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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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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남석(오른쪽)씨가 중풍 장애인 박조웅씨가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동안 마이크를 들어주고 서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의미의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있다. 모든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항상 낮은 데로 임하는 물의 덕(德)을 일컬음이다…/물처럼 살다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처럼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을 듯싶다…”(본보 2013년 2월 22일 <박남석 수상> 중)


 신문사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출판기념회를 다녀보지만 지난 주에 참석한 행사는 조금 색다른, 그러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자리였다. 본보에 꾸준히 글을 쓰고 계신 박남석(69) 선생의 수상집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출판기념회가 지난 30일(금) 오후 한식당에서 열렸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12년간 본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신문 등에 게재해온 글들을 한데 묶어 펴낸 것이다. 


 이날의 출판기념회는 우선 행사장의 분위기가 문인협회 등 기성단체와는 달리 매우 소박했다. 먼저 사회자가 70여 명의 참석자를 일일이 소개하는데, 아무 직함 없이 그저 각자의 이름만 불러서 인사를 드리게 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저자와 가까운 친지들인 것 같았고, 그 흔한 무슨무슨 한인단체장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식순이라곤 참석자 소개와 간단한 축사, 저자의 인사말, 축하연주(하모니카)에 이은 식사 제공이 전부였다. 나는 저자와의 인연 때문인지 엉겁결에 불려서 축사를 하는 영광을 안았는데, 분위기로 보아 거창한 수식어가 필요 없을 듯했다. 그냥 2분여의 간단한 축하인사로 끝냈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참가비를 받지 않았다. 저자는 한국에서 책을 만들어 오는 데만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을텐데 이날 참석자 전원의 식사비(최소한 2천여불)까지 부담하니, 빈손으로 간 나는 얼마나 미안한지 밥이 제대로 넘어가질 않았다. 아내는 사전에 꽃이라도 사가자고 했는데 신문사 일이 끝나자마자 허둥지둥 달려가다 보니 깜빡 잊었다.    

   
 저자는 이날 자신의 책에 일일이 참석자의 이름을 한자(漢字)로 적고 흰봉투에 넣어 건네 주었다. 이름을 한자로 써주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있다는 의미로, 보통 성의로는 쉽지 않은 일일 터이다. 


 박 선생은 언제나 잔잔한 인상에 인품이 무척 겸손한 나머지 말소리도 귀를 가까이 대지 않으면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조용조용히 말씀하신다. 그 분은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는, 잔잔한 호수를 연상케 한다. 그 분은 아마 글과 일상생활이 일치되는 몇 안되는 분 가운데 한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신문에서는 다른 필자들처럼 ‘수필’이나 ‘칼럼’이란 타이틀을 달지 않고 ‘박남석 수상(隨想)’이란 소제(小題)를 붙이는데 그것은 조용히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문장의 흐름이 무언가를 차분히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박 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갖 이민 와 H일보에서 일할 때였다. 어느해 설날로 기억되는데 먹음직한 떡(인절미)을 소반에 푸짐하게 들고 오셨다. 동포들을 위해 신문 만드느라 수고가 많다며 어머니가 만드신 떡인데 직원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하셨다. 그때의 인절미 맛이 지금도 선하다. 그때가 13년 전이었으니 어머니도 그때는 82세로 무척 정정하셨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이지만 세월이 흘러 이날 아들의 출판기념회 행사장에서 손을 잡으며 인사를 드리니 어머니는 그저 “고맙다”며 고개만 끄덕이셨다. 그래도 내 손을 잡으신 손아귀 힘은 매우 강건하셔서 다행으로 여겼다.        


 박 선생은 위의 인용문에도 나타나 있듯, 언제나 잔잔히 흐르는 샘물 같다. 그는 특히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하다. 휠체어에 어머니를 태우고 매년 가을 한인회의 평화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효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어머니가 올해 95세가 되신다. 저자는 이날 출판기념회에서도 어머님께 모든 공을 돌렸다. 남들은 자식이 비뚤게 나가면 부정적인 언사를 쓰며 혼을 내지만 어머니는 꼭 “ 이 사람 될 놈아” 하셨다며 노모를 돌아보았다. 


 그의 효심은 책 서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네 콩 내 콩이 서로 크다고 하여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인 어머니는 우리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먹이며 살아오신 분입니다. 어머니는 하늘이고 땅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인 어머니는 당신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한곬 어머니로 살면서 깨달은 지혜와 윤리로, 맑은 마음과 밝은 이성으로 우리를 이 세상에 바로 서게 해주신 분이셨습니다. 오늘의 기쁨을 어머님께 안겨드립니다.”        

 
 박 선생은 광주 전남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ROTC 7기로 임관해 육군 대위로 예편했다. 1974년 캐나다에 온 한인사회 초창기 이민자 중 한 분이지만 41년의 이민생활을 하는 동안 그저 조용히 묵묵히 한구석에서 동포사회를 지켜보아 왔다. 그 흔한 단체장도 한번 맡지 않았다.  


 그는 이날 행사에서도 얼굴이 알려진 성악가나 악기 연주자가 아닌, 중풍 장애인 박조웅 씨의 애잔한 하모니카 연주로 축가를 대신했다. 그는 박씨의 하모니카 연주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마이크를 들어 주었다(사진). 그가 굳이 장애인을 축가연주자로 택한 것도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 차원이 아니겠는가.  

       
 이날 출판기념회는 조졸했지만 의미는 매우 큰 행사였다. 앞으로 동포사회에서는 화려한 외양이나 형식 위주로 흐르는, 특히 참석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출판기념회 행사를 지양하고 이런 내실을 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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