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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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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출신인 나는 서울에서 대학에 다닐 때나 졸업 후 군대에 갔을 때나 종종 대전 고향집에 들르면 홀로 계신 어머님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 막내아들을 위해 이것 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시는 등, 지극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셨다. 그런데  방학이나 휴가를 마치고 다시 집을 나설 때면 어머님은 언제나 버선발로 나오셔서 버스에 오르는 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시곤 했다. 

 

 

 

 


 언젠가 내가 군에 입대하던 날, 어머님은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오셔서 멀어져 가는 아들을 향해 언제까지고 쓸쓸히 손을 흔드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어머님은 내 앞에서는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으나, 애지중지 키운 막내아들이 서서히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속으로 얼마나 가슴이 메이셨을까. 어머님은 아마 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혼자서 오래토록 바라보고 계시다가 돌아서서 이내 눈물을 훔치셨을 것이다. 


 어떤 면에선, 내가 아무 미련 없이 훌쩍 조국을 등지고 이민을 떠나올 수 있었던 것도 떠나는 나의 뒷모습에 눈물 흘릴 어머님이 안 계시다는, 일종의 허허로움이 한몫 작용했던 것 같다. 어머니가 홀로 계셨더라면 그렇게 야멸차게 떠나올 수 있었을까… 그런 면에서 나의 주변에 어머님을 홀로 남겨놓고 이민 온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한 강심장을 가지신 분들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가끔 해본다.        


 지금부터 17년 전, 당시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외국으로 떠난다며 아스라히 멀어져가는 막내딸과 철없는 어린 외손녀들의 천진난만한 뒷모습을 지켜보시며 손을 흔드시던 장모님의 속마음은 또 어떠하셨을까. 그때 우리는 서로가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어서 먼저 가라며 손을 흔들던 기억이 선하다. 그 한 옆에선 나의 둘도 없는 친구가 공항 탑승구를 빠져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넋나간듯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혼자서 발길을 돌리던 친구의 뒷모습은 또 얼마나 허전했을까.    


0…사람의 뒷모습은 대체로 쓸쓸하고 가슴 아린 기억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늙으신 어머님의 가녀린 뒷모습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사위어간 세월의 서글픈 간극(間隙)을, 허리가 구부정한 아버님의 뒷모습에선 가장(家長)으로서 책무에 짓눌려 사느라 잃어버린 청춘의 허무함을 엿본다. 강단에서 열기를 내뿜던 노 교수도, 천하를 호령하던 장군도, 권력을 주무르던 사람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 무대에서 내려와 홀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쓸쓸하게만 보인다.     


 “누구에게나 뒷모습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감추거나 꾸밀 수 없는 참다운 모습이다. 그 순간의 삶이 뒷모습에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볼 때, 내 앞에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면 내 발걸음도 경쾌해진다. 뒷모습이 쓸쓸한 사람을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도 울적해진다. 얼굴이나 표정뿐만 아니라 뒷모습에도 넉넉한 여유를 간직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면 이 세상은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지 않겠는가.” (작가 노은의 ‘여백 가득히 사랑을’ 중에서)


 사람의 진실함은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더 짙게 풍긴다. 앞모습은 아무래도 남을 의식해서 꾸밀 수밖에 없지만, 뒷모습은 꾸밀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람의 뒷모습에는 앞모습보다 더 강한 표정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서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그 진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사람의 앞모습은 당당하고 의젓해도 뒷모습에선 왠지 허전함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것은 그만큼 인간이 고독하고 약한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위세당당했던 사람도 뒷모습은 초라하게 비쳐지는 때가 많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을 아는 법이다. 한 사람이 차지하는 공간의 범위와 정신의 무게는 그가 떠나간 뒤에 확연히 다가온다. 앞모습은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할 수 있지만,  뒷모습은 그 사람의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습관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길,  앞모습도 아름다워야겠지만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그리고 뒷모습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진실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중년의 사랑, 그리고 행복’ 카페 중)


0…나는 5년여 전, 이 지면을 통해 같은 제목(‘뒷모습’)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정부 교체기를 앞두고 전직 대통령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기대한다는 취지였다. 최고 권력자라도 현직을 떠나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여전히 아름답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한 사람도 아닌,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은 초라하고 누추하기 그지 없는 뒷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누가 떠난 뒤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법인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만인 앞에서 등을 돌리고 초라한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 모두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하자. 내가 잘 나가고 교만하다고 생각될 때, 가끔은 자신의 뒷모습도 살펴볼 일이다. 앞보다는 뒤에서 박수를 받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물소리에게도 뒷모습이 있을까?/시드는 노루발풀꽃, 솔바람소리, 찌르레기 울음소리에게도 뒷모습은 있을까?//저기 저 가문비나무 윤노리나무 사이/산길을 내려가는 야윈 슬픔의 어깨가/희고도 푸르다.’ <나태주 시인 ‘뒷모습’>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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