나다와 적극적으로 제안해주신 이용우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연재 중 종종 연락을 받았습니다. 글을 읽고 감동했다는 말씀, 위로가 되었다는 말씀, 힘내라는 말씀… 또한 직접 연락은 하지 않았어도 다수의 분들이 관심을 갖고 읽고 있다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확인하곤 하였습니다.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책을 만들던 과정의 어려움은 어느새 사라집니다.

 

 사실, 회원들의 삶을, 가슴 속에 담아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아픈 기억들을 소환해야만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까발려지는 부끄러움도 있었습니다. 이래도 되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속 이야기를 제대로 표현 못하는 글솜씨도 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한재범 회장님과 편집 봉사팀의 열정과 헌신, 재외동포재단의 지원 결정, 취지에 기꺼이 공감한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가 있어 출판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롤러코스트같은 삶을 경험한 우리 회원들의 이야기와 메시지가 이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분명 의미가 되고 우리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라는 확신이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이 책에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야기, 장애인 가족들의 이야기, 공동체 봉사자들의 이야기, 공동체 후원자들의 이야기로 크게 챕터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창립 후 23년간의 공동체 활동에 대해서도 직, 간접적으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글을 쓰려 하자 기억이 주는 아픔에 몇 번 지연해야만 했던 회원, 직접 쓰기 어려워 구술 후 대필된 본인의 이야기를 읽자마자 눈물을 터뜨린 회원, 깊이 묻어 둔 옛 일을 회상하다 아름다운 추억과 인연이 되살아나 행복했다는 회원, 봉사한 경험을 정리하다 보니 정작 장애 회원들로부터 위로와 봉사를 받고 있었음을 깨달았다는 고백 등등.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많은 구성원들에게 힐링의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책 “동행”에는 이 지면에 싣지 않은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 책이 한인 장애인들에게, 그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용기가 되고 격려가 되어 혹여 위축된 채 살고 있는 그들에게 사회와 일상으로의 복귀를 결심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분들에게도 이 책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우리 회원들의 담담한 고백이 작은 위로와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큰 근심 없고 평안한 분들에게도 이 책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감사의 의미를 깨닫고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부동산캐나다에 감사 전하며 이 책이 필요하고 관심 있으신 단체나 개인들은 언제든 부담없이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이 책이 많이 보급된다면 우리에게 행복이 될 것입니다.

 

 *연락처: 성인장애인공동체 416-457-6824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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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6
추석…조국과 태극기-지렁이잡이꾼의 일기

(독자기고)


박순애(토론토)

 

오늘은 추석날이다. 세월과 같이 가는 것인지, 세월을 뒤따라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열심히 살아간다는 구실로 곁눈질 해볼 새도 없이 살아왔다. 고향에서는 모든 형제, 친척들이 모여 집집마다 북적대며 소중한 시간을 보낼 때다. 그러나 나는 지금 캐나다에 와있다.

 

 나는  대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이렇게 세 아이를 둔 엄마이자 열심히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남편의 아내이다. 말도 문화도 다른 타국생활은 맞벌이라는 노력에도 녹록한 생활을 선사하지 않는다.

 

나의 직업은 지렁이잡이꾼이다. 나서 자란 어릴적 풍속도 무시한 채 허우적거리며 삶이라는 길 한복판을 걷고 있다.

 

 지금 시간 저녁 7시7분, 해가 채 지지 않은 고속도로를 달려 일하러 가는 중. 지렁이잡이 올해 3년 차가 된다. 토론토 시내 여기저기를 거쳐 사람들을 태우고 주유소에 들러 트럭에 기름도 두둑하니 채웠다. 매일 그러하듯이 기사가 사준 뜨거운 커피도 하나씩 손에 들고 마시며, 7명이 각자 자리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칸칸이 달린 창문 밖을 내다보며 오늘도 지렁이 잡으러 가고 있다.
 

                                                                       ▲지렁이잡이 현장


 한참을 달려 북적거리는 고속도로 옆 멀지 않은 거리 주변에는 자그마한 도시들이 늘어서 있다. Hey’s 라고 쓴 간판도 보이고, Top이라고 적힌 간판도 보이는데, 저 멀리서부터 가슴 뭉클해지는 이 기분, 아…태극기다! 맞다. 나한테도 조국이 있잖아. 당당한 내 조국, 대한민국.

