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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한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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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禹倬)의 ‘탄로가(歎盧歌)’ 

 


 서울 종로에 있는 출판사에 근무하던 시절, 점심을 먹고 파고다공원 주변을 산책하노라면 머리가 하얀 노인들 수십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얘기를 하다 서로 의견이 안 맞으면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을 하는 풍경도 종종 목격됐다. 한창 젊던 시절, 그런 광경을 보면 ‘저 분들은 대체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실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몇년 전 서울에 가서 보니 여전히 그때 정경이 남아 있었다.    

 

 

 


 이민 와서 살아보니 그런 모습이 이곳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전통적 한인거리인 블루어 등지에 가면 한인노인들이 커피점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쉽게 만난다. 최근들어 한인밀집지역으로 정착된 노스욕의 쇼핑몰 푸드코트는 한인노인들의 만남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곳에서 매일 한인노인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더니 마침내 제2의 한인노인회가 탄생하기도 했다.


0…토론토한인사회에는 수 많은 단체와 친목모임이 있다. 스포츠 동호회, 학교 동창회, 향우회, 전우회, 봉사단체 등등… 그 중에는 노인관련 단체도 꽤 많다. 블루어 한국노인회, 노스욕 한카노인회, 한카치매협회, 아리랑시니어센터, 캐슬뷰양로원 후원회, 시니어골프협회, 노년건강연구회, 노년볼링협회… 최근들어선 무궁화요양원 회생 문제가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요즘 토론토한인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모금운동의 상당수가 노인 관련 행사다. 무궁화요양원 인수를 위한 모금운동, 한카치매협회 후원행사, 한국노인회 워커톤 등… 얼핏 보면 한인사회엔 웬 노인행사가 그리 많으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인사회는 자꾸만 늙어가는 것이다. 


 이민사회는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지만 동포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은 거의 없고 함께 어울릴 공간도 태부족이다. 이런 차제에 지금 한인사회에서는 무궁화요양원 인수를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자금부족으로 인해 타민족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한 노인요양원을 한인들이 힘을 합해 우리 것으로 만들자는 취지이다. 


 이 캠페인에 대형 한인교회들이 앞장서고 뜻있는 독지가들도 힘을 보태고 있어 탄력을 받고 있다. 이 모금운동은 특히 의사, 변호사 등 동포 1.5세 전문인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캠페인을 펼치는 모습이 보기에 참 든든하고 훈훈하다. 이제는 이들이 나설 차례가 된 것이다. 


 그러나 350만 달러의 거액이 필요한지라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분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일각에서는 이 요양원이 지금처럼 매각위기까지 온 것은 초기 설립추진위원회의 부실한 행정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누구의 책임론을 거론한들 의미가 없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우려의 시각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 놓치면 다시는 잡기가 어려울 것이다.     


 동포들이 힘을 모아 빌딩도 사들이고 골프장을 매입하는 것도 좋지만 동포사회, 특히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해 번듯한 요양시설 한곳 정도를 마련할 수 있다면 자손 대대로 큰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한인노인들이 물설고 낯설은 이국땅에서 편안한 한국말로 보살핌을 받으며 말년을 보낼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블루어 한국노인회에서도 회관운영비 마련을 위한 연례 워커톤대회를 오는 30일(토) 크리스티 공원에서 개최한다. 이 행사는 한때 한인사회의 대표적 모금운동으로 각계의 따뜻한 손길이 줄을 이었으나 언젠가부터 시들해졌다. 소규모 자영업자 등 일반 동포들이 동참함으로써 ‘개미군단’의 위력을 발휘했었지만 회관 건물이 완공된 후에는 관심이 줄어들었다. 


0…수년 전 미국 뉴욕에서는 한인타운에 위치한 맥도날드가 장시간 머무는 한인노인들과 갈등을 빚는 일이 발생했다. 한인노인들이 값싼 음식을 하나 시킨 뒤 하루종일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장사가 안 된다며 경찰을 불러 노인들을 내쫓았다. 이에 현지 한인사회는 “명백한 인종차별이자 노인차별”이라며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이민사회의 노인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무엇이 노인들을 새벽부터 맥도날드로 몰리게 하는가.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자식을 길러내고 겨우 살만해진 지금, 얼굴엔 주름만 가득하고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다. 한국처럼 무료 전철이라도 타면 어디든 떠날텐데 그것도 아니다. 돈도 없고 마땅히 시간 보낼 곳도 없으니 맥도날드에 모여 담소하는게 유일한 낙(樂)인 노인들…


 이런 일은 토론토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노령인구는 계속해서 늘고, 갈곳 없는 노인들이 박대를 당하는 일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들에 대한 노후의 삶 문제를 전체 동포사회 차원에서 심각히 고민해봐야 할 때다. 


 늙는 것은 서럽거니와 낯선 땅에서 그나마 이 정도의 기반을 닦아놓은 우리의 1세대, 한인노인들을 위해 마음 편히 대화라도 나눌 공간을 마련해드리는 것이 우리들의 도리가 아닐까. 아무리 타국생활을 오래 해도 역시 동족끼리 만나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마음 편한 것이다.  


 기부는 꼭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늘 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전체 한인사회로 참여의식이 확산돼야 할 것이다. 노후문제는 곧 우리들 모두의 문제이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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