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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友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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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한국 뉴스를 보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요즘 한창 시끄러운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치 개입 사건으로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검찰에 엮여들어가는 상황인데, 화면에 나의 눈에 익은 모습이 비쳤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분명히 그 친구였다. 대학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급우들 중 한 명! “아니, 저럴 수가! 저 친구가 왜?” 나는 한동안 몹시 혼란스러웠다. 저 친구는 저럴 사람이 아닌데… 


0…그 친구는 나와 같은 과(科)에서 만났다.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와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를 비롯해 대여섯 명이 죽이 맞아 어울려 다녔다. 운동도 함께 하고 커피도 마시고, 때론 막걸리 잔도 기울이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들 중에도 그는 선이 굵고 리더십이 뛰어났다. 특히 의리가 강해서 친구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제일 먼저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70년대 말 당시는 정국이 극도로 혼미하던 때여서 우리는 학교가 열린 날보다 닫힌 날이 더 많은 세월 속에 허구한날 데모만 하느라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우리는 데모로 땀을 흠뻑 흘린 후 학교 앞 선술집에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울분을 토하곤 했다.   


 그런 와중에도 세월은 흘러 어찌어찌 졸업들을 하게 됐고 사회생활의 진로도 각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했고 나중에 정치학 박사학위까지 땄다. 나는 그때 뒤늦은 군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을 통해 그 친구가 모 기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그가 왜 그런 기관에 들어갔나 의아했지만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거니 하면서 이해를 하려 했고, 우리 친구들은 졸업후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다 나는 이민을 왔고, 몇 년 전 한국에 나갔을 때 그 친구는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들과의 저녁모임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미 1차 자리가 끝나고 장소를 옮겨 2차를 들고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밤 12시가 다 돼서야 퇴근하고 온 친구는 무척 피곤했을텐데도 내색을 않고 새벽녘까지 나와 자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그는 이미 듬직한 중견 공직자의 자세가 몸에 밴 것 같았다. 


 그 친구는 다음날 자기가 근무하는 기관으로 나를 안내해 담소를 나누는데, 공직자로서가 아니라 옛친구로 대할 땐 “야, 자!” 하며 장난스럽던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내가 캐나다로 돌아와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차에 최근들어 정부가 바뀌면서 그러잖아도 그쪽 사람들이 바람 좀 타겠구나 했는데, 역시 결말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 친구는 그 기관에서 26년간 일하다 두어해 전 지방자치단체 산하 단체장으로 임명받았었다.   


0…나와 친구들이 기억하는 그 친구는 강직하고 진정으로 조직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공무원은 흔히 영혼이 없는 사람이라 한다. 공직자로서 자기 주관대로 행동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따를 뿐이다. 정말 나쁜 사람은 그런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 나는 그 친구가 그런 악의적인 처신을 했다고 믿지 않는다. 


 원래 ‘영혼 없는 공무원’ 얘기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의 저 유명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그 출처다. 그는 여기서 “관료제는 개인감정을 갖지 않는다. 관료의 권위가 영혼(Spirit) 없는 전문가와 감정(Heart) 없는 쾌락주의자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즉, 공직자로서 자기 철학과 소신이 없는 관료들을 지적한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 말을 공무원들이 어느 정권이든그 철학에 맞게 공복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고 있으나 실은 그것이 아니다. 


 아무튼, 학창시절 그렇게 정의감에 불타고 원리 원칙을 중시하던 친구였지만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때론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싫으면 떠날 수밖에 없는데, 처자식을 생각하면 그럴 수만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세상 누가 뭐래도 그는 진정 나의 변함없는 친구다.          

 

 


0…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모습이 언론 등에 비칠 때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어떤 친구는 잘 풀려 아직도 고위직에 머물러 있는가 하면, 어느 친구는 인생이 꼬여 초라하게 움츠러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세속적 성공 여부를 떠나 친구는 친구일 뿐이다. 아무 조건 없이 순수하고 아름답던 우정의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힘든 삶에 용기와 격려가 된다.   


 자고로 사나이는 함부로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되며, 일생에 딱 세번만 울어야 한다 했다. 태어날 때,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 그러나 사나이가 눈물 흘릴 때가 또 있으니, 가장 친했던 친구가 험난한 길에 빠졌을 때가 아닌가 한다. 세상 살면서 나를 위해 진정으로 울어줄 친구는 과연 누구일까. 그런 친구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삶은 행복하다 할 것이다. 


 ‘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밀려와도/마음을 가다듬고 가슴을 펴다오/추운 겨울이 오면 봄이 가깝다오/검은 구름 위에도 태양이 빛난다오/우리들의 우정을 깊이 간직하자/행운을 빌며 안녕 친구여 안녕’ -이숙 ‘우정’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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