 

 늘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릿해오는 나의 친정집. 열심히 산다는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눈물 콧물 남몰래 흘려가면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이 타국에서 내 잠시 동안 엄마 잃은 고아가 되어 서럽게 살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당당하게 캐나다 국기와 함께 어깨를 겨누며 펄럭이는 내 민족의 혼을 보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간판이 SAMSUNG 이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쭈~욱 펴진다. 근데, 왜 갑자기 눈물이 주루룩 흐르는지 모르겠다. 친정아버지 얼굴을 본 듯이 너무 감격스럽다.

 

 아, 꿈에라도 가고 싶은 나의 친정. 이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나는 왜 이제서야 봤지? 이 길을 3년이나 지나쳤는데. 달리는 차 안에서 지그시 눈을 감으며 꽃피는 들판과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어우러진 내 조국에 가있는 환상을 한다.

 

너무도 아름답고 화창한 들판. 봄이면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낳고, 그 밑 마루에 수북이 떨어져 쌓인 배설물들을 호미로 긁어 삽에 담아 치우시던 친정아버지 모습도 생생히 보인다.

 

 뒷산 앞산 연분홍 진달래. 이 산 저 산 비둘기 구기구기. 뻐꾸기 뻐 뻑꾹, 빨간 모자 쓴 딱따구리 부부는 집앞 늙은 황철나무에 왕진을 와서 따따라락 두드리는 소리 요란한데.

 

 마을을 감돌며 흐르는 작은 냇가에 동네 꼬맹이들이 미꾸라지잡이 하느라 삼태기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달린다. 집집마다 언니들은 농장일로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감자를 한 바구니씩 들고 나와 냇가에서 껍질을 깎는다. 식구들의 저녁밥과 다음날 아침밥을 지을 준비를 위해서다.

 

 텃밭에서 강냉이 이삭도 따서 오사리를 벗겨 쇠가마솥에 넣는다. 강냉이 대공도 아래위를 잡고 뚝 꺾어 단물을 씹어 빨아먹고 퉤, 퉤, 찌꺼기를 뱉어낸다. 그렇게 지어진 저녁은 어둑해서야 일터에서 돌아오시는 아빠 엄마와 함께 오이랑 풋고추에 토장을 폭폭 찍어 맛나게 먹고, 엄마 팔을 베고 옛말도 듣고. 노래도 부르다가 꿈나라로 간다.

 

 나는 일찍 5살에 친엄마를 병으로 잃고 8살에 맞은 새엄마를 참 좋아했다. 도란도란 엄마 아빠, 아침밥 지으시며 나누시는 얘기 소리에 눈 비비며 깨어서는 제일 먼저 하는 일. 마당에 자리잡은 개 집에서 갓 낳은 새끼 강아지들 꺼내놓고 잘 잤어? 말 거는 것.

 

 딸그락 밥그릇 숟가락 소리와 함께 엄마의 재촉하는 아침소리 들으며 학교에 가고, 아무튼 마냥 즐겁기만 하다. 등에 맨 책가방 속 교과서들과 필통 안에 연필들 달랑대는 소리도 무시하고 숨이 목까지 차도록 뛰어도 힘들지가 않다.

 

 마을 오빠들의 공 차는 소리도 들려오고, 빈 새둥지 털려고 높다란 나무에 교복치마 입은 채로 오르다 또래들의 까르륵 놀려대며 웃는 소리에 다시 내려오는 동갑생도 보인다.

 

꽃들도, 새들도, 벌도, 나비도, 그리고… 바람도, 나무도 우리말을 한다. 먼지가 풀썩이는 길가에 무심한 발길에 채이는 조각돌들도 “에그머니나…떽 떼그르르~”  굴러가며 고향 사투리를 내어 뱉는다.

 

 벌레들도…지렁이들도…천지의 모두가 코리언이다. 파아란 하늘 위로 둥둥 떠가는 구름도 되어 보고, 짧은 날갯짓을 퍼덕이며 “껑 꺼거겅~” 외쳐대는 뒷산의 까투리도 되어 본다.

 

 덜커덕 거리는 트럭에 몸을 맡긴 채 앞으로 언제 어느 때에 다시 찾아갈지도 모르는 어릴 적 그 땅으로 미련을 그리며…부족한 잠에 휩쓸리면서도 이악하게 버텨가는 올해의 지렁이잡이에 아낌없이 깡그리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나의 육체는 햇볕 아래 놓인 눈사람마냥 지금 서서히 녹아가고 있다.

