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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수필 쓰듯이
yeodongwon

 

 여행을 수필 쓰듯이 하면 어떨까? 백지 위에 붓이 가듯 지도 위에 발이 가는… 무엇을 먹을까? 어디에서 잘까? 무엇을 구경할까? 쫓김 없이 허둥대지 않는, 시간표 없는 여정(旅程). 배고프면 먹고, 어두워지면 자고, 보이는 것을 보는, 마치 쓰려는 수필이 아닌 쓰이는 수필처럼, 보려는 여행이 아닌 보이는 여행, 참으로 해볼 만하지 않은가.


 산마루에 걸린 흰구름이 한가히 쉬어가듯 로키 산허리를 느릿느릿 구렁이 담 넘듯 굽어 돌아가는 기차에 몸 실리어 넘어 가는데 노을에 물든 산 풍경이 절경이로구나. 신선이 따로 있나 바로 이게 신선놀음인 것을. 이 심경 아까워 붓을 든다.


 피천득 님은 '수필은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이라 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분명 수필 같은 여행을 하고 있음이다. 오솔길을 한가로이 산책하듯 맘 풀어서 유유히 흘러가고 있음이다. 붓끝에 맘 실어 수필을 쓰듯 발길에 마음 실어서 여행을 하고 있음이다.


 겨우 만 이례를 몇 삼 년 떠나올 것처럼 수선을 떨며 가는 날과 오는 날만 잡고 과정의 시나리오는 여정(旅程)의 기분에 맡긴 채 서둘러 서부행 비행기를 타고 에드먼튼 글벗 유인형 형 집에서 하루를 묵고 기차 편으로 로키산맥을 넘어 밴쿠버로 가고 있다.


 가게 계산대 뒤 사방 석자 좁은 일터에서 비 오는 날에도 눈 오는 날에도 공치는 날이 없는, 삶의 높낮음도 흔들림도 없는 쳇바퀴 돌리는 것 쯤엔 이골을 익혀 탈없이 잘 나가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발작이 나면 출구를 찾아야 한다. 사는 곳을 탈출하는 것이다. 


 시계추 생활 사이클에 쿠데타 같은 진동을 주면 약발은 신선한 희열로 온다. 자주 하면 자극성의 효과는 반감되어 어지간한 곳은 싱거워 가나마나가 된다.


 이렇게 가끔의 나들이는 막힌 숨통이 뚫리는 청량제가 된다. 아이 마음 되어 껑충껑충 뛰고 싶어진다. 어디서 어떻게 지낼 것인가는 별 중요하지가 않다. 우선 공항으로 가는 맘부터가 풍선처럼 붕 떠버려 세상이 동전만해진다. 왕이 된 기분이 이런 것일 거다.


 이웃동네도 아닌 캐나다 서부 끝 동네 밴쿠버까지 갔다 오는 먼 나들이를 꼭 가야 할 동기도 없이 이웃 마실 가듯 길을 떠나는 내가 생각해봐도 싱겁다. 그쪽에만 별난 것이 있을까 마는 여행은 멀수록 좋다. 그만큼 신비감을 더하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수필을 쓸 때 평범함을 평범한 채로 두지 않고 그것을 달나라쯤 멀리 두고 엉뚱한 상상을 해보는 것처럼 이쪽 빅맥과 똑같은 빅맥을 먹으면서도 여정(旅程)에 의해 맛이 달라져 버리는 묘한 기분, 그래서 가능하면 멀리 그리고 엉뚱한 곳일수록 좋다.


 수필이 소재보다 그 소재 속을 산책하면 느끼는 맘의 움직임을 귀히 여기는 것처럼 여행은 가는 곳마다의 길목들, 그 산길, 그 물길, 그 골목길, 그 밥집, 그 여인숙, 그 만남과 헤어짐의 인연들에서 느끼는 산뜻한 과정의 기분이 보배다.


 그래서 수필이 논문 조나 연설 조나 설교처럼 딱딱하지가 않고 부드러움이 생명이듯 여행은 모름지기 편한 신발, 편한 차림, 편한 마음으로 여유와 낭만으로 할 일이다.


 버스, 비행기, 식당, 호텔, 쇼핑에다 너무 많은 관심과 시간과 돈을 써버리고 진작 볼거리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사진 몇 장으로 스쳐 지나버리는 여행,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 규율과 시간에 얽매인 군대 행군이다. 깃발을 앞세워 떼지어 따라가는 유치원생 같은 일본식 관광이다. 스케줄 시간표에 얽매인 느끼는 여정(旅程)의 즐거움을 무시해 버린 여행이다.


 산을 만나면 산을 오르고 물을 만나면 물놀이를 하고 귀족풍에 젖고 싶으면 우아한 식당에도 들어가 보고 허기지면 핫도그로 끼니를 때우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물 흐르듯 마음 가는 대로 맡길 일이다. 더 보고 싶으면 마냥 쳐다보고 좋은 길벗 만나거든 격의 없이 마음 열어 사귀어도 볼일이다. 하긴 나그네끼리 만나면 쉽게 정을 주는 위험 또한 많으니 조심할 일이고.


 사람들은 인생을 연극에 비유한다. 나는 그 비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서 죽는 날까지의 여정(旅程)이 오히려 수필적이다. 정처 없이 걸어가는 나그넷길, 미리 울겠다는 미리 웃겠다는, 어디에서 누굴 만난다는 예정된 연기가 아니라 길을 걸어가다 만나지는 인연과 사건들의 연속적 과정이 일생이다. 그 우연의 상황에서 그때마다 내 식대로의 느낌과 판단 때문에 일생이라는 이력서가 수필처럼 쓰이는 것이리라.


 그래서 일생은 이런 무 각본 무 시나리오의 여정(旅程)의 오솔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자연과 사건들에 얽혀 걸어가는 수필적 산책의 과정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좋은 소설은 이야기 재미에 빠져 밤 가는 줄 모르고 좋은 시는 심금에 와닿아 감동하듯 좋은 수필은 좋은 말벗을 만나 대화를 하는 듯한 흐뭇함에 빠진다.


 그렇다. 좋은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되 질서가 있고, 무형식 같으나 가락이 있고 산만한 듯하나 논리가 있고 굽이마다 해학과 위트가 넘실거린다. 물 흐르듯 순리가 있고 정과 사랑이라는 정서의 흐름이 있고 냉철한 비판과 진실의 고민이 있다. 자기반성의 아픔이 있고 발가벗는 고백이 있다.


 이러한 좋은 수필처럼 내 일생이라는 이력서가 삶의 여정(旅程)에서 만나 관계 지어지는 모든 인연과 함께 부드러움으로 걸어가는 내용으로 쓰일 수 있다면 종착역에서 내가 맛볼 보람은 얼마나 흐뭇할까? 마치 긴 여정을 끝내고 제집에 돌아왔을 때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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