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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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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최영미 시 ‘괴물’)

 

 

 

 


 한국의 유명한 여류시인(요즘은 이런말 잘 안쓴다)이 문단내 ‘거짓영웅’을 풍자하는 시를 발표해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로 유명한 이 시인이 2017년 문예 계간지 겨울호에 발표한 이 시의 당사자로 지목된 원로시인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분. 그는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밝혔다. 


 솔직히 처음에 위 시를 읽고 느낀 점은,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나 하는 것이었다. 주제도 주제이지만 명색이 시(詩)인데 표현의 경박스러움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녀(이런 말도 요즘엔 잘 안쓴다. 그냥 ‘그’라고…)가 만약 무명시인이었다면 이런 글은 그냥 무시당하고 지나갔을지 모른다. ‘En선생’의 잘잘못을 떠나 왜 이런 글이 나왔을까…


0…2017년 10월 5일, 미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 66)이 수십년에 걸쳐 여러 건의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보도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와인스틴이 30여년 전부터 배우, 영화사 직원, 모델 가리지 않고 성희롱과 추행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보도 직후부터 그와 관련된 성폭행, 추행 증언이 줄줄이 이어져 순식간에 50명을 넘어 무려 100명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즈음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에서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한 사람은 ‘나도 피해자였다’는 의미의 ‘미투(#Metoo)’라는 해시태그(SNS에서 검색이 쉽도록 단어 앞에 #을 붙이는 것)를 달자고 제안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미투’ 캠페인이 시작됐다.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레이디 가가 등 유명연예인들이 잇따라 캠페인에 동참하며 급속도로 확산됐고 캠페인을 촉발시킨 와인스타인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의 추잡한 행위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미투’ 캠페인은 미 영화계를 넘어 전세계로 확산됐고 유명인사들(남성)이 줄줄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런 분야에선 절대로 뒤지지 않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마침내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검찰 내부에서까지 핵폭탄급 증언이 터지기 시작했다. 연예, 스포츠계 등 다른 예는 들 필요도 없다. 현직 여자검사가 상관인 남자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면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런 사람들이 과연  사회정의를 외칠 자격이나 있는지.  

      
0…그동안 성폭력 경험은 금기의 주제였다. 오히려 피해자가 손가락질당하기 일쑤였고 그래서 쉬쉬하며 넘어갔다. 뭍한 여성들이 성희롱과 폭행의 대상이 돼왔지만 공개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홀로 상처를 치유해오던 성폭력 희생자들이 이제 공개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증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만약 이런 캠페인이 1년만 일찍 시작됐더라면 도널드 트럼프 같은 저질인간이 미국 대통령에 오르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기간, 그로부터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들이 줄줄이 나타났지만 모두가 “꾸며낸 거짓말”이라며 일축했다. 또한 (백인)지지자들은 “그동안 조용하다 왜 이제야 나타나 그러느냐”며 사실을 폭로한 여성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사회나 직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행된 성추행과 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말할 수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 이젠 정말 바뀔 때가 됐다. ‘미투’ 캠페인이 성폭력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말하기 어려운 사안들을 과감히 말하는 계기로 발전하면 좋겠다. 인종이나 성별, 사회적 위치 등으로 인간이 불평등을 받아야 하는 시대는 지나고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계속 '미투' 처럼 용기를 갖고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0…다만, 좋은 의미로 출발한 일도 과하면 부작용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즉, ‘미투’ 운동이 자칫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선 안되겠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례를 보면 수많은 악질 가해자들이 있는 반면, 다분히 동정이 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특히 성적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순간 해당 남성은 인생 자체가 망가지고 말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수주일 전만 해도 잘나가던 패트릭 브라운 전 온주보수당 대표가 그런 예다.


 브라운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두 여성은 10년 전, 6년 전에 있었던 일을 폭로했는데, 그 시점이 묘하다. 사실여부도 불명확하다. 온주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터진 대형 폭탄에 브라운은 사임하고 말았다. 보수당은 이번에 집권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데, 그야말로 ‘미투’ 한방에 모든 인생이 뒤틀어지고 말았다.   


 만에 하나 성폭행 주장이 상대방을 음해할 목적으로 그런다면 용납이 안될 뿐더러 정작 진정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까지도 오해를 사게 할 중대한 범죄행위다. 미국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는 최근 32년 전에 고용했던 여성이 성추행 소송을 준비중이라는 소식에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면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투’의 취지는 좋지만 이것이 너무 이슈화되다 보면 사람간의 정(情)도 서먹해질 우려가 있다. 특히 정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은 자연스런 신체접촉을 별 죄의식 없이 해왔는데 이제부터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미투'만 외치면 앞뒤 상황도 안보고 모든 걸 믿어버리는 사회분위기 탓에 상대는 변호도 못하고 가해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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