 

 가고 싶은 꿈속의 그곳으로. 잠이 들다. (2018년 9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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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5
성인장애인공동체 기획시리즈-허허! 이럴 수가 있어

 

신장수


▲신장수 씨 부자

 

 2013년 토론토대학교 2학년생, 아름다운 청년 21살, 내 아들의 뇌출혈은 우리 가족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절망 그 자체로 불행은 시작되었습니다.

 

 AVM((Arteriovenous Mal-formal- 숨은 동정맥 기형) 처음 들은 질병입니다. 수술 후 장애자가 되었고 4~5년 재활하느라 어찌 지냈는지 모르게 외롭고도 괴로운 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나무토막도 보지 못합니다. 실상 재활은 정말 길고도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이 힘든 기간 속에서도 아들이 절망할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안보이는 아픔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장기전에 들어가면 지치게 마련입니다. 무너지느냐? 버텨내느냐? 휠체어에서 지팡이로 마침내 지팡이 없이도 신체의 한 부분 장애는 남아 있으나 보행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러나 더 힘든 것은 우울증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더는 아들이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인한 우울증은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2017년 확신없이 지나치곤 했던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정녕 주님의 울타리는 강건하여 고통이 고난만이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없이는 부활이 없다는 그 믿음, 뜻대로 하심에 맡기고 보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성인장애인공동체를 만나면서 우리 가족은 또 다른 계기를 맞이했습니다. 장애인 가족 일원이 되었다는 소속감과 공동체 장애인 재활프로그램이 이루어지고 있는 섬기는 교회 재활 프로그램 참여 이후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눈빛. 다들 힘든데 누가 더 힘든지 비교하지 않아도 됩니다. 몸 아픈 사람에게는 조건 없이 잘 대해야 하듯 마음 아픈 이웃 또한 세심히 살펴주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설사 본인은 순간순간 정말 미치고 환장할 일인데도 말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겠습니까? 살아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면 누구든지 분명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결코 즐길 수가 없겠습니다. 희생이라 생각하는 순간 고맙고 편안했던 마음은 고통으로 바뀔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애인공동체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봉사자들의 얼굴에선 오히려 밝은 표정 그냥 즐거운 몸짓입니다. 부엌 설거지를 돕고 쓰레기 치우는 남자들의 모습에서도 평안함이 보입니다.

 

 내가 먼저 즐거워야 그 선한 영향력이 내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초심을 생각해 봅니다. 아들의 목숨만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그 순간들을. 사실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축제이고 축복 아니겠나요? 그런데도 때때로 아들에게 화를 내는 내 모습이 싫기만 합니다.

 

 화내고 금방 후회하지만 참 모자란 인간이란 자괴감은 나 스스로 도전장을 내밉니다.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며 모든 것을 감싸는 것…’이란 고린도전서 13장 성서의 가르침을 종종 묵상합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 장애인공동체 일원으로 활동하며 서로간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입니다. 아들이 재활프로그램 참여를 마다하지 않고 따라 함은 분명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꽤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자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도 바람과 욕심을 내려놓아야 할텐데 어렵습니다.  조금씩이라도 잘해 보렵니다. 내 아들이 속해있는 장애인공동체가 치유 중심으로 굳건하게 서길 바랍니다. 함께 걸어가며 웃으며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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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30
성인장애인공동체 기획시리즈-울다가 웃고 사는 사나이


