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지도 속의 이름들은
누가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누워 잠을 잔다.
알지 못하는 이름이기에
낮은 목소리로 부르면
강은 강으로 흐르고
산은 산으로 솟아오르지만
도시는 침묵을 지킨다.
사는 사람 한둘이 아니어도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등 돌리고 안으로 걸어간다.
걸을수록 어둠에 묻히는 길
어차피 같은 도시에 살아도
서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기에
지도는 낯선 이름만 가득 찬
종이 한 장이지만
지도 위에 서면 세상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는 곳이 된다.
어차피 모르는 길 물어야 하고
사람이 피해야 할 것 사람이지만
사람이 만나야 할 것 사람이다
지도 속의 길은 걸어야 보인다
길이 험하다 쉽다 말하는 것 어리석지만
멀고 가까운 것 큰 차이 있는가
단지 걸은 것과 걷지 않은 차이 
같은 방향으로 걷는지 몰라도
앞서 가는 이의 발길을 쫓아
지도 속으로 들어간다.
벌써 등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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