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hail
한국서 LG 근무
1999년 캐나다이민
벤처사업(FillStore.com),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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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機會) 의 신(神)
kimhail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속담에서 비롯된 말인지 어느 현인(賢人)이 한 말인지 알지 못하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그 세 번의 기회를 이미 다 썼는지 아니면 아직 남은 기회가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혹시 내게 복권에 맞을 기회가 주어졌는데 복권을 사지 않아 기회를 놓쳐 버린 건 아닐까? 카지노에서 대박을 터뜨릴 기회가 내 운명에 들어 있는데 카지노 출입을 하지 않으니 스스로 하늘이 준 기회 하나를 안 쓰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만큼 그 하늘이 준다는 세 번의 기회는 모두에게 똑 같은 유형의 기회가 아닐뿐더러 사전 암시도 없어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주식에 투자해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창업을 해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며 누군가에겐 우연히 대중 앞에 나서서 인기를 끌어 본인의 재능을 발휘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빌 게이츠가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창업을 결심한 것이 그에게 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은 것이니 내 자식도 학교를 중도 포기 시키고 회사를 만들라고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세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그 기회를 잘 잡아 살리는 사람과 기회인지도 모르고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고, 기회 인줄 알고 덥석 잡았는데 실은 기회가 아니고 위기인 경우도 있다. 


 운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기는 하지만 세상일에 운이 따라 주지 않으면 될 일도 안되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아무리 운이 따른다 해도 노력 없이 성공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결국 성공이란 운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 되지 않을 일에 죽자고 노력만 해서는 시간과 힘을 낭비할 뿐이다.


 제우스의 아들 카이로스(Kairos)는 기회의 신이다. 앞머리는 숱이 무성하나 뒷머리는 하나도 없는 대머리이고 등과 발에 날개가 달렸다.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가졌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 이 기회의 신의 조각상이 있는데 그 조각상 밑에는 이런 글귀가 써 있다고 한다.


 “나의 앞 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없는 것은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잡을 수 없게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그들 앞에서 최대한 빨리 달아나기 위함이다”


 그렇다. 기회란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또한 앞머리가 무성해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 앞에 다가와도 그것이 기회인지 아닌지 알아 볼 수가 없다. 한번 지나간 이 대머리, 기회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잡을 수 없다. 


 이 기회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여야 하기 때문에 한곳에 머물지 않고 이사람 저사람 곁을 스쳐 지나다닌다. 


 기회는 운이다. 그렇다면 도전이고 모험이다. 냉철히 판단하되 되겠다 싶으면 죽을힘을 다해 그 운에 매달려야 한다. 


 기회의 신이 가지고 있는 저울은 기회가 왔을 때 냉철하게 잘 저울질 하라는 의미이며,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칼은 칼 같은 결단을 내리라는 의미라 한다. 또는 구차하게 지나간 기회에 매달리는 자를 칼로 내리쳐 응징한다는 의미라고도 한다. 


 평생 세번 온다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잡느냐 마느냐는 본인의 역량이고 능력이다. 


 필자가 요식업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어쩌면 이 세 개의 운 중 하나를 만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 식당을 해서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전혀 꿈도 꾸지 않았던 분야에 뛰어들어 제2의 천직이라 생각할 만큼 즐겁고 신바람 나기 때문이다.


 일이 즐거운 것만큼 행복한 것이 어디 있으랴? 그저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과 일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은 그 결과에서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아침에 눈떠 일하러 갈 곳이 있으니 신나고, 그렇다고 시간에 얽매어 꼼짝 못하는 것이 아니고 내 시간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여유를 만들 수 있어 좋고, 늘 젊은 직원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소통하니 좀 덜 늙은이 스러워지는 것 같아 좋고, 다양한 국적,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을 대하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 좋다.


 그 뿐인가? 새로운 생각, 엉뚱한 메뉴가 생각나면 언제든지 무엇이든 만들어 먹어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뒷 대머리 카이로스를 분별해 낼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사실 간단하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 식의 집념으로 기회다 싶은 놈을 잡고 성공할 때까지 노력하는 거다. 모든 열정과 능력을 쏟아 붓고 그래도 안되면 다른 사람의 능력까지 빌어다 쏟아 넣어 반드시 성공 시키면 내가 움켜잡은 그것은 틀림없이 카이로스의 무성한 앞머리가 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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