▲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하는 아내(황옥경씨·왼쪽)와 필자


 서울시청 앞 광장 지하철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요란한 기계 소리를 들으며 김포공항을 떠났다. “얘들아, 뛰지 마라. 배 꺼질라.” 동요를 부르던 시절, 하루 한끼는 분식이어야 하고 점심 도시락은 잡곡밥이어야 했을 때였다. 나의 일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외국에서 버는 달라($)는 모국에 송금하여 외환 보유에 일조하겠다는 일말의 애국심도 있음이었다. 친구들과 친척들이 떼로 몰려와 배웅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면서도 양담배 양주 실컷 피우고 마시게 되어 좋겠다고 웃기는 그들을 뒤로 하고 우리 가족은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인 이민자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하다는 소문 때문이었는지, 한국인이 많이 다니는 C.C.M(스케이트 혹은 자전거 제작회사)에 쉽게 취직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회사가 퀘벡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실직자가 되었다. 운 좋게도 곧 자동차 부품 만드는 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밤낮 3교대 근무를 해야 했다. 밤엔 틈나는 대로 지렁이잡이도 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낯선 땅에 뿌리내리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또 해고라는 쓴 잔을 마시게 되었다. 이미 이민 선배들은 자영업에 눈을 떠 가게를 하고 있었으나 본국에서 교육공무원이었던 나는 장사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었다. 담배나 빵 우유만 팔아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과는 달리 막상 장사를 시작하고 보니 하루 16∼18시간, 1년 내내 아내와 함께 참으로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 비즈니스인 가게 운영 30여년. 그간 강도와 맞닥트려 싸우기도 했고 과로로 힘든 세월이었으나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며 커가는 모습은 우리들의 보람이었고 기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간 참으로 잘도 버티며 또순이 같이 일해왔던 아내다. 우리 가정의 수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가게 문은 닫을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빚은 늘어갔고 결국 파산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끝내 비즈니스를 움켜쥐겠다고 욕심을 부려봤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멀쩡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어 버리니 당황스럽고 허탈한 마음 가눌 수가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리도 몸이 으스러질 지경까지 뛰며 살아왔던가. 안간힘을 쓰는 아내의 모습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가엾기 그지없었다. 발병 6개월이 지나니 집도 절도 없이 길에 나앉을 수밖에 없게 되었을 무렵 다행히도 장애인 노인아파트가 나와 눈 비는 피하게 되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하는 아내는 울음으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람만 봐도 울고 얼굴만 마주쳐도 서러움에 북받쳐 흑흑 울기만 했다.

 

 이때 우리 앞에 다가온 희망의 끈은 ‘성인장애인공동체’였다. 주위분들의 염려와 보살핌으로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찾는 듯싶었다. 정기적으로 여러가지 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한데 어울려 애환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면서 생기는 소속감은 나나 아내에게 큰 위로와 살아갈 힘을 주었다.

 

 프로그램의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야외활동은 건강했을 때도 누리지 못했던 호사나 다름없다. 봄, 가을 소풍과 장애인 여름캠프가 그렇다. 특히 여름캠프 때는 장애인 일대일 전담 도우미가 있어 가족들을 캠프기간 만이라도 해방해주는 배려와 사랑에 나도 모르는 사이 코끝이 찡해 오면서 감동의 눈물을 감출 수가 없다.

 

 해마다 열리는 모금행사 또는 창립기념 행사엔 우리 손으로 무대를 꾸미고 봉사자들은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께 대접하는 모습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22년이란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동체활동은 날이 갈수록 우리 동포사회의 따듯한 관심과 도움으로 우리 같은 수혜자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으니 그지없이 고맙기만 하다.

 

 우리가 공동체 회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내 아내는 박정애 중의사님으로부터 꾸준히 침술치료를 받고 있다. 따뜻한 공동체 가족들의 사랑과 보살핌은 내 아내가 웃음을 되찾게 해주었다. 그림 그리기, 하모니카, 스마트폰, ESL 클래스, 상담, 난타 그리고 연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우리들의 취미생활과 내적 치유에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즐거운 시간은 애찬을 나누는 점심시간이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내는 ‘장금이 봉사팀’ 5, 6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식탁 준비를 하는 많은 봉사자, 이 분들은 곧 장애인과 가족 모든 운영팀들을 한데 묶어주는 일등 공신이란 생각을 한다.

 

 정기적인 ‘파크 골프’와 야외활동은 장애인이나 가족이나 우리 모두 함께 즐길 수 있어 빠트릴 수 없는 귀중한 생활스포츠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준다. 아직도 장애를 입은 몸으로 혼자 고민하고 집안에 갇혀 있는 개인이나 가족이 있다면 우리와 함께 어울려 보지 않겠느냐고 권하고 싶다. “용기를 내십시오. 힘든 일을 함께 나누면 가벼워지지 않겠습니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보장할 수 없는 예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장애로 북받치는 설움을 참고 마음대로 울 수도 없었던 내가 이제는 웃으며 살아가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성인장애인공동체 덕분이라면 누가 믿어 주시려나?

 

 “게 누구 없소. 울다가 웃고 사는 사나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지 않겠소?”

 이제는 울기보다는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도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간다. 공동체 입학한 지 10여 년이 된 이 사나이의 넋두리를 들어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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