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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새해 아침
namsukpark

 
 
 2018년은 육십간지(六十干支)에서 35번째인 무술(戊戌). 용맹하고 충성심이 강하며 의로운 개띠 해다. “시작은 우연일는지도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필연이더라. 스스로 정당화하자면 지금은 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이루고저 하시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새로워지는 나날이 보람과 함께하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우리나라 동화에는 개미와 배짱이가 등장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격언에 “겨울이 우리에게 되묻는 일이 있으리라~. 여름에 무얼 했느냐”고 묻는다. 삶이란 늘 새로운 걱정거리를 안고 불러들이기도 한다. 처지에 따라서 말과 표현방법은 다를지언정 평양감사도 싫으면 그만이라지 않는가.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와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힘들었던 과정들이 한순간에 잊히는 순간을 맛보게 될 터다.  


 다양한 발전과 방향을 개진해볼 수 있는 폭넓은 상상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른 입술에 붙여두고 쓰는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단, 무언가를 말하고도 싶겠지만 아껴두는 편이 훨씬 나을 경우도 없진 않을 테다.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이 스르르 녹아 목젖을 적시는데 초콜릿 하나를 주저 없이 덥석 먹은 것에 건강을 들먹이며 호들갑을 떨 필요까지는 없겠다. 착각은 자유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옹고집을 부리고도 아니면 말고 먼 산 보듯이 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눈 밖에 난 대접받을 텐데 딱하기도 하다. 


 한반도 ‘디커플링(decoupling•분리)’ 논의가 심심찮다는 뉴스다. 대화나 협상,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렵고 군사행동 또한 부수적 피해가 클 뿐 아니라 필사적으로 반대하니, 아예 한국과 미국의 안보 연계를 분리•차단하자는 게 전략의 골자라 한다. 요컨대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미국 안보를 지켜내는 데 초점을 맞춘 셈이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돌아볼 때 그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는 점이 최근 워싱턴 일각의 논의를 지켜보는 언론안 안목에는 불길하게 느껴질 따름이라고 한다. 


 끝없는 욕심과 탐욕. 종교가 가장 멀리해야 할 덕목을 가장 가까이에 두었던 부패한 종교는 시대를 불문하는 것만 같다. “슬프고도 비극적인 사건” “세습에 대한 욕망, 절박함. 여기에 더해진 자신만의 확신.” 일반 교인에게 3대 중심은 하나님과 교회와 담임목사… 담임목사의 뜻은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궤변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그들만의 주장과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하는 그 무엇이 오죽하면 교회 세습 금지를 교회 헌법으로까지 정했을까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였던 리처드 핼버슨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대형교회의 목회자 세습을 비판하는 교인들은 주저함이 없이 “교회는 한국으로 와서는 공룡기업이 되었다”고 목소릴 높인다. 종교개혁 500년 만에 또다시 개혁바람이 인다면 그것은 바로 한반도이지 않을까 한다는데… 치우친 심사를 뉘라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처지는 아닌 줄 알지만 꺼림칙함을 감추려 애쓰기보단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깨우쳤으면 오죽이겠다 싶기도 하다. 


 로마시대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장군과 군인들은 거리를 행진하며 수많은 노예들과 즐비한 전리품을 자랑했다지요. 군중들은 이들에게 경의를 표시했다는데 승전축하 행사에는 한 가지 특이한 요소가 있었답니다. 노예 한 명이 퍼레이드 내내 장군의 귀에 뭔가를 계속 속삭였다고 한다. 승리에 도취한 장군들이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설정이었는데 노예가 한 말이 “Memento Mori”(당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였다. 


 비 오거나 눈 내리는 날이면 즐겨 찾는 해물파전이다. 집안에서 부침개를 부치려면 밀가루 반죽하랴 재료 손질하랴 잔손이 적잖게 가는 것쯤이야 감수해야할 일이나 풍미(風味) 가득하고 겉은 바삭하게 프라이팬위에 지져주면 코가 구수한 냄새를 맡고 입이 더 즐거워하니 일석이조(一石二鳥)다. 식탐(食貪)이 아니라면 먹고 싶을 때 조그만 사치를 부려보는 것도 결코 나쁘진 않다고 생각이다. 제 돈 지불하고 식성대로 식사하면 탓하려드는 사람이 없을 텐데 어이하여 김영란법 때문이라며 어쩌고저쩌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척하려니 거참이다. 행여 자신을 위해 지갑을 꺼내신다면 ‘Don’t settle for second best.’라고 권하고 싶다.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는데, 늙고 나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답니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언짢아집니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 입니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삽니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릅니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어느 누구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을는지를 아무도 모른답니다.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고, 어둠을 뚫고 동녘이 터옵니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 집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정말 세상은 행복하답니다.” [얻어들은 좋은 말 중에서]  (대한민국 ROTC회원지 Leaders’ World  2018년 신년호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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